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미국 연방항소법원에선 흥미로운 소송이 벌어졌다. 미국 통신사 버라이즌과 연방통신위원회(FCC)간의 공방이었다. 오바마 행정부의 FCC가 ‘오픈인터넷규칙’을 통해 인터넷 서비스사업자들에게 망중립성 의무를 부과한 것이 적법하냐는 것이 당시 소송의 핵심 쟁점이었다.
이 소송에서 연방항소법원은 버라이즌의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로 오바마 행정부가 공들여 마련했던 ‘망중립성 원칙’이 무너졌다.
언뜻 보기엔 당시 소송에서 FCC가 패소한 것 같았다. 하지만 당시 FCC는 소중한 판결을 하나 받아냈다. 그리고 그 판결은 이후 FCC의 행보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통신법 706조가 FCC에 인터넷 서비스 규제 권한을 준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다고 판결한 것. 통신법 706조는 FCC가 지역 통신시장의 경쟁을 촉진하는 수단으로 공익, 편의, 가격 규제 등의 수단을 활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 규정이 '인터넷 서비스에 대한 관할권'을 부여해준 것으로 볼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버라이즌은 당시 소송에서 "FCC는 인터넷 서비스에 대한 규제 권한이 없다”는 판결을 받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오히려 FCC의 인터넷 서비스 규제 관할권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로 화답했다.
이 판결은 이후 FCC가 2015년 통신법 706조 타이틀1(정보서비스)에 속해 있던 유무선 인터넷 서비스사업자(ISP)를 타이틀2(유선서비스)로 재분류하는 방식을 통해 망중립성 원칙을 도입하는 데 큰 힘이 됐다.
물론 FCC의 이 조치는 2년 뒤 부메랑을 맞았다. FCC가 똑 같은 규제 권한을 이용해 유무선 ISP를 다시 정보 서비스 사업자로 재분류해버린 것이다.
이 간단한 조치 덕분에 유무선 ISP는 ‘차별금지, 차단금지’라는 망중립성 의무를 면제받게 됐다. 정부가 바뀌면서 인터넷 서비스 규제 관할권이 오히려 규제를 푸는 데 사용됐다.
유무선 ISP 규제권한 인정받은 FCC, 이번엔 어떤 선택?
조 바이든이 도널드 트럼프와의 대통령 선거전에서 승리하면서 ‘망중립성 문제’에 또 다시 관심이 쏠리게 됐다.
현지 전문가들은 바이든 시대 FCC가 또 다시 망중립성 원칙을 도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통신법 706조가 보장한 관할권을 충분히 활용할 것이란 전망이다.
잘 아는대로 FCC는 5인 위원회다. 민주, 공화 양당이 2명씩의 위원을 추천한다. 위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따라서 큰 무리가 없는 한 집권당이 추진하는 정책을 통과시킬 수 있다.
아짓 파이 현 FCC 위원장의 임기는 2023년 1월 마감된다. 하지만 FCC 위원장은 통상 새 정부가 출범할 경우 물러나는 것이 관행이다. 오바마가 임명했던 톰 휠러 역시 트럼프 취임에 맞춰 FCC 위원장직을 사임했다.
후임 FCC 위원장으로는 11년 동안 FCC 위원으로 재직했던 미뇽 클리번이 유력 후보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클리번은 소비자와 공공 이익 등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망중립성에 대해서도 강력한 지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제시카 로젠워슬 현 FCC 위원도 손색 없는 차기 FCC 위원장 후보다. 로젠워슬 역시 광대역 인터넷 보급 확대와 함께 강력한 망중립성 원칙을 지지하고 있다.
예상대로 흘러갈 경우 ‘망중립성 원칙’은 5년 사이에 두 차례나 오락가락 행보를 하게 된다.
망중립성을 둘러싼 이런 공방을 보면 2014년 미국 연방항소법원의 판결이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판결 덕분에 통신법 706조가 FCC에 인터넷 서비스에 대한 규제 권한을 부여했다는 것을 명확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픈 인터넷 규칙’을 둘러싼 당시 소송은 오바마 시대 FCC의 패배한 재판이었다. 하지만 쟁점에서 살짝 비켜 있었던 또 다른 판결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는 바이든 행정부엔 큰 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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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망중립성 원칙 확립을 위해선 의회 차원의 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배경엔 행정부가 바뀌면 규정에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