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과의 전기차배터리 영업비밀 소송에서 패소한 이유에 대해 "글로벌 분쟁 경험 부족으로 인해 미국 사법체계 대응이 미숙했던 탓"이라고 내부 진단을 내렸다. 회사 측은 우선 합의를 검토한다는 입장이지만, 합의금액을 둘러싼 간극은 아직도 큰 것으로 관측된다.
SK이노베이션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 10일 오후 사외이사 전원이 참석한 확대 감사위원회를 열고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소송 최종결정과 관련해 논의했다. 사외이사진은 담당 임원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이같은 검토 의견을 냈다.
회사 관계자는 "이번 감사위원회는 주요 경영 현안에 대한 최종 의사결정권한을 가진 이사회가 유사한 상황의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보완책 마련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ITC는 지난달 10일(현지시간) SK이노베이션의 일부 리튬이온배터리 셀·모듈·팩에 대해 미국 생산과 수입을 10년간 금지한다는 최종결정(Final Determination)을 내렸다. 이어 이달 3일에 공개한 최종판결문에선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영업비밀 22개를 침해했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ITC 소송에서 문서 삭제로 인해 영업비밀 침해 여부는 다퉈보지도 못하고 수입금지 조치를 받았다'는 게 SK이노베이션의 입장이다.
감사위원회는 회사가 글로벌 분쟁 경험 부족 등으로 미국 사법 절차에 미흡하게 대처한 점을 강하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회 측은 "이번 일을 반면교사 삼아, 내부적으로 글로벌 소송 대응 체계를 재정비함과 동시에 외부 글로벌 전문가를 선임해 2·3중의 완벽한 컴플라이언스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라"고 주문했다.
회사는 시일 내 컴플라이언스 모니터링 체계를 고도화 하기 위해 미국에서 글로벌 컴플라이언스 분야의 외부 전문가를 선임하는 절차를 진행키로 했다.
최우석 SK이노베이션 대표감사위원은 "소송의 본질인 영업비밀 침해 여부에 대한 방어의 기회도 갖지 못한 채 미국 사법 절차 대응이 미흡했다는 이유로 패소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SK이노베이션이 글로벌 사업을 더욱 확대해 가야 하는 시점에서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글로벌 기준 이상으로 강화하는 것은 매우 시급하고 중대한 일"이라고 말했다.
아직 합의금액에 대한 양사 입장차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사는 배상과 관련한 협상을 여러차례 진행했지만 합의금 규모와 영업비밀 침해 인정 여부를 두고 평행선을 달려왔다.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5천~8천억원대, LG에너지솔루션은 3조원대 합의금을 바라는 것으로 전해진다.
위원회는 이날 자사가 제시한 새로운 협상 조건과 그에 대한 LG에너지솔루션 측의 반응 등 지금까지의 협상 경과에 대해서도 보고받았다. 위원회 측은 "경쟁사의 요구 조건을 이사회 차원에서 향후 면밀히 검토하겠다"면서도 "사실상 당사가 미국에서 배터리 사업을 지속할 의미가 없거나 사업 경쟁력을 현격히 낮추는 수준의 요구 조건은 수용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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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LG 측이 제시한 합의금 요구를 쉽게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SK이노베이션이 미국 조지아에 건설 중인 배터리 1·2공장에 투자한 금액이 일단 3조원 규모다. 조지아 외에도 국내 서산, 중국 창저우, 헝가리 코마롬 사업장을 비롯해 최근 신규 투자를 결정한 헝가리 이반차 공장까지 앞으로 투자해야 할 금액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이사회 측은 "ITC 소송 관련 대응을 위한 입장 정리와 근본적인 개선방안 마련을 위해선 주요 사안에 대한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며 "시일 내 대덕 배터리 연구원 등 현장을 방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