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국내 1위 폐기물처리 업체인 EMC홀딩스를 인수하며 환경 사업에 뛰어든다.
경기변동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폐기물처리 사업을 통해 안정적으로 수익을 확보하고, 동시에 사회적 가치(SV) 창출에 나서기 위한 베팅으로 풀이된다. 사업구조를 근본적으로 혁신해 지속 성장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딥체인지' 경영이 구체화되는 모습이다.
20일 SK와 업계에 따르면, EMC홀딩스 매각 주체인 어펄마캐피탈은 SK건설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매각 대상은 어펄마캐피탈이 보유한 EMC 홀딩스 지분 100%며, 거래 가격은 1조원 초반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본입찰에는 SK와 더불어 골드만삭스PIA, 싱가포르 케펠인프라펀드 등 5곳이 참여했지만, 이 중에서도 SK가 경쟁사 이상의 거래 가격과 비전을 제시하며 우위에 선 것으로 전해졌다.
SK건설과 어펄마캐피탈은 배타적 협상을 거쳐 이르면 다음 주 초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할 전망이다.
■ EMC 1兆에 인수해 친환경 사업…"경제적·사회적 가치 동시 창출"
폐기물 처리 산업은 경기 변동의 영향을 적게 받고 진입 장벽이 높아 안정성이 크다는 게 경쟁력으로 꼽힌다. 폐기물 규모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데 비해 관련 처리 시설도 적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아 안정적인 현금흐름으로 시장의 관심을 받아왔다.
EMC홀딩스는 올해 매물로 나온 폐기물 업체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1997년 설립돼 전국에 2천여 개 하수·폐수 처리 시설과 폐기물 소각장 4곳을 운영 중이다. 환경관리공단 자회사였지만 2007년 코오롱그룹에 인수됐으며, 어펄마캐피탈은 2016년 코오롱그룹으로부터 회사 전신인 코오롱워터에너지를 매입해 폐기물 업체 6개를 추가 인수했다. 환경시설관리 등 종속회사 17곳을 두며 국내 최대 종합환경플랫폼으로 발돋움했다.
SK그룹의 이번 인수로 건설폐기물 처리 등 SK건설과 EMC홀딩스의 시너지도 예상된다. 친환경 사업은 최근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더욱 부각되고 있다. SK 계열사들도 친환경 비전을 속속 내세우는 모습이다. SK이노베이션은 2030년까지 환경과 안전에 미치는 부정적 사업의 영향을 0으로 만들겠다는 사업 전략인 '그린밸런스2030' 실천에 나서고 있다. 지난 12일에는 석유화학 기업의 한계인 환경 문제 관련 체질 자체를 바꾸겠다는 강조했다.
EMC홀딩스 인수는 SK건설이 본격 추진하는 친환경 사업의 일환이다. SK건설은 지난달 조직개편을 통해 친환경사업부문을 신설하고, 에너지기술부문을 신에너지사업부문으로 개편했다.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경제적 가치(EV)와 사회적 가치(SV)를 동시에 창출한다는 방침이다.
친환경사업부문의 리사이클링사업그룹은 일생생활, 산업현장 폐기물을 친환경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전환하는 사업을 추진한다. SK건설 관계자는 "EMC홀딩스 인수는 새롭게 추진하는 친환경 사업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 최태원式 '선택과 집중'…'재원 확보→투자' 선순환
최태원 회장은 불필요한 사업을 정리해 재원을 확보하고, 주력 사업에 투입하는 투자 선순환을 이어가고 있다.
일명 '선택과 집중' 방식의 사업 재편으로 불확실한 경영 환경을 돌파, 지속 성장 가능성을 키우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최 회장은 2018년 ▲반도체·소재 ▲에너지 신산업 ▲차세대 정보통신기술(ICT) ▲미래 모빌리티 ▲헬스케어를 5대 신산업 분야로 정하고 3년간 80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SKC는 최근 화장품·건강식품 원료 제조 자회사 SK바이오랜드의 보유지분 전량을 현대HCN에 매각했다. 모빌리티·반도체 등 미래 성장동력을 위한 재원 확보 차원이다. 지난 12일에는 SK솔믹스 지분을 100% 확보했다. 반도체 소재·부품 사업을 본격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SKC는 또 전기자동차 배터리용 핵심소재인 동박 제조기술력 1위 기업 SK넥실리스(구 KCFT)를 출범, 반도체·친환경 소재 사업을 중심으로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이어가고 있다. 상반기엔 쿠웨이트 국영화학기업 PIC와의 합작사인 SK피아이씨글로벌을 설립, PI필름 제조사 SKC코오롱PI를 지분을 매각해 1조원이 넘는 재원을 확보했다.
SK이노베이션은 윤활유 제조 자회사 SK루브리컨츠 지분 매각을 타진하고 있다. 회사는 매각설 관련 "신규사업 투자재원 마련을 위해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업계 후발주자로 전기차용 배터리 투자에 공격적으로 나서면서 재무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재원을 확보해 재무 안정성을 강화하고 친환경 분야 신사업 추진에도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SK의 바이오 사업도 결실을 맺고 있다. 지난 7월 성공적으로 상장한 SK바이오팜에 이어 SK바이오사이언스와 SK팜테코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SK는 2003년 바이오·제약 사업을 2030년까지 그룹의 차세대 먹거리로 성장시키겠다고 선언했다. SK바이오팜 출범 이후엔 8년간 연구개발비만 4천800억원을 투입했다. SK가의 뚝심 경영 끝에 관련 사업이 본 궤도에 올랐다는 평이다.
NH투자증권 김동양 연구원은 "SK의 자회사 SK바이오팜의 성공적 상장으로 투자형 지주회사 선순환도 본궤도에 진입했다"며 "보호예수기간 이후 보유지분(75%) 일부 처분을 통해 투자 재원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SK 사업구조 혁신 가속화…'딥체인지' 경영 구체화
SK그룹의 비즈니스 모델 혁신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회장은 2016년 사업구조의 근본적 혁신을 뜻하는 딥체인지를 경영화두로 내세운 이후 2017년부터 이천포럼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윤곽을 잡아가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그룹 구성원에 딥체인지의 필요성을 전하고, 올해 이천포럼에서는 실질적 방법론을 다뤘다. SK는 매년 이천포럼에서 논의한 사항을 연말 CEO 세미나를 거쳐 차기 연년도 사업 계획에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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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회장이 강조하는 사회적 가치 역시 딥체인지를 위한 발판이다. 지난 18일부터 개막한 올해 이천포럼은 환경, 일하는 방식의 혁신,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 등을 주제로 진행됐다. SK는 이를 사회적 가치 창출에 필요한 요소들로 꼽고 있다.
앞서 최 회장은 "변화 자체가 일상인 시간에 우리는 이천포럼을 우리의 미래를 맛보는 참고서로 삼아 성장해 나가야 한다"며 "우리는 그동안 이해관계자의 개념을 확대하고 구성원, 주주, 고객이 함께 도약하고 성장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왔다. 각자의 전문성과 스스로의 시각으로 탐색하고 연구해 앞으로 나아가자"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