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브레이크 없는 벤츠…일본 의사결정의 본질

태평양 전쟁 패전으로 본 일본 올림픽개최 강행

전문가 칼럼입력 :2021/06/07 07:42    수정: 2021/06/07 10:15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일본 사회 저변에 깔린 동조압력을 분석한 책자 ‘공기의 연구(山本七平)’라는 책자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

일방적인 연합군의 공세로 일본 패전이 임박했던 시점, 일본군 대본영은 1억명 일본인의 옥쇄를 통해 본토를 사수하겠다며 전함 야마토를 오키나와 해안에 상륙시켜 해안포대 역할을 맡기겠다며 출격 명령을 내린다.

전함 야마토는 거대한 함포를 장착한 전함이기에 적기로부터의 자기방어 능력이 없어 이동할 때는 엄호를 담당할 전투기 등을 탑재한 호위함대가 필수다. 하지만 호위함대조차 전멸한 상태여서 격침 위험을 감수하고 혈혈단신으로 오키나와 본토를 향해 출격한다.

전함 야마토의 이동을 탐지한 미군은 전투기를 띄워 공격했다. 당시 세계최강이라는 전함 야마토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수천명의 승조원과 함께 바다의 제물로 사라지게 된다.

격침 당하는 전함 야마토(자료:沖縄県公文書館)

후일 이러한 황당무계한 작전을 지시한 군령부 차장 오자와 지사부로 중장은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전반적인 공기(분위기)로 보아 그때도 지금도 같은 명령을 내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대답했다.

패배할 것이 자명한 전쟁인데 일본군 수뇌부는 왜 자국민 1억명을 희생시키더라도 끝까지 싸우겠다는 판단을 하게 됐을까. 제공권을 빼앗긴 상태에서 호위함도 없이 항해에 나서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는데 왜 전함 야마토 함장은 승조원 수천명과 함께 수장당하는 길을 택했을까. 참으로 불가사의한 조직이다.

일본 소설가이자 정치가인 이노세 나오키씨가 지은 ‘쇼와 16년 여름의 패전’이라는 책에서도 일본사회의 특이한 의사결정 구조가 소개돼 있다.

쇼와 16년 여름의 패전이라는 책은 일본 정부가 태평양 전쟁에 돌입하기 몇 년 전부터 총력전연구소라는 가상의 내각을 구성해 실제로 각 부처 젊은 관료 가운데 유능한 인재를 차출해 각 부처 대신으로 임명한 후 전쟁에 돌입했을 때 벌어질 각종 상황 등을 시뮬레이션 했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일본이 전쟁에 패한 1945년은 쇼와 20년이므로 쇼와 16년의 패전이란 총력전연구소가 가상전쟁을 시뮬레이션한 결과의 패전을 의미한다.

일본 정부는 전쟁 개시 4년 전에 전쟁을 일으켰을 때 벌어질 모든 상황을 철저하게 시뮬레이션 했다. 그 철저함의 이면엔 ‘전쟁에 돌입하면 반드시 패배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전쟁을 벌이겠다’는 일부 주도 세력의 공기(분위기)를 읽고 그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일본인들만의 특별한 국민성에 의한 비합리적 상황판단이 있다. 이노세씨는 일본 정부가 끝내는 전쟁에 돌입해 시뮬레이션대로 자멸했다고 기술했다.

지난해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을 무렵 요코하마에 정박한 초대형 호화유람선 승객 가운데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 일본 정부는 왜 코로나 확진자를 분류해 격리하고 치료하는 길을 택하지 않고 승객들을 배에 가둬 수많은 비감염자들까지 감염시키는 우를 범했을까.

대한민국이 적극적인 PCR 검사를 통해 확진자를 걸러내 세계 각국으로부터 칭송을 받는 상황에서도 왜 일본은 적극적으로 PCR 검사를 시행하지 않아 오늘과 같은 사태를 만들었을까.

코로나가 만연해 일본은 올림픽개최를 1년이나 뒤로 미뤘다. 상황은 호전되기는커녕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상황이다. 올림픽개최를 포기하자는 의견이 70%를 넘음에도 일본 정부는 왜 올림픽을 강행을 고집하고 있을까.

태평양 전쟁은 기습공격으로 인해 초반에는 승리하지만 현격한 국력 차로 인해 열세를 면치 못하고 결국 처참한 패전을 경험했다. 전쟁 직전 총력전연구소 젊은 엘리트 관료들이 완벽한 데이터를 근거로 시뮬레이션을 거듭한 결과는 실제 전쟁과 판박이였다.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에 돌입해 패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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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만의 특수한 정신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이들의 비상식적인 의사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을 지배하는 것은 상식이 아니라 그때그때 일본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공기(분위기)다. 일본은 강력하게 작동하는 동조압력으로 인해 상식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특수한 상황에 빠진다.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지만 올림픽을 목전에 둔 지금의 일본 정부는 늘 그래왔듯이 스스로 폭주를 멈출 수 없을 것이라 본다. 그 또한 동조압력에 굴복하는 일본 국민이 감내해야 할 숙명이라 생각이 든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는 서울시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일본계 부품기업에서 전산관련 업무를 하다가 일본 정보화 시장에 뛰어들었다. 2000년 이후 한국의 선진 정보기술(IT)을 일본에 소개하고 전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 정보화컨설팅 비즈니스를 하면서 여러 지자체에서 정보화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겸했고 병원과 기업 등에서 IT어드바이저로, 대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 30년간 일본인과 같은 신분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며 보고 겪고 느낀 점을 압축 정리한 ‘일본관찰 30년-한국이 일본을 이기는 18가지 이유’라는 일본 정보서적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