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개그 프로그램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면서 무대를 잃은 코미디언들이 유튜브로 모여들었다. 환호하거나 냉소를 보내는 관객도, 통과해야 하는 까다로운 선배나 PD 관문도 없다. 그런데 그 파급력은 방송 못지않다. 아니 오히려 더 뜨겁다. 유튜브에 새 둥지를 튼 코미디언들을 4일 유튜브가 마련한 크리에이터와의 대화에서 만났다.
피식대학은 구독자 67만명, 일주어터는 42만명, 빠더너스는 26만명을 보유했다. 이들이 갑자기 많은 구독자를 확보한 것은 아니다. 코미디언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없어지면서 온라인 무대를 꾸리고 싶은 마음에 하나씩 올린 영상이 서서히 빛을 발한 것이다.
"열정! 열정! 열정!"...피식대학, 힘 뺀 코미디가 구독자 사로잡았다
먼저 피식대학은 코미디언인 정재형, 이용주, 김민수 크리에이터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채널이다. 최근엔 '05이즈백'과 '한사랑산악회', 'B대면 데이트' 등의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들은 유튜브에서 힘을 빼고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피식대학은 "코미디 무대에서는 관객들을 웃기기 위해 과하게 힘을 줘서 연기를 했지만, 유튜브에서는 힘을 뺀 자연스러운 연기가 가능하다. 그래도 구독자들이 디테일을 다 알아주고 댓글을 달아주신다"고 말했다.
피식대학은 콘텐츠 회의에 특히 공을 들인다. 웃음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영상 내내 소소하고 촘촘한 웃음이 잘 배치됐는가가 중요한 포인트라고. 주로 기승전결이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지만, 스토리에만 집착하면 웃음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피식대학은 "처음에 대학생들을 위한 공감 콘텐츠를 만드려고 했지만, 대학 생활에 공감을 하지 못하는 이용주(30대 중반)씨가 콘텐츠에 몰입을 잘 하지 못해 '05학번이즈백'이 탄생하게 됐다"며 "초반에 시행착오를 줄이고 구독자들의 반응을 바로 얻기 위해 콘텐츠를 많이 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유튜브 댓글 등 플랫폼을 활용하면 더 웃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구독자들이 서로 웃기는 장면을 공유해 주면서 댓글 자체가 또 하나의 콘텐츠가 돼 더 큰 재미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유튜브의 장점을 "코미디라는 기술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주는 플랫폼"이라면서 "평범한 사람도 유튜브라는 오픈커머스를 통해 물건을 팔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문쌤, 문이병…빠더너스, 참신한 연출과 편안한 웃음이 인기 비결
한국지리 문쌤과 문이병 등 다양한 부캐(부 캐릭터)를 탄생시킨 빠더너스의 인기도 뜨겁다.
빠더너스를 운영하는 문상훈 크리에이터는 "만들어둔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게 됐는데, 반응이 좋았다"며 "TV프로그램과 유튜브를 비교하면 편집권이 유무가 차이 같다. 방송은 연출 방향이나 흐름 등에 다 맞춰야 하지만, 유튜브는 편집 권한이 온전히 채널 운영자에게 있기 때문에 크리에이터에 최적화됐다고 할 수 있다. 콘텐츠 이해도가 가장 높은 사람이 의도하는 바로 편집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빠더너스 팀도 아이디어 공유 회의를 중요시 여기지만, 맡은 시리즈가 있으면 그 한명이 기획과 연출, 편집을 다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때문에 이를 다 어우를 수 있는 경험이 빠더너스 팀에서는 가장 중요하다.
문 크리에이터는 "회의를 할 때 아이디어가 새로운 그림인지 가장 먼저 생각한다"며 "웃음으로 연결되는 포인트가 있어야하고, 참신한 연출과 편안한 웃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유튜브 댓글에 대해서는 "피드백은 큰 성취감을 주고, 어쩌면 돈으로 살 수 없는 만족감을 준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문 크리에이터는 "유튜브는 영상을 올리기만 해도 바로 돈이 되니까 재능만 있으면 수익화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줬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69kg 되면 그만 둡니다...일주어터, 구독자와 함께하는 다이어트 통했다
일주어터를 운영하는 김주연 크리에이터는 짧은 코미디언 생활을 뒤로 하고 작은 회사 마케팅팀에서 일하다가 유튜브 크리에이터에 도전했다. 그는 "남들과 다른 게 살찐 것이라고 생각해 다이어트를 주제로 했다"며 "오래는 못할 것 같아서 일주일씩 하자고 생각해 채널명을 '일주어터'로 정했다"고 말했다.
김 크리에이터는 유튜브 댓글 반응이 구체적인 것이 상처보다는 발전에 있어서 도움이 된다고 했다. 공개 코미디 무대에서는 관객들이 웃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유튜브에서는 어떤 부분이 웃겼는지, 재미없었는지 구체적인 피드백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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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유튜브에서는 채널 주인이 PD, 작가, 연기자가 다 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짱이다'라는 생각으로 할 수 있다"면서 "꾸준히 동영상을 올리면 구독자가 늘어나고, 언젠가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지치면 안 된다"는 조언도 했다.
김 크리에이터는 다이어트가 성공하면 콘텐츠 제작을 그만둘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는 "69kg가 돼 그만두는 모습을 기대해달라"며 "3년 정도 걸릴 것 같다"고 참가자들에게 웃음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