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의 외주화 멈춰라"…산재 청문회서 고개 숙인 CEO들

국회 환노위, 포스코·LGD 등 9개社 대표 소환…여·야 질타 쏟아져

디지털경제입력 :2021/02/22 17:25    수정: 2021/02/22 19:06

건설·제조·택배 분야 9개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22일 국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열린 '산업재해 청문회'에 출석해 연이어 발생한 산재 사고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각 CEO들은 내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무재해 사업장을 만들기 위해 안전을 최우선 목표로 하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는 이날 포스코·쿠팡풀필먼트서비스·GS건설·포스코건설·CJ대한통운·현대건설·롯데글로벌로지스·LG디스플레이·현대중공업 등 9개 기업의 대표를 상대로 산재 청문회를 개최했다.

이들 9개 기업은 건설·제조·택배업 분야에서 최근 2년간 산업재해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한 업체들이다.

청문회 현장엔 최정우 포스코 회장, 노트먼 조셉 네이든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대표, 우무현 GS건설 대표, 한성희 포스코건설 대표, 신영수 CJ대한통운 택배부문 대표, 이원우 현대건설 대표, 박찬복 롯데글로벌로지스 대표, 정호영 LG디스플레이 대표,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가 출석했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관련 청문회에서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취임 후 사망사고 19건"…고개 숙인 최정우

9개사 가운데 가장 많은 질타를 받은 기업은 최근 잇따라 중대재해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였다. 최정우 회장이 취임한 2018년 이후 현장에서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는 8명에 이른다. 노조와 시민단체에서 주장하는 산재 사망사고는 총 19건으로 추산된다.

여야 할 것 없이 공세가 쏟아졌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포스코 노동자와 국민의 분노를 보면 최 회장의 임기 3년은 실패한 3년으로 보인다"며 "재무전문가인 최 회장이 현장과 동떨어진 대책만 내놓는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도 "포스코가 안전을 경영에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발표했음에도 산재 사고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의원들의 질문에 답할 때마다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는 "회사에선 안전을 최우선 목표로 시설 투자 등을 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한 것 같다"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해 무재해 사업장을 만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연이어 발생한 사고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하다. 유족께도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덧붙였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관련 청문회에서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를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의원들은 최 회장이 허리 지병을 이유로 지난 17일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한 점에 대해서도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최 회장의 불출석 사유서는 인정되지 않았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포스코의 회장으로서 무한한 책임을 갖고 청문회에 참석해 정중히 사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질타했다. 이에 최 회장은 "생각이 짧았다. 죄송하다"고 답했다.

GS건설·포스코건설·현대건설 등 건설업계에 대한 질의도 이어졌다. 안호영 국민의힘 의원은 "매년 건설현장에서만 500명 이상이 사망사고로 목숨을 잃고 있는데 추락, 낙하, 끼임 등 후진국형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며 "포스코, 현대, GS 등 건설 3사에서 발생한 사망자 수도 각각 10명, 7명, 4명으로 1~3위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우무현 GS건설 대표는 "산업재해가 다발적으로 발생해 송구스럽다"며 "중대재해법 제정을 계기로 대기업, 중소기업에서 안전에 대한 인식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성희 포스코건설 대표는 "안전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며 "추락 사고 등을 방지하기 위해 스마트안전 관련 장비도 개발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원우 현대건설 대표도 "산재를 예방하고 안전한 일터를 조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노트먼 조셉 네이든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대표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관련 청문회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건설·택배업계도 산재로 '몸살'…LGD는 "위험작업, 원청이 할 것"

쿠팡의 물류 자회사인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는 지난해 10월 발생한 물류센터 노동자 고(故) 장덕준 씨 사망사고와 관련해 사과하는 한편,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노트먼 조셉 네이든 CFS 대표는 "고인이 되신 장덕준 씨와 유족에게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故 장덕준 씨는 2019년 6월부터 경북 칠곡 쿠팡 물류센터에서 근무하던 중 지난해 10월 대구 수성구 자택에서 과로사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9일 장씨의 사망사고를 산재로 인정했다.

네이든 대표는 "저 역시 고인과 나이가 같은 딸이 있고, 고인의 부모님께서 얼마나 깊은 상처를 느끼셨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면서 "산재 조사 결과와 정보를 바탕으로 근로환경을 개선하고, 지속적으로 노동자 업무 환경 개선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정호영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관련 청문회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스1

LG디스플레이는 지난달 경기 파주사업장에서 발생한 화학물질 유출사고와 관련, 앞으로 하청이 아닌 원청이 위험작업을 수행하는 등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달 13일 LG디스플레이 파주사업장 P8공장에서 일어난 이 사고는 하청업체 직원들이 배관을 연결하는 작업 중에 발생했다. 당시 유독물질인 TMAH(수산화 테트라메틸 암모늄)가 누출돼 하청업체 직원 6명이 중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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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영 LG디스플레이 사장은 "저희 사업장에서 작업하다 근로자들이 큰 부상을 입었기에 엄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중대위험물질 관련 작업들의 경우 상호소통의 문제나 작업에 대한 직접적 통제, 위험관리를 위해 저희가 위험작업을 직접 수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는 산재 사고 발생 시 기업의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할 수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지난달 제정했다.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는 이 법의 핵심은 사업체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해 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경영책임자·공무원·법인 등에 징역 또는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