이재용 사면, 결단이 필요하다

[정진호의 饗宴] 화쟁의 논리로 풀어야...반도체는 '시간산업', 경영복귀 시급

데스크 칼럼입력 :2021/08/05 15:37    수정: 2021/08/05 21:52

대통령은 정치인이 아니다. 통치자다. 통치자는 특정 집단이나 개인의 이익보다는 나라의 장래와 국익을 먼저 생각해야 함은 물론이다.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설사 자기 진영의 이익에 반한다 해도 결단해야 한다. 우리 사회 각계각층의 집단 이기주의와 타협하거나 힘겨루기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많은 나라들이 왕권이나 군주제에서나 있을 법한 사면권을 현대 정치의 대통령에게 부여한 것도 법치나 진영의 논리로 풀 수 없는 문제를 쟁(諍)하지 말고 화(和)하는 '화쟁(和諍)'의 논리로 풀어내라는 의미가 아닐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한때 '마이너스 손'으로 불렸다. 닷컴 열풍이 한창이던 2000년 초 대주주로 참여한 e삼성의 실패 탓이다. 그러나 그는 2014년 부친인 고(故)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고 2020년 타계하기까지 삼성병원 메르스 확산과 갤럭시노트7 발화 사태를 극복하고 글로벌 초일류 기업 삼성전자를 이끌고 있는 실질적인 오너 경영자이다. 재계에서 이 부회장이 하루빨리 경영일선에 복귀하는 것을 바라는 것은 이 부회장 개인 거취보다 삼성이 다시 뛰어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도록 족쇄를 풀어달라는 의미가 크겠다.

삼성전자의 대표적인 사업인 반도체·디스플레이와 스마트폰 산업은 시간 산업이다. 시간은 첨단IT 산업에서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잣대다. 죽고 사는 문제일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 반도체와 스마트폰 산업을 이끄는 삼성전자가 시간 경쟁에서 실패한다면 삼성은 물론, 장기적으로 우리 수출경제에 이로울 게 없다. 과거 노동집약적인 한국경제가 첨단 부가가치 산업으로 빠르게 전환한 것도 우리가 시간을 추월했기 때문이다. 인공위성 쏘고 자동차로 세계를 호령하던 미국, 일본에 꿀리지 않은 것은 우리가 그들과 같은 시간에 재빨리 동승했기 때문이다. 한국 IT산업은 아직도 갈길이 멀다.

삼성은 총수 부재와 재판으로 지난 4년여의 시간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계에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가석방보다 빠른 경영 복귀가 가능한 사면을 바라는 이유다. 현재 삼성전자의 반도체·스마트폰·가전으로 이어지는 사업구조에 대한 위기론을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기업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대규모 투자 결정이 늦어진다면 결국엔 덜미를 잡히고 쓰러지게 마련이다. 그것은 경쟁 세계의 진리와 같다. 삼성전자의 현 사업구조가 AI, 전장 등 미래 사업에 잘 정비되어 있다고 누구도 확언하기 어렵다.

오랜동안 오너의 책임경영과 리더십 부재에 따른 우려도 크다. 한해(2020년 기준) 230조원을 벌고 38조 이상을 투자하는 삼성전자 같은 거대 글로벌 기업은 전문경영인으로만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있다.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 삼성엔 오너를 대신할 그림자 경영자가 없다. 삼성은 특유의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역할 분담으로 위기를 헷징해 왔다. 오너가 가기 어려운 길을 먼저 트고, 전문경영인이 자신감 있게 도전하는 것이다. 2016년 9월 갑자기 터진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발화로 인한 전량 리콜 사태가 좋은 예겠다. 삼성은 당시 갤노트7 사태로 5조원에 달하는 손실을 감수해야만 했지만, 전문경영인인 고동진 IM부문 사장을 바꾸지 않았다. 배터리 발화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과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라며 유임시켰다.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조화가 아니고서는 상상하기 힘든 경영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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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4대그룹 오찬 간담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 문제와 관련해 "고충을 이해한다"면서 "국민들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최근 여러 여론 조사를 보면 이 부회장의 거취 문제에 대한 국민 공감대도 어느 정도 형성됐다고 해도 큰 무리가 없다. 이 부회장도 자신과 삼성을 둘러싼 사회적 바램과 눈높이, 소통의 중요성, 지난 4년간 이어진 재판 과정 등을 돌아보면서 이후 삼성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충분한 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가 대국민 약속을 이행하고 기업인로서 우리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우리 경제회복과 국익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가 지향하는 법 앞의 평등이나 엄정한 법집행, 정의와 공정의 가치에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단지 씁쓸하고 공허할 뿐이다. 엄숙주의와 같은 원리 원칙만이 선은 아니다. 현실의 처한 상황과 조건을 살펴서 미래 지향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죄값을 달리 받으면 어떨까. 그것이 이 부회장에게 더 무거운 사회적 책임을 안겨 주는 일이 아닐까.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사면을 바라는 재계와 국민의 뜻을 다시한번 살펴보기를 기대한다.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