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美 망중립성 공방과 2014년 항소법원 판결

FCC의 인터넷 규제 권한 인정…강력한 정책입법 기틀 역할

데스크 칼럼입력 :2020/11/09 14:30    수정: 2020/11/10 07:14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2014년 1월 미국 연방항소법원에선 흥미로운 소송이 벌어졌다. 미국 통신사 버라이즌과 연방통신위원회(FCC)간의 공방이었다. 오바마 행정부의 FCC가 ‘오픈인터넷규칙’을 통해 인터넷 서비스사업자들에게 망중립성 의무를 부과한 것이 적법하냐는 것이 당시 소송의 핵심 쟁점이었다.

이 소송에서 연방항소법원은 버라이즌의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로 오바마 행정부가 공들여 마련했던 ‘망중립성 원칙’이 무너졌다.

언뜻 보기엔 당시 소송에서 FCC가 패소한 것 같았다. 하지만 당시 FCC는 소중한 판결을 하나 받아냈다. 그리고 그 판결은 이후 FCC의 행보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통신법 706조가 FCC에 인터넷 서비스 규제 권한을 준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다고 판결한 것. 통신법 706조는 FCC가 지역 통신시장의 경쟁을 촉진하는 수단으로 공익, 편의, 가격 규제 등의 수단을 활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 규정이 '인터넷 서비스에 대한 관할권'을 부여해준 것으로 볼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버라이즌은 당시 소송에서 "FCC는 인터넷 서비스에 대한 규제 권한이 없다”는 판결을 받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오히려 FCC의 인터넷 서비스 규제 관할권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로 화답했다. 

미국 FCC 위원들. 가운데가 아짓 파이 위원장이다. (사진=FCC)

이 판결은 이후 FCC가 2015년 통신법 706조 타이틀1(정보서비스)에 속해 있던 유무선 인터넷 서비스사업자(ISP)를 타이틀2(유선서비스)로 재분류하는 방식을 통해 망중립성 원칙을 도입하는 데 큰 힘이 됐다.

물론 FCC의 이 조치는 2년 뒤 부메랑을 맞았다. FCC가 똑 같은 규제 권한을 이용해 유무선 ISP를 다시 정보 서비스 사업자로 재분류해버린 것이다. 

이 간단한 조치 덕분에 유무선 ISP는 ‘차별금지, 차단금지’라는 망중립성 의무를 면제받게 됐다. 정부가 바뀌면서 인터넷 서비스 규제 관할권이 오히려 규제를 푸는 데 사용됐다. 

유무선 ISP 규제권한 인정받은 FCC, 이번엔 어떤 선택?

조 바이든이 도널드 트럼프와의 대통령 선거전에서 승리하면서 ‘망중립성 문제’에 또 다시 관심이 쏠리게 됐다.

현지 전문가들은 바이든 시대 FCC가 또 다시 망중립성 원칙을 도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통신법 706조가 보장한 관할권을 충분히 활용할 것이란 전망이다.

잘 아는대로 FCC는 5인 위원회다. 민주, 공화 양당이 2명씩의 위원을 추천한다. 위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따라서 큰 무리가 없는 한 집권당이 추진하는 정책을 통과시킬 수 있다.

아짓 파이 현 FCC 위원장의 임기는 2023년 1월 마감된다. 하지만 FCC 위원장은 통상 새 정부가 출범할 경우 물러나는 것이 관행이다. 오바마가 임명했던 톰 휠러 역시 트럼프 취임에 맞춰 FCC 위원장직을 사임했다.

후임 FCC 위원장으로는 11년 동안 FCC 위원으로 재직했던 미뇽 클리번이 유력 후보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클리번은 소비자와 공공 이익 등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망중립성에 대해서도 강력한 지지 의사를 밝히고 있다.

바이든 시대 FCC 위원장 유력 후보로 꼽히는 미뇽 클리번 전 FCC 위원.

제시카 로젠워슬 현 FCC 위원도 손색 없는 차기 FCC 위원장 후보다. 로젠워슬 역시 광대역 인터넷 보급 확대와 함께 강력한 망중립성 원칙을 지지하고 있다.

예상대로 흘러갈 경우 ‘망중립성 원칙’은 5년 사이에 두 차례나 오락가락 행보를 하게 된다.

망중립성을 둘러싼 이런 공방을 보면 2014년 미국 연방항소법원의 판결이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판결 덕분에 통신법 706조가 FCC에 인터넷 서비스에 대한 규제 권한을 부여했다는 것을 명확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픈 인터넷 규칙’을 둘러싼 당시 소송은 오바마 시대 FCC의 패배한 재판이었다. 하지만 쟁점에서 살짝 비켜 있었던 또 다른 판결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는 바이든 행정부엔 큰 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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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망중립성 원칙 확립을 위해선 의회 차원의 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배경엔 행정부가 바뀌면 규정에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