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탄소중립 선언에 업계 '화들짝'…상생 방안은?

[이슈진단+] 정부, 2050년 '넷제로(Net Zero)' 추진

디지털경제입력 :2020/11/04 16:11    수정: 2020/11/05 08:22

정부가 오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Net Zero·넷제로) 목표를 공식화함에 따라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재생에너지 발전으로의 에너지전환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산업계의 시선은 연말까지 국제연합(UN)에 제출할 '2050년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에 집중됐다.

정부는 저탄소 발전전략 수립 과정에서 업계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산업계는 갑작스러운 탄소중립 선언에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다.

정책의 취지와 당위성엔 공감하면서도, 배출 감축의 의무에 급진적이고 과도한 목표가 설정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기저전원을 석탄발전·원전에서 재생에너지로 빠르게 전환해야하는 발전업계의 속내도 마찬가지다.

사진=Pixabay

'2050 탄소중립' 위해 석탄감축 가속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달 28일 국회에서 진행한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국제 사회와 함께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해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를 목표로 내년부터 친환경 일자리 정책인 그린뉴딜에 8조원을 순차적으로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탄소중립, 즉 '넷제로'는 온실가스 배출량(+)과 제거량(-)을 더했을 때 순배출량이 '0'인 상태를 말한다. 지금까지 70여개 국가가 이를 선언했지만, 우리나라가 탄소중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파리협정 당사국들은 연내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을 확립해 국제연합(UN)에 제출해야한다. 각국은 2050년까지 넷제로 달성을 위해 목표를 조절하고 있다. 앞서 중국도 오는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국판 뉴딜 계획을 발표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탄소중립을 향한 정부의 의지는 3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더욱 구체화됐다. 이날 문 대통령은 "기후위기 대응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규제에 이끌려 가기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과감히 도전에 나설 필요가 있다"며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를 친환경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에너지 전환 로드맵을 정교하게 가다듬어 온실가스 감축 계획도 재점검해달라"고 주문했다.

정부가 탄소중립을 위해 집중하는 에너지 전환 정책은 ▲석탄 감축 ▲수소경제 활성화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등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여기에 더해, 탄소를 배출하진 않지만 '안전한 에너지'를 위해 추진하는 탈원전 정책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 중이다.

세 가지 방안 가운데 업계의 부담이 제일 많이 가중되는 건 석탄 감축이다.

석탄 감축을 위해 정부는 오는 2034년까지 현재 운영 중인 석탄화력발전소 절반을 폐지키로 했다. 구체적으로 총 60기 중 30기(15.3기가와트·GW)의 운영을 중단하겠다는 것. 이 내용은 곧 윤곽을 드러낼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도 포함될 전망이다. 미세먼지 계절관리제의 일환으로 봄·겨울철 발전소의 운영에 제약을 걸거나 중단하는 방안도 같은 취지다.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 산업계 토론회' 현장. 사진=KDIA

탄소중립 구체 계획 연말 '윤곽'…긴장하는 산업계

문제는 정부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현재보다 더욱 급진적인 석탄 감축 목표를 업계에 제시할 것이란 점이다.

정부는 우선 국제 사회에 탄소중립 계획을 먼저 공표하고, 후속 조치는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발표할 방침이다. 아직 구체적인 목표 수치 등은 나오지 않았지만, 업계는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온 에너지전환 정책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산업계의 우려는 저탄소 발전전략 수립과 관련한 공론화의 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특히, 지난 7월 열린 업계 토론회에선 민간포럼이 제시한 권고안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오는 205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40%에서 75% 감축하는 5개 시나리오를 제안한 권고안에 목표만 있을 뿐 정작 중요한 '대안'이 빠졌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2050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목표 권고안. 자료=환경부

산업연구원 측은 "감축 수단에 대한 대안없이 권고안대로 시행되면 2050년 제조업 생산의 최대 44%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며 "권고안에 따른 국내 제조업의 전후방 산업까지 고려한 고용감소유발효과는 최소 86만명에서 최대 130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도 아래에서 기업의 환경 비용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환경부가 지난 9월 발표한 '제3차 계획기간(내년~2025년) 국가 배출권 할당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석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는 기업에 배출권 할당량을 더 많이 주기로 했다. 그동안 발전비중이 크다는 이유로 무상 할당량을 더 많이 받은 석탄발전에 혜택이 줄어들면서 앞으로 업계가 배출권 구입에 큰 돈을 들이게 됐다.

자료=경총

"채찍만 휘두르지 말고 당근도 쥐여줘야"

산업계는 정부의 이번 2050 탄소중립 선언에 대해선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최근 국내 119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우려를 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추진할 경우 가장 큰 부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응답 기업의 72.9%는 '환경규제 강화에 따른 기업 부담 증가'라고 답했다. 응답 기업의 53.8%는 205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할 때 '현재 우리나라 기업의 경제·사회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정부가 설정한 205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고려사항으로는 '산업계 의견을 적극 수렴해 현실성 있는 정책 마련(44.1%)', '기업이 원활하게 참여할 수 있는 제반여건 조성(39.8%)' 등을 꼽았다.

사진=RE100

산업계 한 관계자는 "저탄소 사회로 나아가는 게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정부의 의견엔 공감한다"면서도 "감축 의무가 있는 산업 현장의 의견이 저탄소 발전전략에 적극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채찍만 휘두를 것이 아니라, 당근을 쥐여주며 업계를 설득하고 과정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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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바람대로 산업계는 온실가스 저감과 에너지전환 등 그린뉴딜 정책에 점차 발맞추고 있다. 특히, 2050년까지 사용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RE100' 캠페인에 참여 의사를 밝히는 기업도 늘고 있다. 내년 1월부터 한전을 중개로 발전사업자-전기소비자 간 전력거래가 가능해지면, 참여 기업은 더 증가할 전망이다.

발전업계도 태양광·풍력·수소 등 그린에너지 생태계 확장에 힘을 싣고 있다. 발전공기업 5개사(동서·중부·남부·서부·남동발전)가 오는 2024년~2025년을 기한으로 '뉴딜 사업'에 새롭게 배정한 투자금은 약 15조원에 이른다. 한국전력공사도 정부 기조에 따라 그동안 큰 수입원으로 작용한 해외 석탄발전 사업을 친환경 에너지 사업으로 전환하겠다고 최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