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 가칭 SKT인베스트먼트 신설법인을 세우는 인적분할 방식으로 회사를 둘로 나눈다. 통신업 중심의 인수합병 중심에서 글로벌 반도체 투자와 신규사업 투자 확대로 회사 성장 방식을 바꾸는 첫 단추를 꿴 셈이다.
10일 SK텔레콤 이사회에서 결의된 인적분할 안건에 따른 존속법인과 신설법인의 편제 회사를 살펴보면 각 법인의 성장 방향성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SK텔레콤은 분할목적을 두고 공시를 통해 “반도체와 뉴ICT 등 관련 피투자회사 지분의 관리, 신규투자 등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부문을 분할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투자에 역량을 집중해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과 경영안정성을 증대시킨다”고 밝혔다.
이어, “투자 목적 사업부문에 집중하면서 독립경영과 책임경영 체제를 확립하고 경영위험의 분산을 추구한다”고 덧붙였다.
즉, 대규모 신규 투자를 예고하면서 투자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는데 중점을 뒀다는 설명이다.
우선 존속법인 SK텔레콤은 유무선 통신사업에 집중하게 된다. 전통산업의 성장 한계성, 내수시장 등이 거론되지만 통신 네트워크 인프라를 바탕으로 하는 AI, 구독형 비즈니스모델, 인터넷데이터센터(IDC) 등을 겸하게 된다.
존속법인 편제 법인을 보면 SK브로드밴드와 SK텔링크 등 전통적인 통신서비스 회사가 포함됐다. 이와 함께 피에스앤마케팅, F&U신용정보, 서비스탑, 서비스에이스, SK오앤에스 등 통신 서비스 마케팅과 네트워크 유지 보수 회사들로 채웠다.
■ 투자 중심 신설법인...성장 가능성 점찍은 신규사업 포진
신설법인 SKT인베스트먼트 산하에는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SK텔레콤이 그동안 뉴ICT라는 이름으로 추진해온 회사들이 편제됐다. SK텔레콤이 다른 회사와 세운 합작투자사거나 기업공개(IPO) 단계에 이른 신규사업을 영위하는 회사들이다.
IPO 일정을 고려할 때 가장 빠른 수순을 밟고 있는 원스토어를 비롯해 SK인포섹과 합병을 마친 ADT캡스, 티맵모빌리티, 11번가, 인크로스, 드림어스컴퍼니, 나노엔텍, SK플래닛 등 SK텔레콤에서 시작된 보안, 모빌리티 등 뉴ICT 사업이 SKT인베스트먼트 지배구조에 놓인다.
또한 SK텔레콤이 다른 회사와 공동투자를 통해 세운 회사들도 SKT인베스트먼트로 아래로 합류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지상파방송 3사와 공동투자로 세운 OTT 서비스 회사 콘텐츠웨이브, 폭스콘과 함께 투자한 디지털 물류기업 FSK L&S, 도이치텔레콤과 세운 기술합작회사 테크메이커(Techmaker), 컴캐스트와 최대주주로 있는 e스포츠 기업 SK텔레콤CST1, 싱클레어 합작사에 투자한 미국투자사 SK텔레콤TMT인베스트먼트 등이 SKT인베스트먼트에 편제됐다.
또 SK텔레콤이 최대주주로 있는 스위스 양자암호통신 기업 IDQ도 SKT인베스트먼트 아래로 묶였다.
■ 편제회사 IPO + 지속적 신규사업 진출 투자
SK텔레콤의 분할은 결국 자회사 SK하이닉스를 분리하는 동시에 계속해 신규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 SKT인베스트먼트를 출범시키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동안 통신업을 중심으로 한국이동통신, 신세기통신, 하나로통신의 인수합병을 추진하며 몸집을 키웠고 하이닉스반도체를 품는 방식의 SK그룹 차원의 성장 방정식을 추구해왔다면 수년 동안의 고민 끝에 ICT 분야 신규투자만 중심으로 하는 법인을 내세웠다는 뜻이다.
유영상 MNO사업부장이 존속법인의 경영을 맡고 그룹 차원의 신규 투자를 맡게 되는 SKT인베스트먼트는 SK하이닉스 부회장도 맡고 있는 박정호 SK텔레콤 CEO가 이끌 것으로 보인다.
