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와 페이스북의 행정소송 2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국내 이용자를 볼모로 삼은 망 이용료 협상 과정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행정처분의 유효성 문제가 핵심이다. 1심에서 이용자 피해는 발생했으나 현저한 이용제한이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용자 불편에 해당할 뿐 이용제한은 아니고, 현저한 이용자 이익 저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내 이용자 불편이 발생해도 이용자보호 관련법으로 제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국회와 정부는 이용자 피해가 명백히 예상되는 상황을 고려한 취지를 담은 법안을 만들고 있다. 행정부와 입법부와 다시 다른 취지의 판결을 내놓을지 사법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편집자주]
피해자는 남아있지만, 가해자는 누군지 알면서도 지목하지 않는다. 페이스북아일랜드리미티드가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 1심 판결 내용이다.
지난해 서울행정법원은 페이스북의 우회접속 행위가 전기통신서비스 이용을 지연시켜 이용자 불편을 초래했지만, 페이스북이 일으킨 이용자 피해가 전기통신사업법이 금지하고 있는 이용제한으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1년여 동안 여섯 차례의 심리 공판 이후 법원이 내놓은 판결은 상당한 논란이 됐다.
학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법원이 전기통신사업법과 행정처의 역량을 두고 페이스북을 변호하는 로펌의 논리에 따라 협소하게 해석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반대로 국회에서는 공정한 사업환경과 함께 이용자를 보호를 강화할 수 있는 입법활동이 지속됐다.
최근에는 비대면 문화의 확산으로 디지털 중심의 상품과 서비스 이용이 급증했고 이에 대응해 한국판 뉴딜과 같은 디지털 경제 토대를 마련하는 대규모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이 가운데 빠지지 않은 것이 디지털 포용이다. 산업 구조가 바뀌고 문화가 달라진다고 하더라도 이용자보호 정책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이 일으킨 이용 장애 사례를 사회 전반에 확산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사건의 2심에서도 쟁점은 이용제한 여부, 현저성 여부 등에 머무르고 있다. 단순하게 이용자 피해를 일으킨 점에 대해 국내 이용자보호 정책이 눈을 감고 있으라는 논란의 1심 판결 쟁점이 2심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 페이스북, 미국 접속으로 돌아가라
이 사건의 시작은 2016년 말부터다. 페이스북은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의 SNS 이용자가 접속해 데이터를 주고받는 경로를 고의로 변경했다. 당시 두 회사와 망 이용료 협상 과정에서 이용자를 볼모로 세워 민원을 일으키는 방식의 압박이라는게 업계의 정설이다.
SK브로드밴드 가입자들은 이전까지 홍콩에 위치한 페이스북 서버에 집적 접속했다. LG유플러스 가입자는 KT IDC를 통해 페이스북 서비스를 쓸 수 있게 했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두 회사와 협상 과정에서 대역폭이 좁은 해외 접속경로로 변경하게 된다.
예컨대 SK브로드밴드 가입자들은 페이스북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이전까지 홍콩서버에 직접 접속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국 등 해외의 통신사를 거치는 방식의 중계접속을 통해야 했다. LG유플러스 가입자 마찬가지였다.
변경된 경로는 대역폭이 좁다. 페이스북이 어느 정도의 트래픽을 수용할 수 있는지 모를 수 없다. 페이스북과 같은 대형 사업자는 서비스에 가장 원활한 접속이 이뤄질 수 있도록 세계 각국의 통신사와 협의를 거치고 있다.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역시 관련 협의과정에서 이같은 일이 벌어졌다.
페이스북은 이 문제가 불거지자 KT의 탓으로 돌리며 국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나서 국회의원들과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국정감사 당일에도 접속경로 변경은 이뤄졌다.
이같은 접속경로 변경은 당연히 서비스 장애 발생을 일으켰다. 이전과 달리 대역폭이 좁은 국제구간으로 변경하면서 서비스 접속지연과 이용불가능한 상황이 연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서울에서 제주로 갈 때 누구나 김포공항을 경로로 택하는 점을 고려할 수 있다.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하는 국내선 비행기라 곧바로 타면 된다.
하지만 갑자기 페이스북이 그랬던 것처럼 서울서 국제선을 통해 미국영토인 하와이나 괌을 들렀다가 미국 현지에서 제주국제공항으로 다시 비행기를 환승하는 경우만 허용하면 단순 이용자 불편에 그칠까?
■ 법원, 상황은 다 알고 있다
1심 판결 이후 서울고등법원의 2심에서도 페이스북(법무대리인 김앤장)과 방통위(법무대리인 광장)의 재판 과정을 살펴보면 이용제한과 현저성이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있다.
