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 제값 받기' 정착을 위한 4가지 과제

[연중기획] 코리아 ICT 정책 톺아보기③- SW 제값주기

컴퓨팅입력 :2021/03/05 10:24    수정: 2021/03/11 21:45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에서 개발 및 운영과 관련한 적정대가를 주고받는 '제값주기'는 업계의 가장 오래된 과제 중 하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SW 분리발주, SW 유지보수 책정, 과업변경 대상 보상 등 다양한 정책이 마련되고 매년 가이드라인이 조정되고 있다.

제값주기는 국내 SW산업의 발전과 글로벌 진출을 위해 필요한 정책이다.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와 개선되지 않는 관행으로 SW사업 대가나 유지관리 비용은 여전히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실정이다.

실제로 공공SW 사업을 통해 성장한 기업은 민간사업과 글로벌 시장 진출에 발목이 묶이는 형국이다. 줄어든 영업이익으로 인해 공공SW 사업에 종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픽사베이)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 따르면 공공매출이 1원 증가할 때, 민간매출은 0.6원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민간매출이 1원 증가할 때, 공공매출은 0.13원 감소했다. 공공매출의 민간매출 상쇄효과가 명확했다.

관련 업계는 반복되는 제값주기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SW 사업의 구조를 변경하고, 굳어진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 SW 분리발주 활용사례 높여야

SW 분리발주는 공개 경쟁입찰 후 가격을 하향 조정하는 하도급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2010년 처음 도입했다.

공공SW사업은 주로 시스템통합(SI)과, 하드웨어(HW), 네트워크 등 관련 업무를 발주자가 한 기업과 일괄계약 맺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계약을 체결한 기업이 사업에 적용할 SW제품 선택권과 가격 결정권을 가지기 때문에 SW기업은 제값을 받기 어려운 구조였다.

SW 분리발주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발주기관이 직접 상용SW 기업과 직접 계약, 구매할 수 있도록 상용SW를 별도로 발주하는 것이다.

10년간 시행된 SW 분리발주 제도에 대한 업계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발주자는 공개경쟁을 통해 기술성이 우수한 SW를 선택할 수 있고, SW기업은 주계약자로 참여해 수주사에 종속되지 않고 품질 위주의 경쟁을 할 수 있으며, 하도급으로 인한 폐해도 최소화할 수 있다.

다만 분리발주 제도를 활성화하고 취지에 맞게 시행하도록 제도 보완과 인식개선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예외 조항을 활용해 SW 분리발주를 회피하는 사례가 2013년 104건, 2017년 334건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분리발주를 회피하는 이유는 발주사에 주어지는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직접 상용SW를 수주하는 제도 특성상 발주담당 공무원의 업무량이 늘고, 문제 발생 시에도 통합 수주사가 아닌 발주사가 나서야 한다.

한 IT서비스 기업 임원은 "직접 여러 제품의 성능을 평가하고 각 기업과 계약을 맺어야 하는 등 업무가 가중된다는 점에서 SW 분리발주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 사례가 있다”며 “SW 생태계를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항인 만큼 예외조항을 다듬고 책임 체계도 명확하게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 SW 유지보수 요율 가이드 마련 필요

공공 소프트웨어 조달 시장 총 규모는 약 5조원 수준이다. 이 중 유지보수 사업은 약 41%로 총 사업 유형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국산SW의 유지보수 요율이 낮아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유지보수 요율은 소프트웨어 유지보수에 필요한 비용으로 일반적으로 판매 가격에 대한 비율로 산출된다.

2010년 2월 지식경제부 고시에 따르면 국내 SW 유지보수 비용은 소프트웨어개발비의 10~15% 수준이다. 등급에 따라 11~19%의 요율이 적용됐다. 이후 2019년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에서 발표한 대가 산정 가이드 개정안에 따라 유지관리 등급을 1~5등급으로 나누고 11~19%로 변경됐다.

지속적으로 요율이 개선되고 있지만 22% 수준인 외산 SW에 비해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통합 유지보수 사업의 경우 정해진 요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SW 사업처럼 사업 수주사가 가격 결정권을 가지기 때문이다. 통합 유지보수 사업은 사업자 간 경쟁 과정으로 인해 사업 금액보다 적은 금액으로 수주되는 경우가 다수다. 수주한 기업은 수익을 내기 위해 하도급에 비용을 낮추는 경우가 많다.

