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최근 산재 노동자에 대한 건강보험료 환수를 결정한 것과 관련해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13일 오전 건보공단 영등포 남부지사 앞에서 시민단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반올림)’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반올림은 건보공단이 산재 노동자의 요양보험 환수처분을 내린 것에 대해 강력 유감을 표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난소암이 발병,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를 인정받은 노동자가 건보공단으로부터 통지서 한 통을 받는다. ‘부당이득 반환 통지서’였다. 건보공단은 노동자가 치료를 위해 암 요양병원을 이용하면서 건강보험이 적용된 것을 문제 삼았다.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산재 영역에 건보가 사용될 수 없기 때문에 해당 노동자는 건보 요양급여 1천400만원을 건보공단에 반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국민건강보험법 제53조 제1항 제4조에 따르면, “업무 또는 공무로 생긴 질병·부상·재해로 다른 법령에 따른 보험급여나 보상 또는 보상을 받게 되는 경우”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제한된다.
근로복지공단 측도 해당 요양병원이 산재 지정병원이 아니기 때문에 병원 이용료에 대한 산재 처리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관련해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40조(요양급여)는 “요양급여는 산재보험 의료기관에서 요양을 하게한다. 다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요양을 갈음하여 요양비를 지급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정리하면, 산재 승인을 받아도 지정병원 제도로 인해 산재 처리가 되지 않고, 건보공단은 산재 노동자에게 건보 적용은 안 된다며 비용을 청구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해당 노동자는 당초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지정병원이 아니면 산재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국내 대다수 의료기관이 산재 지정병원이 아니다 보니 급한대로 산재 치료를 받은 후 유사한 ‘세금폭탄’을 맞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산재 피해도 억울한데, 건보료를 ‘토해내라’는 결정이 가혹하다고 주장하지만, 현재로선 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별다른 구제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제도를 시행하는 건보공단도 할 말은 있다. 현행법에 따라 환수 외에는 달리 조치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반올림은 제도 개선을 통해 요양급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지난 2007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현 국민권익위)는 보건복지부에 건강보험법 개정 및 산재 노동자에게 산재보험 적용 제외된 부분이 있다면 건보를 적용하라는 제도개선 권고를 내린 바 있다. 복지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당시 권고안은 14년이 지난 현재도 여러 시사점을 갖는다.
“산재 노동자는 국민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 소정의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음에도 산재보험법상 요양급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고 사회보장제도의 본질에도 반하는 것이다.”
이렇듯 법의 사각지대가 야기한 사회적 갈등과 비용, 애먼 피해의 발생에 대해 복지부는 법 개정 등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