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은행들, 금소법 첫 날 진땀…"복잡한 상품은 나중에"

시스템 부족· 직원 교육 미비로 창구 대혼잡

금융입력 :2021/03/25 17:17

"고객님,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시행된 첫 날이라 제가 아직 업무가 미숙합니다. 급하신 건이 아니라면 4월 초 다시 방문하셔서 가입하시는 건 어떠세요?"

25일부터 금소법이 시행되면서 시중은행 창구에선 펀드·방카슈랑스 같은 복잡한 금융상품 뿐 아니라 예·적금처럼 상품구조가 비교적 단순한 상품도 가입이 어려웠다. 

서울 종로구나 중구처럼 직장인 내방객이 많은 곳은 그나마 양호했다. 녹취 시스템과 직원 교육이 일부 이뤄져 1시간 남짓 기다리면 가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외곽 지점에선 고객을 돌려보내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금소법이 적용되면서 금융사들은 모든 금융상품에 대해 적합성·적정성 원칙·설명 의무·불공정영업행위 금지·부당권유행위 금지·광고규제 등 6대 영업 행위 규제를 준수해야 한다. 소비자는 청약 철회나 위법 계약 해지권을 보장받게 된다.

금소법 시행 첫날 은행들의 대응 상황을 살표보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위치한 KB국민은행·신한은행·하나은행·우리은행에 방문했다. 이 은행들에 ▲개인 신용대출 금리와 한도 조회, 대환 대출 여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편입 상품 및 만기 상담 ▲퇴직연금 상품 변경 등에 대해 문의해봤다. "금소법 시행 첫 날이라 아직 시스템과 업무 숙지가 미숙하니 시간이 흐른 뒤 찾아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서울 서대문구 은행 전경.(사진=지디넷코리아)

25일은 대다수 직장들의 월급날인데다 공과금 납부가 몰리는 날이다. 그러다보니 객장이 미어터졌다. 한 은행엔 기자가 찾았을 때 대기 고객 수만 37명에 달했다. 수십여명이 되는 고객들이 객장에 앉아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펀드 가입을 도우려던 A은행은 본부 지원부서의 전화없이는 가입절차를 이어나가지 못했다. 금소법의 상세 규정을 인지해 업무까지 이어나가는데 시간이 부족했다는게 직원 이야기다. 

펀드 가입을 위해선 금융소비자의 투자자 성향 분석이 필요하다. 투자자 성향 분석에 관한 설명서와 안내 등이 모두 녹음돼야 한다. 또 투자자 성향 분석 결과는 고객에게 종이 등의 형태로 제공돼야 한다. 혹시 직원의 실수나 누락으로 투자자 성향보다 위험도가 큰 상품에 가입하거나 고객이 '듣지 못했다'고 할 경우 금소법에 의거해 위법 계약을 해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 직원은 전화 연결을 기다렸다. 통화가 이뤄지는데만 30여분을 기다려야 했지만 투자자 성향 분석 결과에 대한 프린트 시스템 미비로, 인쇄대신 자필로 성향 분석 결과 서류를 건내줬다. 진이 빠질대로 빠진 직원과 기자는 후일을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자료=뉴시스)

금융투자상품의 불완전판매를 막고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제고겠다는 다는 금소법 취지는 십분 공감한다. 그러나 길어진 대기 및 업무 처리 시간에 따른 비효율성은 법의 취지를 떨어트리는 것이 현장의 실제 모습이다.

반면 은행이 지나치게 쉽게 금융투자상품을 전국민을 대상으로 판매했다는 의구심도 지울 수 없다. 금융상품 구조가 복잡해졌기 때문에 서류 몇 장으로 고객이 100% 이해하긴 어려운 면이 있어서다. 그동안 은행들은 고위험등급의 펀드를 서류 몇 장으로, '투자상품 설명을 들었으며 이해했다'는 자필로 위험 부담을 모두 져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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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고급 해바라기유를 준다는 광고물에 눈이 번쩍 뜨여 가입할 필요도 없는 상품을 가입했을 수도 있다. 금소법 시행 이전 만든 광고물도 법 규제 대상이지만 아직도 이를 치우지 못한 은행 지점이 있었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손해배상 입증 책임이 금융사에 있고 위법 계약 철회권 등 소비자를 위한 보호 조치를 최소화하기 위해 보수적인 판매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며 "금융당국과의 협의점을 통해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