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정책 B학점…마이데이터 시대 열었지만 빈틈도 곳곳

[혁신성장 정책 4년 성적표] ②핀테크

금융입력 :2021/04/27 09:16    수정: 2021/04/27 09:17

지난 2020년은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변곡점을 맞은 시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불러온 비대면 트렌드가 모든 금융업권의 디지털 혁신을 가속화시켰고, 초개인화 서비스를 필두로 하는 마이데이터 시대의 서막이 열리며 이른바 금융 밸류체인의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로서도 노력의 흔적을 남긴 한 해였다. 작년 8월 시행된 데이터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을 바탕으로 마이데이터의 초석을 다지고, 빅테크와 핀테크의 참여를 독려하는 동시에 이들을 제도권 안으로 들이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보수적인 금융시장에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를 제시하고 전통 금융사와 핀테크의 경쟁으로 변화를 유도하는 데 소기의 성과를 거둔 셈이다.

핀테크 정책 B학점…마이데이터 시대 열었지만, 곳곳 빈틈

김봉규 NH디지털R&D센터장은 "오픈API로부터 오픈뱅킹으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이노베이션'이란 금융 패러다임이 만들어졌고, 여기에 마이데이터라는 키워드가 더해지면서 또 다른 금융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다"며 "금융업을 혁신하려는 정책적 노력의 결실"이라고 평가했다.

류영준 한국핀테크산업협회장도 "작년 한 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금융의 디지털 전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됐다"면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과 마이데이터 논의·시행은 이러한 변화에 맞춰 우리나라 금융 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첫 발"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이제 막 첫 발을 내디딘 만큼 만족하긴 이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새롭게 등장할 서비스가 금융생활에 완벽히 자리 잡기까지 데이터 유통이나 정보보호, 감독 등 사업·제도적 보완점이 존재해 이해관계자의 논의와 타협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마이데이터로 '초개인화' 발판 마련한 정부

현재 금융권이 체감하는 가장 큰 변화는 오는 8월 마이데이터(본인신용정보관리업) 사업이 본격 시행된다는 점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월 국민은행·신한카드·웰컴저축은행·네이버파이낸셜 등 은행·카드·핀테크를 아우르는 총 28곳에 본허가를 내줬다. 표준 API 구축 등 준비 작업을 거쳐 오는 8월4일 본격적으로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시행할 예정이다. 보험사와 같이 허가를 받지 못한 곳을 대상으로도 추가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마이데이터는 은행과 보험사, 카드사 등에 흩어진 개인신용정보를 모아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을 뜻한다. 허가를 받은 사업자는 소비자 동의를 전제로 정보(가명 처리)를 취합해 금융상품과 투자 자문 등 맞춤형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자산·지출관리 앱 'KB마이머니'에 신용과 자동차관리 서비스를 추가하며 마이데이터 사업 준비에 착수했다. 소비자의 신용평점을 같은 연령·성별과 비교해 신용구매력을 알려주고, KB캐피탈의 정보로 자동차 시세·유지비 등을 소개하는 식이다. 또 신한은행은 모바일 앱 ‘신한 쏠’의 ‘마이 자산’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중이며, 우리은행 역시 인공지능(AI) 기반의 맞춤형 재무설계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업계에선 마이데이터 사업이 본격화하면 금융과 비금융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업은 보다 정교한 상품으로 사업을 강화하고, 소비자는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서비스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정유신 서강대학교 교수는 "디지털 혁신 관점에서 봤을 때 우리나라의 금융은 총 4단계 중 세 번째인 기술 융합 단계에 진입했는데, 마이데이터는 융합적 성격을 띤 신사업"이라며 "데이터 경제 시대가 개막한 이래 첫 융합 신사업이 금융권에서 만들어졌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이데이터를 통해 금융뿐 아니라 의료 등 다른 분야의 데이터를 융합할 길이 열렸다"면서 "금융 부문이 혁신에서 상당히 앞서 나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데이터 개방 범위나 소비자 정보보호와 같은 영역에서의 가이드라인이 미흡해 다시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KDB미래전략연구소의 오세진 연구위원은 4월 공개한 보고서에서 마이데이터 사업의 활성화를 위해선 데이터 소유 주체인 개인의 데이터 요청 권한을 확대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지금의 마이데이터 가이드라인에 한계가 존재한다는 판단에서다. 예금·적금·대출·쇼핑 주문정보 등을 지정해 공유하도록 함으로써 데이터 개방성을 확보한 것은 고무적이나, 지정된 항목 이외의 데이터 개방엔 시스템 정비나 추가적인 논의가 요구되는 탓이다.

아울러 오세진 연구위원은 데이터 개방이 확대되면서 원하지 않는 개인정보가 유통될 수 있는 만큼 노출된 정보를 한 눈에 살펴보고 공개 여부를 통합 관리할 장치가 요구된다는 견해도 내비쳤다.

