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C에 이긴 퀄컴, '특허소진' 부담도 벗었다

美 항소법원, '칩 업체에 라이선스 거부' 정책에 면죄부

방송/통신입력 :2020/08/13 16:51    수정: 2020/08/13 21:04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퀄컴이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와의 반독점 소송 항소심에서 완승하면서 ‘특허소진론’의 부담도 덜 수 있게 됐다. 라이벌 칩셋 업체들에게 특허 소진이론이 적용되는 라이선스를 거부했던 관행이 ‘반경쟁적 행위’가 아니라는 판결을 받아냈기 때문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제9순회항소법원은 11일(현지시간) 퀄컴의 라이선스 관행은 경쟁 위배 행위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라이선스를 하지 않을 경우 칩을 공급하지 않는’(no license-no chips) 정책을 비롯한 퀄컴의 4개 비즈니스 관행을 반독점 행위로 간주했던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사진=씨넷)

1심 판결 유지 땐 특허소진론 적용 받았어야 

이번 소송은 여러 측면에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엔 퀄컴 뿐 아니라 반도체 전체 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크게 네 가지였다.

첫째. ‘라이선스를 하지 않을 경우 칩을 공급하지 않는’(no license-no chips) 정책

둘째. 인센티브 프로그램 (퀄컴 칩 사용할 경우 라이선스 비용 인하)

셋째. 라이벌 칩셋 업체엔 특허 기술 공여 거부

넷째. 애플과의 배타적 거래

이 중 특히 시장 전체와 관련해 중요한 관심을 모은 것은 세번째 쟁점이었다. 이 쟁점은 최근 미국 특허법에서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특허소진론'과 직접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씨넷)

항소법원 판결문이 지적했듯이 퀄컴은 반도체 시장에서 독특한 지위를 갖고 있다. 퀄컴은 CDMA와 LTE 분야 필수표준특허를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모뎀 칩도 함께 만들고 있다. 모뎀 칩 시장의 양쪽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실상 유일한 기업이다.

그런데 퀄컴의 특허 라이선스 정책은 상당히 독특했다. OEM 업체들에게만 특허 소진론이 적용되는 라이선스를 제공해 왔다. 라이벌 칩 업체들에겐 이런 방식의 라이선스를 거부했다.

2018년 열린 1심 재판 당시 연방법원이 퀄컴의 이런 라이선스 정책이 경쟁 침해 행위라고 판결한 중요한 근거 중 하나는 1985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아스펜 스키 대 아스펜 하이랜드 스키’ 사건 판례였다.

이 사건 당시 연방대법원은 아스펜 스키가 경쟁사의 티켓 판매를 중단한 행위는 셔면법 2조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셔먼법 2조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경쟁배제 행위를 금지하는 대표적인 반독점 조항이다.

이 판례를 적용할 경우 퀄컴은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된다. 라이벌 칩 제조업체에 라이선스를 제공할 경우 ‘특허 소진론’이 적용돼 사업의 경쟁력 자체가 약화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특허소진이론이란 특허제품이 정당하게 판매된 이후에는 사용이나 재판매에 대해선 특허 침해 주장을 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그 이론에 따르면 경쟁사가 퀄컴 기술을 라이선스해서 칩을 만들 경우 이후엔 퀄컴의 특허권이 소멸된다.

1심 재판부는 ‘특허 소진’을 피하기 위한 퀄컴의 이런 라이선스 관행이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경쟁 배제 행위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퀄컴과 라이벌 칩 업체간 계약방식, 아무런 문제 없다"

그런데 항소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두 사건의 성격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일단 퀄컴은 특허소진론이 본격 논의된 직후엔 라이벌 칩 제조업체에 단 한번도 ‘소멸되는 라이선스(exhaustive license)’를 제공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재판 과정에서 사실로 입증했다.

퀄컴은 대신 CDMA 업체들과 ‘비소멸적(non-exhaustive), 라이선스 계약’을 고집해 왔다. 그 결과물이 이번 소송의 첫 번째 쟁점인 ‘라이선스를 하지 않을 경우 칩을 공급하지 않는’(no license-no chips) 정책이다.

따라서 항소법원은 “퀄컴이 자발적으로 수지 맞는 거래를 중단했다”는 1심 법원의 판결은 사실 관계가 틀렸다고 지적했다. 퀄컴은 시장 2006년 모뎀 칩 시장에서 지배적 지위를 획득한 이후 단 한번도 경쟁업체들과 ‘소진되는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적 없기 때문이다.

항소법원은 또 퀄컴이 경쟁사 대신 OEM 업체들과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것은 ‘경쟁을 말살함으로써 먼 미래에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지금 당장의 이익을 희생하는 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장기 이익을 위해 단기 이익을 포기하는 행위'는 연방대법원의 1985년 아스펜 사건 판결 때 중요한 기준이 됐다. 당시 아스펜 스키의 셔먼법 2조 침해가 인정된 것은 경쟁사를 시장에서 쫓아내기 위해 눈앞의 이익을 포기하는 행위를 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미국 제9연방순회항소법원. (사진=제9항소법원)

항소법원은 “퀄컴의 행위는 특허소진법 변경 이후 장단기 모두 더 이익이 많은 쪽을 택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경쟁사에 타격을 입힌 부분은 있다. 그런데 항소법원은 “셔먼법을 비롯한 반독점법은 (시장의) 경쟁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 경쟁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항소법원은 퀄컴의 필수표준특허 라이선스 때 특정 경쟁사를 겨냥해서 반경쟁행위를 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 점이 아스펜 스키 판례와는 다른 점이라는 것이 항소법원의 판단이었다.

항소법원은 아스펜 스키 사건과 좀 더 직접적으로 비교했다. 아스펜 사건 당시 아스펜 스키는 경쟁사의 패키지 티켓 판매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자사 시설까지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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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퀄컴의 행위는 “티켓 판매는 금지했지만, 리프트 이용은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비유했다. 모든 경쟁자들에게 OEM 수준의 라이선스 계약을 동일하게 적용했기 때문이다.

항소법원은 “퀄컴이 라이벌 OEM 업체들에겐 ‘라이선스가 없으면 칩도 없다(no license, no chipa)’ 정책을 고수했다면, 라이벌 칩 제조업체들에게 적용한 정책은 ‘라이선스가 없으면, 아무 문제 없다(no license, no problem)’는 정책이었다”고 판단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