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장사 10곳 중 8곳은 외부감사 비용과 시간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新)외부감사법에 따라 표준감사시간·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가 도입되면서 감사시간이 크게 증가한 데다, 주기적 지정감사제로 기업의 협상력이 크게 저하됐다는 분석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305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신외부감사법 시행에 따른 애로와 개선과제'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감사보수가 전년대비 증가한 상장사는 전체의 83%에 달했다. 상장사 79%는 감사시간도 증가했다고 답하는 등, 외부감사와 관련된 기업부담이 증가하는 모습이다.
2018년 말 시행된 신외부감사법의 핵심은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주기적으로 감사법인을 지정하고 자산규모·업종에 따라 적정 감사시간을 적용한 것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시행 첫 해인 2019년은 감사시간·비용 증가가 어느 정도 예견됐지만, 지난해 증가 추세가 지속되면서 기업 부담이 가중됐다"며 "인력·조직이 부족한 중소기업엔 더 큰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기업들은 감사보수 증가의 주된 원인으로 ▲주기적 지정감사제(39.2%) ▲ 표준감사시간 도입(37.7%) ▲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17.0%) 등을 꼽았다.
주기적 지정감사제는 상장사 등이 6년간 감사인을 자율선임한 경우, 다음 3년은 정부로부터 지정받도록 하는 제도다. 기업 입장에선 감사인을 선택할 권한이 없어, 협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기업의 49.2%는 '지정감사 관련 애로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기업들은 '자율수임 대비 높은 감사보수 요구(74.6%)'를 이유로 꼽았다. '신규 감사인의 회사특성 이해 부족(60.3%)', '불명확한 회계기준에 대한 해석차이로 과거 감사인-신규 감사인간 이견 발생(44.4%)' 등의 응답도 많았다.
피감기업은 1회에 한해 증권선물위원회에 감사인 교체를 요청할 수 있다. 다만, 재지정을 요청한 32.8% 기업 중 '감사보수가 낮아졌다'는 응답은 23.8%에 불과했다. 기업들은 '감사보수가 비슷하다(45.2%)'거나 '오히려 증가했다(14.3%)'고 답하기도 했다.
정도진 중앙대 교수는 "현재 지정감사제는 기업에 선택권을 부여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감사인을 지정하는 문제가 있다"며 "기업들은 높은 감사비용을 감수하지만, 충분히 감사품질을 제고할 능력있는 감사인이 지정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표준감사시간은 감사인이 투입해야 하는 적정 감사시간을 뜻한다. 기업규모·업종·상장여부에 따라 산출한다. 표준감사시간이 도입된 후 기업들에 지난해 감사시간 증가율을 조사했더니 직전년도 대비 '10~50% 증가(42.6%)', '10%미만 증가(21.0%)' 순으로 답했다. '50% 이상 증가한 기업'도 9.9%로 집계됐다.
감사시간 증가에 따라 감사보수도 늘었다. 40.7% 기업이 '표준감사시간 관련 애로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애로경험 기업 중 87.1%는 '감사보수 증가'를, 33.1%는 '과도한 감사시간 산정'을, 29.0%는 '거래량이나 거래구조의 복잡성과 무관한 감사시간 적용' 등 어려움을 경험했다고 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현행 산정방식은 주로 자산규모나 업종 등에 따라 정해진다"며 "거래량이나 거래구조 등 개별기업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위원회의 감사보수 신고센터를 이용해본 기업은 응답기업의 1.3%에 불과했다. 주로 '신고센터에 대해 잘 모름(28.9%)', '신고해도 조정 효과가 미미할 것(24.5%)', '신고 시 감사인으로부터 불이익 우려(4.0%)' 등의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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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은 신외감법을 개별기업의 특성과 내부 회계관리 시스템의 효율성 등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해줄 것을 요청했다. 신외감법 개선과제로 '표준감사시간 산정방식을 개선해 감사시간을 합리화(61.6%)', '회계투명성에 문제가 있는 기업에 한해 강화된 감사 적용(59.0%)', '지정감사인의 과도한 요구 방지를 위한 관리감독 강화(51.8%)' 등을 제안했다.
송승혁 대한상의 조세정책팀장은 "회계·감사품질 제고라는 제도 취지엔 공감하지만, 주기적 지정감사나 표준감사시간 등은 해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제도"라며 "각 기업의 회계투명성이나 거래구조 등 개별 사정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