이에 대해 김봉규 센터장은 "금융 비즈니스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소비자 개개인에게 적합한 '초개인화 서비스'로 거듭나야 하며, 이를 위해선 자체 데이터와 외부 데이터를 결합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면서 "지금의 가이드라인으로는 이상적인 상품을 내놓긴 어려우며 시행착오를 거쳐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정유신 교수는 "금융사뿐 아니라 빅테크와 핀테크가 모두 참여하기 때문에 데이터가 완벽히 개방되기까진 협상을 위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이커머스 측과 합의점을 찾는 등 정부 차원에서 조율을 이어가는 만큼 시간이 지나면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핀테크도 제도권으로…'전금법' 화두 던졌지만

하나 더 눈여겨볼 대목은 정부와 국회가 핀테크·빅테크 육성과 소비자 보호를 목표로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이라는 화두를 던졌다는 점이다.

윤관석 정무위원장(더불어민주당)이 작년 10월 발의한 전금법 개정안은 지급지시전달업(마이페이먼트)과 종합지급결제사업자 라이선스 도입, 대금결제업자 후불결제업무(소액) 허용, 빅테크 관리감독체계 마련 등을 골자로 한다. 특히 네이버나 카카오 등 빅테크가 소비자와 금융 거래를 할 때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외부 청산기관인 금융결제원을 거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개정안은 금융의 디지털 전환이라는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안정적인 서비스 인프라를 확보해 핀테크와 빅테크 이용자보호를 강화한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핀테크와 빅테크를 제도권 안에 둠으로써 건전한 발전을 유도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김봉규 센터장은 "전금법 개정안엔 빅테크와 핀테크를 규제의 바운더리 안으로 진입시키려는 목적도 담겼다"면서 "제도권으로 들인다는 것은 규제를 강화하기 위함이라기보다 그만큼 이들 사업을 인정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를 놓고 금융위와 한국은행을 비롯한 이해관계자의 충돌이 계속되면서 법안 개정 논의가 진전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법안 개정 시 청산기관인 금융결제원이 금융위의 감독을 받는다는 점에 한국은행이 불편함을 드러낸 탓이다. 한국은행 측은 금융결제원 등을 통해 수행하는 결제리스크 관리, 유동성 지원 등 업무와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은행 등 전통적인 금융사도 '빅테크 특혜법'이라며 반대하긴 마찬가지다. 종합지급결제사업자가 법안 개정을 통해 사실상 여·수신업에 진입하게 되면서도 은행과 같은 수준의 금융규제를 받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전문가들은 각각의 이해관계보다 소비자 보호 강화, 핀테크 산업 육성이란 개정안의 목표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유신 교수는 "'빅브라더법'이나 '빅테크 특혜법'이란 주장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디지털을 중심으로 하는 시대적 흐름은 피할 수 없다"면서 "관련 이슈를 신중히 검토해서 조정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류영준 협회장 역시 "5년, 10년 뒤엔 모든 금융이 모바일화, 디지털화될 것이기 때문에 전금법 개정안은 특정 업권이 아니라 모든 금융사를 위한 것"이라며 "표류하는 법안이 국내 산업의 혁신과 자유로운 시도로 글로벌 핀테크 업권과 경쟁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정돼 조속히 통과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해외진출에 스케일업까지…현실적인 스타트업 육성책 필요

이밖에 정부의 핀테크 스타트업 육성 노력에 대해선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유망 기업을 발굴하고 이들에 자금을 투입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적 토대를 만들었다는 진단이다.

작년초 금융위는 1천개 혁신기업을 선정해 3년간 총 40조원을 지원한다는 핵심 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 유망한 기업에 자금수요별로 적합한 금융상품을 지원함으로써 유니콘(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 30곳을 육성한다는 복안이었다.

아울러 금융위는 지난 1월부터 '핀테크 육성 지원법' 제정도 추진하고 있다. 금융사가 투자 가능한 핀테크 범위를 확대하고 투자손실 시 임직원 면책 조항을 추가하는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핀테크에 대한 창업지원과 정책금융 연계, 컨설팅 등을 종합 지원하는 법적기구도 꾸린다.

정유신 교수는 "그간 금융위가 민간 금융기업과 함께 핀테크 육성에 신경을 기울여왔는데, 지난해 코로나19 국면 속에도 웨비나(웹 세미나) 등을 통해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사의 관심을 모으는 등 성과를 냈다"고 귀띔했다.

물론 이 같은 노력이 건전한 핀테크 생태계 조성으로 이어지려면 보다 심도 있는 고민이 뒤따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필요한 자금이 적시에 유입되는지를 점검하며, 초기 지원에 머무르지 않고 실질적인 성장을 돕는 데도 힘써야 한다는 얘기다.

김봉규 센터장은 "사실 스타트업에 가장 필요한 것은 투자 유치"라면서 "시장의 자금이 창업 초기 기업에까지 충분히 흘러가는지를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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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성장 가능한 비즈니스로의 투자와 지원이 이뤄져야 산업이 성장하고 일자리가 생기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면서 "지원에 앞서 사업 모델에 대한 충분히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유신 교수는 "지금의 핀테크 육성 정책에서 한 발 앞으로 나아가 국내 스타트업과 해외 투자자를 연결하고 스케일업까지 지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