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다변화 시대에 공공성은 옛말, 공연성 따져봐야"

주파수 근거 공공성 아닌 '누구나 볼 수 있다' 개념 필요

방송/통신입력 :2021/03/25 08:57

미디어의 공공성보다 앞으로는 '공연성'이란 책무를 더 중요하게 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공영방송 외에 IPTV나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와 같이 새로운 시청각 미디어를 법 안으로 포섭할 경우, 방송법상 '공공성’ 개념을 다양한 매체들에 관통하도록 어떻게 재조합 할 지 고민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교수는 24일 서울 양천구 방송회관에서 열린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의 바람직한 정책방향 모색 세미나’에서 주파수나 전달수단에 근거한 공공성 개념보다는 누구나 볼 수 있다는 뜻의 '공연성' 개념에 초점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교수

정 교수는 “미디어를 재편할 필요가 있는 가운데 실제로 공익성을 해체할 것이냐 전반적으로 높여야 하느냐 문제가 된다”면서 “주파수에 기인한 공공성보다는 전체적으로 우산을 씌워줄 공연성 개념이 필요한데, 이 공연성이란 ‘누구나 볼 수 있게 한다’란 뜻”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사업자를 규제하는 방식은 포괄적 네거티브로 하고, 향후 방통위의 역할은 미디어를 위한 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은 성격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교수는 “방통위가 앞으로 해야 할 것은 내용 규제를 할 수 없다면 자율규제로 협력적으로 만들되, 미디어에서의 산업거래와 공정거래를 위해 일해야 한다”며 “네거티브 중심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명확한 표현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OTT 등 매체 별 공적책무 무게 달라"

이번 세미나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1월 새해 업무계획 발표한 후, 이때 발표된 정책 수립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전문가 의견을 듣는 자리로 마련됐다. 당시 방통위는 OTT, IPTV 등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 서비스들에 ‘시청각 미디어 서비스’ 개념을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방송법이란 낡은 규제를 수정·보완하는 한편 OTT 같은 신규 서비스를 이 법 안으로 편입시키겠다고 칼을 빼든 것이다.

그동안 새로운 시청각 미디어들로 인해 방송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공적 책무를 지닌 공영방송마저 시청률 경쟁의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 시청각 미디어 서비스는 향후 방송발전기금 징수 대상에 포함될 계획이며, 이 방송발전기금은 공익적 프로그램 제작 및 중소 방송업체 지원에 활용된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세미나 인사말에서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새로운 규제 질서가 미디어 공공성을 약화하기도 하는데, 건강한 공론의 장으로서 미디어의 공적 책무가 중요하다”며 “공공성의 방향을 함께 공유하고 그 방향성 하에서 구체적으로 미디어들이 갖는 공적 책무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공적 책무의 내용과 무게는 각 매체 별로 차이가 있고 무게도 다르다”면서 “그런 부분에 대한 세밀한 검토들이 이뤄져야 현실 환경에 맞는 규제 체계도 만들어지고 정책도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같은 맥락에서 OTT 서비스들에 전통 방송 사업자들이 갖던 공적 책무까지 강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디지털 시대에는 공영이든 아니든 방송 개념에 집착하는 일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며 “세계의 공영방송 사업자들은 이미 인터넷 플랫폼이나 하이브리드 플랫폼을 통해서 주문형 동영상 역무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역무는 이미 전통적 방송의 범주를 넘어선 것이기에 이 역무에 전파의 제한성이나 내용의 침투성 등 규제 원리를 적용해서 공적 매체 규제론을 적용하기 어렵다”면서 “이 때문에 공적 역무제공 사업자를’ 공적 역무제공 매체라 재개념화 하고 그에 따른 의무와 책임의 범위를 재설정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커진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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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또한 그는 “방송이 아닌 시청각매체의 공공성을 정당화 하는데, 전파의 제한성 논변이나 내용의 침투성 논변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입법을 통한 형성적 방법을 채택할 수밖에 없다”며 “공적 이념을 먼저 설정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공적 역무제공 매체사업자를 법적으로 형성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다층의 (방송)사업자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기존 법제로는 사업자나 인물을 규정하는 것이 안 된다"며 "법에 들어가는 개념의 타당성 문제고, 현실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사업자들이 이 법을 지켜야겠다는 의무감을 느껴야하는데 맞는지 안 맞는지도 몰라 의무감을 느끼지 못하는 게 현장의 근본적인 문제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