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맞은 LG-SK 배터리 소송…셈법 복잡해졌다

美 ITC, 특허소송서 SK에 손 들어줘…LG "예상 못했다" vs SK "승기 잡아"

디지털경제입력 :2021/04/01 17:16    수정: 2021/04/02 08:41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벌이는 전기차배터리 소송전이 일대 전환점을 맞았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양사 간 특허 소송에서 SK이노베이션의 손을 들어주면서, 영업비밀 침해소송에서 패소한 SK가 반전을 노릴 수 있게 됐다.

협상을 대하는 양사의 셈법도 한층 복잡해졌다. 특허 소송에서도 승기를 거머쥐어 영업비밀 침해소송 협상을 자사에 유리하게 이끌겠다는 LG 측 전략에 차질이 생겼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특허 소송 예비결정을 근거로 대통령 거부권 설득에 더욱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미국 ITC는 지난달 31일(이하 현지시간) LG에너지솔루션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 침해소송에서 SK의 배터리 기술이 LG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예비결정(Initial Determination)'을 내렸다.

LG에너지솔루션(왼쪽)과 SK이노베이션(오른쪽) 관계자들이 각사가 제조한 전기차배터리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각 사

美 ITC "SK이노베이션, LG배터리 특허 침해하지 않았다"

이번 소송은 LG에너지솔루션(당시 LG화학)이 지난 2019년 9월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맞소송'이다.

발단은 같은 해 4월 LG화학이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소송이었다. 피소된 SK이노베이션이 자사 배터리 기술 '994' 특허를 침해했다며 LG를 제소했다. LG는 오히려 자사 핵심 특허를 SK 측이 침해했다며 또다시 맞소송을 제기했다. '맞소송의 맞소송'인 격이다.

본(本) 소송인 영업비밀 침해소송이 LG의 승리로 결정났기 때문에, 이번 판결은 예상에서 벗어난 결과란 평가가 나온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게시한 LG-SK 배터리 특허침해 소송 예비결정문

ITC는 지난 2월 양사 영업비밀 침해소송 판결에서 SK의 일부 리튬이온배터리 셀·모듈·팩에 대해 미국 생산과 수입을 10년간 금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SK가 LG로부터 11개 분야에 걸쳐 영업비밀 22개를 침해했고, 이를 통해 경쟁사들보다 10년을 앞서 유리하게 사업을 운영했다고 봤다.

특허 소송에선 이와 180도 다른 판결이 나왔다. ITC는 LG에너지솔루션의 코팅 분리막 특허(SRS 517, 241, 152) 중 2가지에 대해 청구항 무효 판결을 내렸다. 양극재 877 특허에 대해서도 세 가지 청구항 중 2가지를 무효로 봤다. 나머지 특허에 대한 판결엔 양사의 해석이 엇갈리나, ITC가 예비결정에서 SK 측에 유리한 판단을 내렸다는 게 공통된 입장이다.

ITC가 예비결정을 토대로 최종결정을 내리는 만큼, 특허 소송의 승자는 SK이노베이션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의 ITC 특허 침해소송에서 예비결정의 약 90%가 최종결정에서 그대로 유지됐기 때문. 앞서 양사가 벌인 영업비밀 침해소송에서도 LG의 승소는 이미 예비결정 단계에서 확정됐다.

LG에너지솔루션(왼쪽)과 SK이노베이션(오른쪽)의 전기자동차 배터리 제품. 사진=각 사

합의 가능성은 안갯속…美 대통령 거부권 행사 여부가 관건

영업비밀 침해소송에서 패소한 SK는 다시 승기를 잡았다고 평가했다. SK이노베이션은 "ITC가 비(非)침해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이미 예상하고 있었고, 이번 예비결정은 SK이노베이션의 독자적인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이라며 "LG가 결정에 불복하더라도 충분히 방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LG는 ITC의 결정에 대해 유감을 표하면서도, 향후 적극적인 소명에 나서겠다고 예고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예비결정의 상세 내용을 파악해 남은 소송절차에 따라 특허침해와 유효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며 "특히, 양극재 특허의 경우 특정 청구항에서 유효성과 침해가 모두 인정됐기 때문에 이에 대해 적극 소명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번 소송의 최종결정기일은 8월 2일 나올 예정이다. 반대로 SK가 LG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예비결정은 오는 7월 30일, 최종결정은 11월 30일에 나온다.

미국 조지아주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사진=SK이노베이션

이제 주목할 점은 영업비밀 침해소송 판결의 효력 발생 여부다. 이번 소송의 예비결정이 영업비밀 침해소송 판결의 효력이 발생하는 11일까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영향을 미칠 지가 관심사다.

관련기사

양사가 이번 소송의 본 소송인 영업비밀 침해소송 결과와 합의금액을 두고 입장차가 큰 만큼, 합의 가능성은 아직 안갯속이다. SK이노베이션은 1조원대를, LG에너지솔루션은 3조원대의 합의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SK는 현지 사업 포기 가능성도 시사하며 미국 정부 설득에 집중하고 있다. LG도 대규모 투자 카드를 꺼내들며 방어에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이 영업비밀 침해소송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한은 오는 11일까지로, SK의 10년간 미국 내 배터리 생산·수입금지 조치가 발효되는 시점은 이 이후부터다. SK는 연방순회항소법원을 통해 항소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