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은 시작일 뿐'…車-배터리 경계 파괴된다

[이슈진단+] 전기차배터리 내재화 움직임

디지털경제입력 :2021/03/18 17:01    수정: 2021/03/19 09:45

폭스바겐이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를 내재화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배터리 제조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배터리 자체생산을 비롯한 전기차 수직계열화가 결국 완성차와 배터리업계 간 경계를 허물것이라는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움직임이 오래전부터 예견된 것인 만큼, 업체별 유불리를 따지기보다는 장기적인 대응책을 구축하는 게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배터리 업계가 주행거리·안정성을 높인 배터리 등 독자적인 기술경쟁력으로 승부하되, 전기차 제조로도 영역을 넓히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폭스바겐은 지난 15일(현지시간) 개최한 '파워데이'에서 전기차사업 중장기 로드맵을 발표했다. 오는 2023년부터 통합형 셀(Unified Cell)이라고 불리는 각형 전기차배터리를 적용하고, 2030년까지 이 배터리 비중을 80%로 높인다는 게 로드맵의 핵심이다.

토마스 슈말 폭스바겐그룹 기술 부문 이사가 15일(현지시간) 첫 배터리데이에서 배터리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씨넷

'각형이냐 파우치형이냐'…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국내외 언론은 파우치형 배터리를 사용해온 폭스바겐이 각형으로 배터리를 전환한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폭스바겐은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국내 3사로부터 배터리를 공급받는다. 파우치형을 주로 생산하는 LG와 SK 공급망이 타격을 입을 것이란 관측이 주를 이뤘다. 삼성과 중국 CATL, 폭스바겐이 투자한 스웨덴 노스볼트 등 각형 배터리를 생산하는 기업은 때 아닌 호재를 맞았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문제는 완성차 업계의 전기차배터리 내재화 움직임이다. 지금까지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겠다고 발표한 기업은 테슬라·폭스바겐 두 곳이다. 다만, 이들 외에도 GM과 토요타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 제조 기술에 투자 중인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9월 21일 '배터리데이'를 하루 앞두고 "배터리 공급사가 최대한 속도를 내더라도 2022년 이후엔 중대한 물량 부족이 예상된다"며 "파나소닉·LG·CATL 등 협력사 구매물량을 줄이지 않고 늘릴 계획"이라고 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테슬라 배터리데이'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유튜브 캡처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 발표로 국내 업계엔 '배터리 내재화'라는 당장의 불확실성이 단기적으로나마 해소됐지만, 수명 연장에 불과하다"며 "테슬라 배터리데이가 열린 지난해 당시도 그렇고 현재도 배터리 공급부족 문제로 인해 업계가 호황을 누리지만, 완성차 업계가 자체 생산에 나선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터리 업계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일론 머스크가 밝힌 내재화 계획이란 설명이다. 당시 머스크는 '3~4년 내 (배터리 생산) 계획을 실행하겠다'고 했다. 테슬라는 미국 캘리포니아 프리몬트에 위치한 생산라인에서 배터리를 생산할 예정이다. 올해 말 10기가와트시(GWh) 규모로 생산능력을 키워 2030년까지 3테라와트시(TWh, 3000GWh)로 확대한다는 목표다.

이런 와중에, 폭스바겐의 발표에서 완성차 업계가 너나 할 것 없이 배터리 내재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배터리 내재화는 전기차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배터리 물량 부족이 예상되면서 모든 완성차 업체가 고민하는 부분이다.

또다른 업계 한 관계자는 "배터리는 전기차 가격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값비싼 부품"이라며 "배터리를 더 싼값에 자체 조달해 수직계열화를 이루겠다는 게 완성차 기업의 최종 목표"라고 했다.

르네 코네베아그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그룹 사장이 2022년 국내 출시될 폭스바겐 전기차 ID.4.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車업계 숙명은 배터리 단가 낮추는 것…넘보지 못할 기술로 승부봐야"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를 자체 개발하기 전까진 국내 3사가 이끄는 배터리 업계에서 제품을 구매할 수 밖에 없지만, 그 이후엔 대규모 수익원을 하나 둘 잃을 가능성이 높다. 배터리에 쏟아부은 투자비용을 회수하기도 전에 완성차 업체가 기술력을 따라 잡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도 드러난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재 100원 중에 40원 이상을 배터리 제조사에 줘야하는 상황인데 이것을 낮추는 것이 자동차 제조사의 숙명"이라며 "폭스바겐을 필두로 앞으로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들이 배터리 내재화 생각을 하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완성차 제조사가 감히 넘볼 수 없는 기술 영역을 선점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배터리 양산도 그 중 하나다. 전고체배터리는 전해질을 고체로 사용해 전력량을 늘리고 폭발 위험을 줄이는 한편, 고체 전해질이 분리막의 역할까지 대신해 배터리 구조도 단순화한다.

삼성SDI는 전고체배터리 양산 시점을 2023년 소형 셀(Cell), 2025년 대형 셀 검증을 각각 마친 후인 2027년으로 잡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상용화 시점을 2028~2030년으로 내다봤다. SK이노베이션도 지난해부터 개발 인력 충원에 나섰다. 현대차도 2025년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시범 양산한 후, 2027년 양산 준비에 들어가 2030년경 본격 내놓을 예정이다.

배터리 3사 CI. 사진=각 사

이호근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재 전기차배터리 시장은 국내 3사가 34% 비중을 차지하나,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선 전고체배터리 소재 원천기술 상용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국내 업계는 2030년쯤이면 전고체배터리 양산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유럽에 비해 국내 업계는 관련 연구인력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해 정부 차원의 규제 완화를 통한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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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차와 배터리 업계 간 사업영역이 희미해지면서, 머지않은 미래엔 배터리 제조사가 전기차 생산에 직접 뛰어들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휴대폰과 PC를 위탁생산 방식으로 제조하는 애플이 전기차 시장에 진출하면 '전기차 파운드리(Foundry)'라는 신시장이 열릴 것이란 관측도 비슷한 관점이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배터리 공급부족이 향후 5~6년은 이어지면서 완성차 업계가 배터리 제조에 나섬에 따라 앞으로는 배터리 산업 자체가 영역 파괴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부품과 모듈별 공정에 더욱 큰 영향을 받아 진입장벽이 낮다.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처럼 업계 간에 치고받는 양상이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