소프트웨어 정책연구소에 따르면 통합 유지보수 사업에서 국산SW 기업이 실제 수령하는 유지보수 대금은 15%가 아니라 평균 약 7% 이하의 금액을 받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외산 SW기업에게는 유지보수 대금을 그대로 지불하지만, 국내 유지보수 기업만 비용을 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채효근 IT서비스산업협회 부회장은 “중소 SW기업의 수익성 악화는 개발자 이탈 등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며 SW업계 전체의 질적 하락을 야기한다”며 “발주사 입장에서도 유지보수 기업의 능력이 떨어질수록 해당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야 하는 업무의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그는 “같은 유지보수라고 해도 SW의 종류나 작업환경, 서비스 방식 등에 따라 업무량과 필요한 기술수준이 다르다”며 “외산 소프트웨어처럼 요율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비용을 지불하기 위한 명확한 가이드가 마련되야 한다”고 말했다.

■ 명확한 기준 필요한 과업변경 보상

SW사업은 사업기간 중 과업변경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시스템이 구축되면서 요구사항이 구체화되고,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공SW사업 중 발주기관과 사업자 간 충분한 협의 없이 과업변경이 이뤄지거나, 과업변경 이후에도 계약금액, 기간조정 등 후속 조치 부족으로 실제 업무량에 비해 제대로 비용이 지불되지 않아 잦은 분쟁이 발생했다.

과기정통부는 2010년부터 분쟁 개선을 위해 계약금액, 기간조정 가이드 등 필요한 후속조치 관련 조항을 지속적으로 개정해왔다. 과업 변경 신고 및 감시를 위한 모니터링단도 운영 중이다.

SW 과업 변경 분쟁의 주요인은 불명확한 제안요청서(RFP)와 과업 변경에 따른 추가 대가에 관련 제도 미흡이 꼽힌다. 이로 인해 요청서에 작성된 수정 요청 내용이 모호하거나, 실제 업무량에 비해 적게 측정되며 적정 대급 지불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 특성상 발주부처의 담당자가 자주 변경되고, 책임소재가 불명확하다는 점도 개선해야 할 부분으로 지적됐다.

한 IT서비스기업 임원은 “공공SW 사업은 2~5년 이상 장기간 개발이 이뤄지는데 이 사이에 발주를 담당했던 담당자가 교체되곤 한다”며 “이러면 요청사항이나 업무 추가 등에 대한 대금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특히 법적분쟁까지 이어지면 이때도 지속적으로 담당자가 교체되고 책임질 사람이 없어지면서 분쟁이 장기화되는 경우가 많다”며 “법적분쟁이 장기화될수록 발생하는 인건비 등은 고스란히 기업의 적자가 되는 만큼 분쟁을 지속하기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과업변경 내용과 가치를 명시할 수 있도록 RFP를 개선하고, 과업변경에 따른 대가를 제대로 지급하기 위한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채효근 IT서비스산업협회 부회장은 “과업변경은 같은 기능이라도 적용시기와 관련 SW 등에 따라 업무량이 굉장히 달라지기 때문에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며 “그런 면에서 지난해 SW진흥법을 통해 마련된 과업변경심의위원회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과업변경심의위원회는 과업변경이 발생할 경우 계약금액, 기간조정 등 필요한 후속조치를 심의해 공공SW 사업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있다.

■ SI 비중 줄이고 공공SW 사업 인식 개선 필요

정부는 십 수년간 SW 서비스가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선보이고 개선해왔다. 이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SW업계의 양극화는 심해지고, SW기업 진흥도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제자리걸음의 원인으로 SI중심의 사업 구조와 개선되지 않는 SW사업의 관행을 지목했다.

매출이 안정적이긴 하지만 수익률이 낮아 자체 서비스 개발을 위한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 신규 기술의 연구개발에 투자할 여유가 없고, 자체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기능만 구현하는 것에 그쳐 민간진출을 위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채효근 부회장은 “세금을 사용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보니 비용을 최대한 축소하려는 정부부처의 움직임이 있다”며 “이익률이 낮아 연구개발을 못 하고 인건비는 또 낮아지니, 결과물도 수준이 높지 않고 기업의 경쟁력도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 해외진출 등은 생각조차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SW산업의 특성에 맞춰 별도로 업무를 측정할 수 있는 가이드를 따르지 않고 관행처럼 금지된 헤드카운트나 노임단가를 적용하는 사례가 많다”며 “이러한 관행을 없애고 정확하게 SW 서비스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해야 지속되는 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련 업계는 최근 정부가 주도하는 지능형 정부 사업을 통해 제값 받기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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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애플리케이션을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는 클라우드 특성상 SI비중이 줄고 상용SW의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SW기업은 다양한 서비스를 만들어 직접 정부에 제공할 수 있고, 가격 협상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조영훈 소프트웨어산업협회 실장은 “지금 제값주기와 관련한 대부분의 논란은 공공사업 수주를 위해 한 컨소시엄에 종속되는 문제에 기인한다”며 “SW업체가 직접 제품을 만들고 정부에 원하는 가격에 판매할 수 있는 환경이 활성화된다면 헤드카운트나 RFP 등에 대한 분쟁도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