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경영자의 일차 목표는 주주 이익 극대화다. 한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 경영자의 책임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기업들은 이윤만을 추구하는 ‘악의 축’처럼 취급된 적도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환경문제에 대해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 기업,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기업에 대해선 투자하지 않겠다는 운동이 꽤 힘을 얻고 있다. 이런 바람을 타고 ‘ESG 투자’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다.
ESG는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앞글자를 딴 용어로, 이 세 가지 요소를 중시하는 경영이나 투자 방침을 뜻한다.
조신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가 쓴 ‘넥스트 자본주의, ESG’는 최근 경제, 경영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ESG 열풍을 찬찬하게 진단하고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먼저 “왜 ESG 열풍이 일어나고 있는가?”란 질문을 던진다. ESG는 어느날 갑자기 탄생한 개념은 아니다. 1990년대부터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등장했다. 특히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에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자본시장에 대한 비판이 날로 커졌다.
그 동안 주주 이익 극대화에만 신경을 썼던 기존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란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기업은 주주 뿐 아니라 모든 이해관계자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ESG에 대한 요구가 커지게 된 데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위기와 그로 인한 신자유주의의 등장을 빼놓을 수 없다. 그 결과 소득 불평등이 커지면서 사회 갈등이 더 심화됐다.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환경오염과 기후 변화 역시 ESG 열풍을 부추긴 불쏘시개들이다.
이런 설명에도 여전히 ESG는 어딘지 낯설고 어색한 개념이다. 혹자들은 사회 분위기에 못 이겨 기업들이 어쩔 수 없이 흉내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외부 요인들이 압박한 측면도 있지만 변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성장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한다.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이윤 추구는 결코 장기적으로 용납될 수 없으며 가능하지도 않다. 지난 수십 년간 단기 실적주의 및 지나친 CEO 보상체계가 주주와 경영자들의 이익만 챙기는 방향으로 흘러왔다는 것, 그리고 이로 인한 심각한 소득 불평등이 오늘날 자본주의의 위기를 낳았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78쪽)
이 책의 장점은 ESG 열풍을 기업이나 경영이 아니라 ‘투자’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자본시장 전체를 움직이고 있는 투자 기준의 변화가 이론적으로 타당하며 지속가능한지 검증하고, 기업에는 어떤 인센티브가 있는지, 또 현실투자와 기업 경영에 적용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꼼꼼하게 살펴본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ESG 투자의 개념과 투자 촉진 요인들을 짚어본다. 또 ESG 열풍의 바탕이 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대해 살펴보고, ESG 투자가 실제로 어떻게 이뤄지는 지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소개해준다.
아무리 사회적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하더라도, 그것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선 기업에게 ‘돈이 되어야’ 한다. 저자는 ESG 열풍을 촉발한 투자 기준의 변화가 궁극적으로는 기업에게도 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철학적 기반에서 출발한 ESG는 한 때의 유행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진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을 쓴 조신 교수는 SK커뮤니케이션즈와 SK브로드밴드 대표 이사와 대통령 비서실 미래전략수석을 역임하면서 IT 산업과 혁신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있는 혜안을 보여줬다. 이론과 현장 모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저자의 강점은 ESG 현상을 진단한 이 책에서도 잘 발휘되고 있다.
저자는 마지막 장인 ‘경영자를 위한 조언’에서 다음과 같이 권고하고 있다. 아마도 이 권고 속에 저자가 이 책은 쓴 이유가 잘 담겨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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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에 집착하다가 ESG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기업이 속출할 것이다. 100여 년 동안 혁신적 기술과 마케팅 역량으로 뛰어난 성과를 자랑했던 코닥이 디지털 기술에 의한 파괴적 혁신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져 버렸던 것을 기억하라. 파괴적 혁신에 희생되지 않기 위해서는 기존 사업까지 포기하고 새로운 창업을 하는 각오로 남보다 먼저 혁신을 실행해야 한다.” (339쪽)
(조신 지음/ 사회평론, 1만6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