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미국서 ESS 자발적 리콜...한국에서는 왜 안 되나

가정용 ESS배터리 선제적 리콜 결정…LG "국내 제품과 달라"

디지털경제입력 :2020/12/10 14:34    수정: 2020/12/10 14:35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에서 발생한 가정용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에 대응해 최근 선제적 리콜을 결정하면서, 국내 산업용 ESS 화재 대응과는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번 리콜은 원인 규명 이전에 자발적으로 내린 조치라 더욱 이례적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29건의 ESS 화재 가운데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와 연관된 화재는 15건이다. 그러나 LG는 화재 원인이 명확하지 않단 이유를 들며 업체들의 리콜 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응해왔다.

10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 미국법인은 2017년부터 지난해 3월까지 미국에서 판매된 가정용 ESS 배터리 'RESU'에 대한 무상 교체를 최근 결정했다. 해당 배터리를 탑재한 ESS에서 화재 사고가 5건 보고되면서, 고객 안전을 위해 선제적으로 자발적 리콜을 결정했다는 설명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에 공급하는 가정용 ESS 'RESU3.3' 모델. 사진=LG Energy Solution

LG에너지솔루션, 원인 규명 중이지만 '선제적 리콜'

LG에너지솔루션은 공식 입장을 내고 "이번 교체는 주택용 ESS제품에 탑재되는 일부 배터리에 대해 고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선제적으로 실시하는 자발적인 무상 교체"라며 "현재 관련업체들과 함께 원인 규명 중에 있다"고 말했다.

회사에 따르면 해당 제품은 국내에서 판매되는 제품은 아니다. 또 2017년 9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국내에서 화재가 발생한 ESS은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과 연계한 산업용 제품으로, 역시 이번 리콜 조치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설명대로 국내에서 화재가 일어난 ESS는 전량 산업용 제품이다. 지난 2017년 8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총 23번의 화재가 발생했고, 두 차례의 조사 이후에도 아직 원인은 불분명하다.

당시 LG화학(LG에너지솔루션 전신)은 "화재와 배터리 간의 인과관계를 찾을 수 없다"며 반박했다. 뒤이어 문제로 지목된 2017년 중국 난징공장 생산 배터리 전량을 교체한다는 대책도 세웠지만, 배터리가 화재의 원인이 아니란 입장은 아직 여전하다.

전남 해남군 황산면 소재 태양광 연계 ESS에서 발생한 화재 모습. 사진=해남소방서

ESS 자발적 리콜, 美는 되고 韓은 왜 안 되나

업계는 LG에너지솔루션이 국내 산업용 ESS 화재 당시와 다른 태도를 보인다는 점을 지적했다. 국내와 달리, 미국에선 총 5건의 화재만으로 회사가 자발적인 리콜을 결정했다는 점에서다. 원인도 모르는 화재로 가동중단과 충전율 제한 등으로 피해를 입어온 국내 업체들로선 LG의 이번 조치가 서운할 수 밖에 없다.

ESS를 운영하는 한 사업체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ESS 배터리 셀(Cell) 등을 교체해야한다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이뤄지지 않았다"며 "현재도 언제 또 화재가 발생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임시방편으로 충전율 70% 제한 조치를 지켜가며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화재 사고 이후 두 차례의 원인규명에도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다. 정부의 안전조치 강화대책과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격 하락, 한국전력공사의 전기료 할인제도 약관 개정으로 수주 물량이 대폭 감소했다"며 "내년 계획은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산업용 ESS 배터리는 대용량이어서 셀이 더 많이 투입되고 규격이 다를 뿐, 가정용 ESS 배터리와의 기본 원리는 동일하다"며 "소비자 입장에선 산업용이냐 가정용이냐가 중요하지 않다. 어떠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기업의 대응 자세가 어떻게 다르냐를 먼저 볼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진=LG에너지솔루션

집단소송 가능성 사전에 차단?…'공익성' 의식했나

이번 조치가 미국 현지에서의 집단 소송 가능성을 염두하고 내린 결정이란 시각도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한 미국 법 특성상, 집단 소송이 제기된다면 배상금액이 수 조원 단위로 치솟기도 한다.

또다른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은 국내에 비해 전기요금이 상대적으로 값비싸기 때문에 이에 일반 가정에도 ESS가 많이 보급돼있다"며 "고작 5건의 화재에도 관련 법령이 정비가 된 미국에선 소비자들이 집단으로 리콜을 요구하는 소송을 벌일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입장으로선 이 부분이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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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 최종 판결을 앞두고 위원회의 검토 내역인 '공익성'을 의식해 빠른 리콜 결정을 내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ITC가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만큼,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여부에 대한 판단 외에도 LG에너지솔루션의 미국 내 공익성 평가가 최종결정에 개입할 여지가 있다.

한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북미지역 ESS 시장 규모는 지난해 3.65기가와트시(GWh)로 전세계 시장의 33% 비중을 차지했다. 북미 시장은 오는 2025년까지 36.9GWh로 10배 이상 급성장할 전망이다. 반면, 국내 ESS 시장은 매년 연평균 4% 감소가 예측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