박정호 CEO는 SK그룹 입사 이후 하이닉스반도체를 비롯한 주요 인수합병에 모두 관여했고 SK텔레콤 수장을 맡은 이후에도 도시바반도체 지분 참여, 인텔 낸드 사업부문 인수 등을 이끌었다. 또 초협력을 강조하면서 여러 합작사를 세우는 경영행보를 보였다.
박정호 CEO가 이끌 SKT인베스트먼트는 이같은 행보가 가속화될 전망이다. 당장 해결할 과제로는 IPO를 천명한 자회사들의 성공적인 투자 확보다.
우선 원스토어는 IPO 추진이 어느 정도 진행됐고, 통신업계의 추가 투자와 네이버의 지분 참여를 바탕으로 토종 앱마켓 사업자 지위를 공고히 하다는 방침이다.
칼라일그룹에서 맥쿼리와 함께 인수한 ADT캡스도 IPO 주관사 선정을 마치면서 투자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성공적인 투자를 이끌어내면 맥쿼리는 자금 회수를 택하고, SKT인베스트먼트는 SK인포섹과 합병한 ADT캡스의 융합보안 사업을 극대화시키는 전략에 나설 전망이다.
최근 SK텔레콤에서 분사한 티맵모빌리티의 투자 유치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먼저 우버와 합작사를 세웠고 JV 외에도 모빌리티 시장의 성숙도에 따라 추가적인 사업 성장과 투자 유치가 기대된다.
자회사 IPO 추진과 함께 별도 신규 투자가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이다.
SKT인베스트먼트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투자 행보를 넓힐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SK하이닉스를 통해 인텔의 낸드메모리 사업부 인수를 추진하면서 관련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우위를 지키기 위한 투자방향으로 풀이된다.
최근에는 매그나칩반도체에서 비메모리 부문을 떼어내 출범한 키파운드리의 지분 인수 여부로 주목을 받고 있다.
키파운드리는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회사로 SK하이닉스가 지분 49.8%를 가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파운드리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지만 키파운드리를 완전 인수해 파운드리 CAPA(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 하이닉스가 현대그룹에서 LG그룹으로 매각될 때 분리된 매그나칩반도체에서 다시 분리된 회사가 친정 하이닉스로 돌아오는 점도 업계에서 관심을 갖는 부분이다.
SKT인베스트먼트가 재상장을 마치고 난 이후에는 신규 투자 포트폴리오가 더욱 명확해질 전망이다. 그동안 그룹 내에서 ICT 분야 투자 리스크를 떠안았던 SK텔레콤과 분리됐고, 공정거래법상 손자회사에 속하는 SK하이닉스를 대신해 지분 투자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회사가 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 회사도 쪼개고 주식도 쪼개고
이날 이사회의 인적분할 결의와 함께 주식 액면분할을 결정한 점도 눈길을 끈다.
단순히 액면분할을 통해 기업가치가 바뀌거나 실적에 변화를 주지는 않는다. 자본금을 늘리지 않고 주식의 액면가를 낮추는 것뿐이다.
하지만 통신 대장주로 꼽히는 SK텔레콤의 액면분할 효과는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라는 게 증권가의 평가다.
기업분할을 통해 SK텔레콤의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에 대한 분산 투자가 가능해지는 상황 속에서 소액주주의 진입 장벽의 높이를 낮추면서 거래량을 늘리고 투자 활성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ICT 업계에서 이미 유사한 전례가 많다. 지난 2018년 삼성전자와 네이버, 지난해 카카오가 액면분할을 단행했다. 고액 주식이라 불리던 이 기업들은 액면분할 이후 거래량이 부쩍 늘었고 기관 외에도 소액주주의 대거 참여를 통한 투자자 구성 폭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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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도 이 점을 고려했다. 회사 관계자는 “액면분할로 주당 가격 하락은 거래량, 주가, 시가총액을 모두 이끌어 올리는데 호재로 작용했던 점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SK텔레콤과 SKT인베스트먼트의 분할기일은 11월1일이다. 분할기일에 앞서 10월26일부터 한달 주식 매매거래정지가 시작된 뒤 11월29일 변경상장과 재상장을 추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