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가 스마트폰 사업의 존폐 여부를 놓고 장고에 빠졌다. 접을 것이냐 말 것이냐, 아니면 제3 지대를 선택할 것인가 고민이 깊다. 결론부터 말하면 어느 선택지도 쉽지 않다.
왜 그럴까. LG폰이 처한 상황 때문이다.
일단 LG폰의 위상이 그렇다. 애매하다. 리딩 브랜드와는 거리가 멀고, 그렇다고 중저가 시장에서 안 먹히냐, 그것도 아니다. LG는 한해 2천400만대~2천600만대의 휴대폰을 판다. 적은 수량은 아니다. 세계 9위권 정도다. 텃밭인 북미 시장에서는 아직도 10%대 초반을 점유하고 있는 브랜드다. 모바일커뮤니케이션(MC) 사업본부는 지난해 기준 연 매출은 5조5천억원, 연 적자는 9천억원 규모다.
당장에 통매각을 전제로 생각해 보면 당장 그림을 그리기 어렵다. 5~6년 전이면 모를까, 중국 기업들이 장악한 포화된 시장에서 전체 스마트폰 사업의 매각을 받을 플레이어가 많지 않다. 또한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하나를 버리면 다른 하나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버린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명확치 않다. 적자 규모는 줄어들겠지만 자칫 미래 사업의 알토란같은 플랫폼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LG전자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MC 사업본부에게 올해는 그야말로 가혹한 한 해가 될 전망이다. 올해가 스마트폰 사업을 버릴 것인지, 계속 이어간다면 어떤 방식을 택할 것인지 결단을 내려야 할 마지막 기로이기 때문이다. 어느 길을 택하든 MC 사업본부의 '몸집 줄이기'는 피할 수 없게 됐다.
현재 LG전자는 스마트폰 사업 축소부터 매각까지 모든 선택지를 고려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LG전자 대표이사 권봉석 사장이 "모바일 사업과 관련해 현재와 미래의 경쟁력을 냉정하게 판단해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으며, 현재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사업 운영 방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LG 스마트폰 사업의 향후 운영 방향의 전면 검토가 공식화됐다.
LG 스마트폰 사업의 미래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서, 매각설과 관련해 여러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지만 LG전자는 쉽사리 결정을 못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 스마트폰 사업 전면 검토 공식화
LG전자 스마트폰 MC사업본부는 지난해 4분기까지 23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까지 누적 영업적자(23분기)는 5조원 규모에 달한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LG전자의 지난해 글로벌 스마트폰 판매량은 2천470만대로 시장 점유율 9위(2%)다.
LG전자는 이러한 스마트폰 사업 부진을 탈피하기 위해 최근 많은 변화를 시도해왔다.
먼저 오래된 적자 구조에서 벗어나고자 제조자개발생산(ODM)을 확대하고, 평택 스마트폰 생산라인을 베트남으로 이전하며 비용 절감에 박차를 가했다. 지난해 LG전자의 ODM 비중은 전체 물량의 70%까지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트폰 사업 전략에도 변화를 줬다. 기존에 이어오던 플래그십 스마트폰 라인업인 V·G 시리즈를 없애고 가격대를 낮춘 '매스 프리미엄' 제품인 'LG 벨벳'을 지난해 상반기 전략 스마트폰으로 출시했다. 또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위해 새로운 폼팩터 혁신 라인인 '익스플로러 프로젝트'를 지난해 새롭게 만들며 디스플레이가 회전하는 'LG 윙'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적자 구조를 개선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기엔 역부족이었으며, 변화를 시도했던 프리미엄 스마트폰 제품들도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 올해 '몸집 줄이기' 집중…단계적 부분 매각 유력
LG전자 MC사업본부는 올해 우선 몸집 줄이기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스마트폰 사업을 통매각하거나 폐지하는 결정을 내리기보다 적자를 줄이는 방안으로 사업을 진행하면서 적절한 인수자를 찾을 가능성이 높다. 5~6년 전이면 모를까 이미 중국 기업들이 선점한 스마트폰 시장에서 지적재산권과 자산양수도를 포함한 전체 사업 매입에 나설 인수자를 찾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MC사업본부 운영 방향을 두고 여러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LG전자 MC사업본부의 통매각보다 부분 매각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몸집을 줄이는 과정에서 일부 생산라인을 매각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생산 라인 인수 기업으로는 베트남 빈그룹이 거론된다. 빈그룹은 베트남 시가총액 1·2위를 다투는 현지 최대 기업이다. LG전자가 2019년 평택 스마트폰 생산라인을 베트남으로 이전했는데, 해당 라인을 빈그룹의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빈스마트가 가져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빈스마트는 이미 LG 스마트폰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협력업체"라며 "협력업체에게 베트남 공장 라인을 넘기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라며 인수 가능성을 제기했다.
