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은 왜 '파운드리 진출' 선언했나

반도체 수급난 적극 활용…美 공급망 확충 전략도 감안

컴퓨팅입력 :2021/03/24 10:17    수정: 2021/03/25 08:05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텔이 돌아왔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지난 2월 취임한 겔싱어 CEO는 23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통해 "인텔의 부활을 이끌겠다"고 선언했다.

씨넷, CNBC를 비롯한 외신들에 따르면 겔싱어는 이날 200억 달러(약 22조6천억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 지역에 반도체 공장 2곳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와 함께 1980년대와 1990년대 인텔 전성기를 이끈 실행 문화를 다시 살리겠다고 선언했다. 

팻 겔싱어 인텔 CEO (사진=씨넷)

겔싱어는 그 동안의 인텔을 '종합반도체업체'로 규정했다. 컴퓨터 칩을 디자인하고, 제작한 뒤 마케팅까지 하는 회사란 의미다. 하지만 겔싱어는 여기에다 '서드파티 제조'란 새로운 사업을 덧붙이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인텔 파운드리 비즈니스’란 수탁생산(파운드리) 사업 부문을 신설하기로 했다. 

■ 인텔 인사이드 자존심, 모바일 시대 개막과 함께 경쟁 뒤져  

한 때 인텔은 마이크로소프트(MS)와 함께 PC 시대의 양대 산맥으로 꼽혔다. 윈도 운영체제(OS)와 인텔 칩은 PC를 지탱하는 생명줄이었다. 인텔 칩이 탑재된 PC는 품질 보증서나 다름 없었다. 이런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마케팅 용어가 ‘인텔 인사이드’였다.

하지만 모바일 시대의 개막과 함께 인텔의 전성기도 저물었다. 퀄컴, ARM을 비롯한 여러 업체들에게 모바일 칩 패권을 넘겨줬다. ’무어의 법칙’으로 불렸던 PC 칩 성능 개선 작업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인텔이 반도체 분야 리더십을 상실하면서 애플 같은 기업들은 삼성, TSMC 등 아시아 칩 제조업체 쪽에 눈길을 돌렸다.

(사진=인텔)

애플의 M1 칩이 이런 흐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TSMC가 제작한 M1 칩은 인텔 칩보다 속도는 더 빠른 반면 배터리 소모량은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30년 이상 인텔에 몸 담았던 팻 겔싱어 CEO는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취임 이후 첫 기자회견에서 “인텔이 돌아왔다”는 선언과 함께 대대적인 투자 계획을 공개했다. 특히 최근의 반도체 수급난을 활용할 방안 중 하나로 ‘파운드리 사업 진출’이란 새로운 전략까지 들고 나왔다. ‘인텔 인사이드’를 외칠 때는 상상도 하기 힘들었던 전략이었다.

인텔이 반도체 자체 생산 뿐 아니라 파운드리까지 진출하기로 한 것은 안팎의 여러 상황을 감안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 "1980년대 영광 이끈 인텔 실행규칙 되찾겠다" 선언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월 미국내 반도체 생산이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라고 선언했다. 중국과 분쟁이 격화되고 있는 데다 전기차를 비롯한 새로운 산업 수요가 늘면서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망 확보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 아시아 기업들에 반도체 생산을 위탁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바이든 대통령은 앞으로 100일 동안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생산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행정명령을 발령하기도 했다.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 진출은 이런 걱정을 해소하는 중요한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CNBC는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은 아시아 칩 공장에 대한 중요한 대안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바이든이 행정명령에 서명할 당시 인텔은 “오늘의 행정명령은 글로벌 반도체 제조 경쟁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하고, (미국 기업들이) 자국 정부의 강력한 후원을 받고 있는 외국 기업들과 대등하게 경쟁하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논평하기도 했다.

미국 애리조나주에 위치한 인텔 오코틸로 팹. (사진=인텔)

겔싱어는 이런 여러 상황을 인텔 부활의 계기로 삼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자체 칩 제작 능력을 극대화할 뿐 아니라 파운드리까지 담당하면서 ‘영광의 시대’를 재현하겠다는 것이다.

이날 겔싱어는 “인텔이 돌아왔다. 과거의 인텔은 새로운 인텔이다”는 말로 이런 야심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는 또 “인텔의 실행규칙을 되찾겠다”고 강조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인텔 전성기를 이끈 전설적인 CEO인 앤디 그로브를 거론하기도 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