김앤장 측은 페이스북이 접속경로를 우회 변경해서 접속지연이 일어났지만 ‘이용 불편’에 해당하고 ‘이용 제한’ 행위는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1심에서 페이스북이 승소하게 된 핵심 대목이다.
이용제한이라는 용어를 매우 협소한 의미로 재해석 했다는 것이 주된 반론이다. 입법취지에서도 실질적으로 서비스 이용을 어렵게 한 행위는 이용제한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실제 전기통신사업법에서 이용제한의 경우를 다른 사례에 적용하면 법 체계가 무너진다.
예컨대 전기통신서비스 유료 가입자가 해지하려고 할 때 거부, 지연, 제한하는 행위를 금지행위로 삼고 있는데 거부와 지연을 제한과 다른 의미로 두지는 않는다. 즉, ‘제한’이라는 용어를 다른 이용자 불편 행위와 별도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울러 이용제한에 대한 이같은 해석은 다른 이용자 불편이 발생하더라도 법이 눈을 감아야 한다는 맹점도 발생한다. 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다면 이용제한이 발생했다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는 설명이다.
법원은 이에 대해 이용제한에 대한 정의에 대한 판단을 내리겠다는 입장이다.
행정소송의 시작이 된 방통위의 행정처분이 근거로 삼고 있는 지난 2018년 사실조사 결과에 따르면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 결정 이후 서비스 장애가 발생했고, 네트워크 품질지표인 응답속도는 2.4~4.5배 지연됐다. 또 이용자 불만은 단순 민원 건수로만 170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 같은 네트워크 병목 발생, 응답속도 지연에 따른 접속품질 저하, 이용자 민원 급증 등을 두고 현저한 이용자 이익 저해가 아니라는 점도 논란 가운데 하나다.
페이스북 측은 방통위의 사실조사 증거가 상대적, 주관적이라며 판단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법조계에서는 전기통신사업법의 이용자정책은 입법취지와 페이스북이 약관에 명시한 품질 인식을 볼 때 행정처분의 정당 근거가 된다고 보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아울러 2016년 12월부터 약 반년 간 이어진 이용자 불만과 서비스 장애 상황을 볼 때 현저성을 따지는 것이 오히려 재판이 다른 맹점을 가리는 것이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있다.
현저성을 두고 응답속도를 해외의 과거 기준을 판결 잣대로 삼은 것이 1심 판결이 전문가 사이에서 논란을 빚었지만, 특정 인터넷 서비스가 2016년 12월부터 2017년 6월까지 반년 이상 소비자 민원이 발생하는 경우는 없다는 설명이다.
■ 방통위, 고의적 이용자 피해 살펴야
콘텐츠제공사업자(CP)와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 간의 분쟁에서는 과거와 달리 급증하는 트래픽에 따라 네트워크 품질 조건과 이용료를 두고 따지기 마련이다. 이처럼 사업자 간 관계에서는 공정 계약 환경이 갖춰지면 현재 법제도에 맞게 따지면 된다.
이와 달리 페이스북의 행정처분 이유는 사업자 간 관계가 아니라 이용자 불편 발생으로 살펴야하는 문제다. 이용자에 피해를 발생시킨 사업자에 대해 법에 따른 시정조치라는 것이 방통위가 강조하는 부분이다.
페이스북 측은 2심 과정에서도 접속경로 변경으로 빚어진 품질 저하는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이번 사례뿐만 아니라 또 다시 고의적으로 똑같은 상황을 일으켜도 페이스북은 국내서 법적 책임이 없다는 주장이 된다.
해외 사업자가 자신에 유리한 입장을 내놓는 것과 달리 법원도 이같은 주장에 손을 들어주게 될 수 있다는 점은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법원이 스스로 국내 이용자 보호 정책에 대한 법제도를 망쳐놓는 셈이기 때문이다.
한편, 페이스북이 행정소송에서 내놓고 있는 주장은 페이스북 서비스의 이용약관과 상당히 다른 입장이 엿보인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페이스북 이용자 약관을 살펴보면 “모든 사람들에게 안전하고 실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첨단 기술을 사용하고 개발한다”며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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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세부 조항을 살펴보면 “인터넷 접속이 원활하지 않은 지역에서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도록 첨단 네트워크 및 통신기술을 구축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실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자사 SNS 이용자에는 원활한 인터넷 접속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알리고 있다. 법적 공방에서 이용자 불편이 무관하고 책임이 없단 입장을 거듭 내놓고 있는 것과 사뭇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