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 내세웠던 정부, 脫원전 어떻게 추진할까

감사원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 부적절"…정책 당위성 논란 지속

디지털경제입력 :2020/10/20 17:04    수정: 2020/10/20 17:24

월성1호기 조기폐쇄 결정 당시 원전의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저평가됐다는 감사 결과가 나오면서, 그동안 조기폐쇄의 주요 근거로 '경제성 악화'를 이야기해 온 정부가 난처하게 됐다. 전체 원전의 절반 가량이 수년 내 수명을 다할 예정인 만큼, 탈원전 정책을 경제성 평가에 기대지 않고 어떻게 추진할 지가 숙제로 남았다.

특히 감사원이 원전 조기폐쇄 결정에 대한 타당성 여부를 이번 감사를 통해선 판단할 수 없었다고 밝혀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을 둘러싼 당위성 논란도 지속할 전망이다.

감사원은 20일 오후 공개한 '월성1호기 조기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 감사보고서를 통해 경북 경주 월성원자력발전소 1호기 조기폐쇄 결정 당시 한국수력원자력의 경제성 평가가 부적절했다는 결론을 냈다. 그러나, 조기폐쇄 결정 자체에 대한 타당성 여부 판단은 감사 범위를 벗어남에 따라 유보했다.

울산 울주군 신고리3·4호기 전경. 사진 오른쪽이 신고리3호기. 사진=한국수력원자력

10년 안에 10기 '수명 만료'…제2의 월성1호기 나온다

감사 결과에 따라 이미 영구정지가 확정된 월성1호기의 재가동 가능성은 요원하게 됐다. 문제는 곧 수명을 다해 줄줄이 폐쇄가 예정된 원전들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동 중인 원전 24기 중 10기가 향후 10년 내 설계수명 만료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아직 국내 원전 가운데 수명 연장을 신청한 시설은 단 한 곳도 없다. 야권에선 당장 2023년 수명이 만료되는 고리2호기를 비롯해, 고리3호기, 고리4호기 등의 수명 연장을 촉구할 계획이다.

정부가 향후 원전 조기폐쇄의 근거로 경제성 평가와 별도로 안전성·주민(지역)수용성 등을 주요 근거로 내세울 가능성이 높아졌다.

환경운동연합, 에너지 정의행동 등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탈핵시민행동원들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폐쇄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스1

탈원전에 찬성하는 시민사회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환경단체 탈핵시민행동은 이날 감사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성 평가를 고려했다면 (월성1호기)의 수명 연장이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경제성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탈원전이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감사 결과로 원전 경제성 평가 제도의 허점 또한 드러났다. 원전의 계속가동에 대한 경제성 평가 시 판매단가·이용률·인건비·수선비 등 입력변수를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경제성 평가결과에 많은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데, 한수원의 지침에 경제성 평가에선 적용 가능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는 게 감사원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한수원은 이날 입장자료를 내고 "월성1호기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원칙적으로 수용한다"며 "감사원에서 지적한 '원전 계속운전 등과 관련한 경제성 평가 관련 지침 마련'에 대해선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 부처와의 협의 및 검토를 통해 성실히 후속조치를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탈원전' vs '친원전' 공방 더 거세질 듯

정재훈 한수원 사장. (사진=지디넷코리아)

원전 찬반론을 두고 시민단체와 정치권의 공방도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환경단체 탈핵시민행동은 감사원의 이날 오후 감사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월성1호기가 제대로 안전성 평가와 심사를 거쳤다면 애초에 수명 연장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지난 1982년 상업 운영을 시작해 2012년 설계수명을 다한 월성1호기의 폐쇄는 '조기폐쇄' 조치가 아닌 당연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아직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당 소속 한 관계자는 "이번 감사 결과는 탈원전 정책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라 절차적인 실수가 있었다는 것"이라며 "감사 결과와 관계 없이 정부는 에너지전환 정책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 18일 이채익, 김석기 미래통합당,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한수원이사 및 원자력정책연대 등 에너지시민단체 회원들과 월성1호기 조기폐쇄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반면, 원전 확대 혹은 유지에 찬성하는 원자력시민연대는 이날 성명서에서 "산업부와 한수원의 월성1호기 조기폐쇄 조치가 부당했음이 드러났다"며 "국가적인 손실에 대한 배상과 관련자 처벌, 한수원 이사회의 의결사항을 회복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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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인 국민의힘은 구두 논평을 통해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이 낮게 평가됐다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그동안 원칙을 무시하고 근거 없이 추진됐던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실질적인 사망선고"라며 "탈원전은 무리한 꿈이었음이 증명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말을 아끼고 있다. 이날 감사원의 발표 직후 출입기자단과 만난 청와대 관계자는 "특별히 입장을 낼 것이 없고, 에너지 정책과 관련한 사항은 부처에서 설명할 일이 있으면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