폭스바겐도 인수 기업 후보로 거론된다. 그러나 거론되는 배경은 조금 다르다. 폭스바겐이 인수 기업으로 거론된 이유는 LG전자가 전장 사업 부분에서 폭스바겐과 협력해온 바 있기 때문이다. 기술유출 방지 차원에서 폭스바겐이 인수자로 나설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LG전자는 폭스바겐그룹 자율주행 콘셉트카에 부품을 납품하기도 했으며, 폭스바겐과 커넥티드 카 서비스 플랫폼을 공동 연구 개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폭스바겐이 거론된 건 LG와의 이러한 연계 사업이 존재했기 때문이지, 스마트폰 사업을 매각하는 것은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이다.
구글도 인수 후보로 거론되지만 이 또한 구글에게 있어 쉽지 않은 결정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안드로이드 모바일 운영체제(OS)를 갖고 있는 구글은 이미 2012년 모토로라를 인수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당시 구글은 모토로라 인수 이후 미국에 제조공장을 세우는 등 야심차게 스마트폰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2014년 중국업체 레노버에 약 100억 달러의 손해를 보며 다시 매각했다. 모토로라 특허권은 보유한 채 레노버에 팔았지만,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가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긴 어려운 결과였다.
이후 구글은 2017년 HTC 스마트폰 연구개발팀 인력과 지적재산권을 인수해 '픽셀폰'을 OEM 방식으로 출시하며 스마트폰 사업을 이어오고 있지만, 픽셀폰은 현재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존재감이 미미한 상황이다. 구글이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 인수 결정을 내리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 업체도 인수 후보로 얘기가 나온 바 있지만, 중국 업체에 매각하는 건 LG그룹 내부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LG전자가 몸집 줄이기를 하는 과정에서 국내 사업을 먼저 접고, 해외 사업만 진행하면서 올해 상황을 지켜볼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ODM·OEM을 더욱 확대하면서 사업을 유지하되 MC사업본부 연구개발(R&D) 인력을 줄이고, 사업부에서 팀으로 축소돼 홈엔터테인먼트(HE)나 전장(VS) 사업부와 합쳐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폰 사업을 접었지만 사업을 하고 있는 노키아 모델도 있다. 단말 사업을 단계적으로 최소화하면서 최종적으로 분사, 또는 합작하는 모델이다.
■ 현재로선 결정된 바 無…"핵심 모바일 기술은 가져간다"
LG전자는 현재로서는 결정된 바가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그만큼 결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뜻이다.
LG전자는 지난 달 29일 4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을 통해 "현재까지는 단말 사업 방향과 관련해 아직 확정된 안이 없다"며 "현재는 구성원 고용 안정성을 최우선 원칙으로 해서 인력운영, 당시 미래 전략방향과의 시너지 여부, 재무적 측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적안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또 LG전자는 스마트폰 사업을 철수하더라도 핵심 모바일 기술은 내재화시켜 가져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LG전자는 "핵심 모바일 기술은 단말뿐 아니라 스마트 가전, 전장 사업 등에 중요한 자산"이라며 "IoT, V2X 등 글로벌 기술 트렌드에 적기 대응하기 위해 MC사업본부 및 CTO 산하 표준연구소에서 계속 연구를 진행해오고 있으며, 이런 차원에서 당사 미래 사업과 시너지 창출할 수 있도록 다양한 내재화 방향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LG전자 밖에서는 MC사업본부의 향방을 두고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지만, 내부는 비교적 담담한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LG전자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는 "인력 재배치는 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권봉석 사장이 구성원 고용 유지를 약속했고, 또 핵심 기술을 가져간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내부에서는 담담한 분위기"라며 "현재는 MC사업본부와 관련해 내부적으로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 세계 최초 롤러블폰 물 건너가나…"아직은 계획대로 진행 중"
LG전자 스마트폰 사업의 존폐가 불확실해지면서 LG 롤러블의 출시 여부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LG전자는 지난 1월 초 온라인으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1' 디스플레이가 돌돌 말리는 롤러블 스마트폰 'LG 롤러블' 티저 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을 통해 제품 이름을 공식적으로 알리고 구동 모습까지 보여주면서 전 세계 이목을 끌었다.
LG 롤러블은 LG전자가 지난해 새로운 폼팩터 라인으로 내세운 '익스플로러 프로젝트'의 야심찬 두 번째 제품으로, 세계 최초 상용화 롤러블 스마트폰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LG 롤러블은 늦어도 올 상반기 내 출시가 유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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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LG롤러블을 공개한지 열흘 만에 스마트폰 사업 전면 재검토가 공식화되면서 LG 롤러블의 출시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LG 롤러블 프로젝트가 중단되지 않고 진행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통신 업계 관계자는 "LG 롤러블 망연동 테스트는 기존 계획대로 계속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