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회사 대표 20년 하며 배운 것 "조바심이 실패 지름길"

[라떼는닷컴] 김대연 윈스 대표

컴퓨팅입력 :2020/06/25 16:57    수정: 2020/06/29 17:28

90년생들에게는 낯설게 들릴 이야기다. 약 20여년 전 우리나라에 IT와 인터넷 분야를 뜻하는 이른바 '닷컴 산업' 열풍이 불었다. 내로라 하는 우리나라 IT 기업들도 대부분 이때 등장했다. 말 그대로 버블에 해당한 벤처기업들은 다 도산했고, 알짜 기업들은 지금까지 살아남아 기업·공공·개인 소비자 영역에서 명맥을 잇고 있다. 그렇게 생존한 20년 전 젊은 창업자들은 어느덧 중견기업 대표로 살아가고 있다. '라떼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를 뜻하는 신조어)'라고 운을 떼며 그간 겪은 산전수전을 털어놓을 법 하다. 이들의 그간 소회와 인상 깊은 기억들을 릴레이로 들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현 시점에서 돌아보면 십중팔구는 실패했다. 20여년 전 우후죽순 생겨난 IT 벤처 기업들 이야기다. 네트워크 보안 전문 기업인 윈스도 그때 창립된 기업 중 하나다. 당시 제조 기업인 코오롱에서 근무하던 김대연 대표는 이 신생 회사로 적을 옮겼다. 벤처 기업에 가면 '일확천금'을 번다는 분위기가 있기도 했고, 좋게 포장하면 새로운 도전을 위한 선택이었다.

당시 생겨나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회사들은 많지 않다. 대표이사가 그대로인 경우는 더욱 적다. 윈스는 그 적은 사례에 해당된다.

김대연 대표에 따르면 십중팔구로 사라진 회사들은 유행에 충실했다. 코스닥 상장, 해외 시장 진출, 첨단 기술 개발 박차, 외연 확장…지금도 회사 대표들이 흔히 외치는 단어들이다. 성장 동력을 얻기 위한 전략들이지만, 사업이 안정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이뤄진 모험은 대부분 리스크로 돌아왔다. 회사 규모와 상관없이, '조급함'이 성패를 가른 경우가 많았다.

윈스가 이 회사들과 차별화된 부분은, 사업의 기본 구조에 충실한 경영이 이뤄졌다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로 인해 아쉬운 결과를 남긴 순간들도 물론 존재했다. 그러나 무리한 시도로 실패를 겪는 동종업계 회사들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었다. 김 대표는 이같은 경영 전략이 30~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분야를 가리지 않고 똑같이 유효하다고 말했다.

경영 전문가였던 김 대표가 윈스로 합류해 보안업계에 몸을 담고, 닷컴열풍을 지나온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대연 윈스 대표

윈스 합류 초기엔, 새 분야인 보안에 적응하는 게 관건이었다.

"당시에는 팩스가 많이 쓰였다. 이전 직장에선 새 업무를 맡게 되면 회사에 쌓여 있는 팩스 서류들을 3개월 분씩 정리하곤 했다. 몇 년이 흐르면 버리는 서류들이었고, 남들이 보면 가치 없는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었을 거다. 그렇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업무 배경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윈스는 그런 게 없는 신생 회사였다. 고민하다가 당시 100명 이상 규모 되는 동종업계 회사들이 20여개 정도였는데, 이 곳들을 다 찾아가 대표들을 만났다. 거절하는 경우도 몇 번 있었다. 서너달 정도 걸린 것 같다.

조언을 들으면서 역량이 많이 늘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한 수 배우러 왔다고 했는데, 당시 90% 이상 회사 대표들이 IT 전공자들이었다. 대부분 친절하게 기술 흐름 등에 대해 설명해줬다. 그 때는 보안 회사들이 대부분 테헤란로에 있었다.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회사들 분위기도 느껴볼 수 있었다. 보안 관제실들을 구경하면서 미라클 글래스도 처음 봤다. 업체 대표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입도선매 계약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윈스가 어려울 때였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2000년에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KISIA) 연말 송년회를 갔을 때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밥만 먹고 나왔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회사 스무 군데를 다니니깐 아는 사람들이 생기고, 빨리 적응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 그런데 그 때 찾아갔던 회사들은 안랩 빼곤 거의 망했다.(웃음)"

윈스 경영을 맡은 이후, 김 대표는 시장 흐름에 '반 발자국 뒤따라가는' 전략을 택했다. 작은 회사인 윈스로서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고객사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결정이었다.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생각은 안 했다. 저희는 너무 작았고, 고객사들은 매우 큰 회사들이었다. 우리가 따라가는 게 맞다고 봤다. B2B 시장에서 새 기술 트렌드가 등장하고, 고객사가 이를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칠 때 재빨리 충족시켜줄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해외 시장 진출 과정에서도 이처럼 리스크를 민감하게 여기는 성향이 반영됐다. 윈스는 미국, 중국, 일본 시장에 진출했었다. 이후 일본 시장에 집중하는 것으로 전략을 변경했다.

"국내 시장 규모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해외 시장 진출은 실패 가능성과 상관없이 해야 하는 일이다. 진출한 이후, 금방 다른 곳은 접고 일본에 집중했다. 결과적으로는 잘한 결정이었는데, 당시 돌아보면 당연한 판단이었다.

보안은 다른 IT 분야에 비해서도 해외 진출이 훨씬 어렵다. 외국계 보안 회사들이 국내 시장에 진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과 마찬가지다. 개발도상국은 보안 시장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국민 소득 1만불 이상은 돼야 보안 시장에 진입하고, 지속적인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다. 미주, 유럽 등을 제외하면 일본, 대만 정도다. 중국 시장은 특수성이 있어 보안 회사로선 진입이 어렵다.

이전 회사에서 미국 주재원을 4년간 하면서 미국 시장에 제품을 수출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됐다. 망했던 IT 벤처 기업들이 대부분 미국 시장에 많이 투자했고, 지금도 많이들 한다. 그런데 여기선 전세계 내로라 하는 기업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 일찌감치 철수했다.

당시 마케팅 담당 전무와 중국 시장 철수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기도 했다. 회사 기반이 너무 약했을 때라 계속 투자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는데, 입장이 갈렸다. 당시 회사에 18명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이 전무가 9명을 데리고 다른 회사로 갔다. 그 회사는 5년 뒤에 망했다."

2001년 당시 김대연 윈스 대표

사업을 하면서 아쉬웠던 순간으로는 인터넷 기업 나우콤 매각을 언급했다.

"닷컴열풍 이후 가장 성공한 곳들은 네이버 등 플랫폼 비즈니스를 하는 업체들이다. 그래서 아프리카TV, 테일즈런너를 운영하던 나우콤을 매각한 일이 지난 20년 동안 가장 잘못 내린 결정 같다. 나우콤에서 운영하는 아프리카TV가 매출 비중은 낮았는데, 정치 리스크가 좀 있었다. 윈스도 영향을 받아 사업이 어려웠다. 그래서 매각을 결정했는데, 플랫폼 비즈니스의 중요성을 잘 몰라서 내렸던 판단이었다."

향후 윈스 사업 방향에 대해서는 보안 관제 및 컨설팅, 유지관리와 관련된 '서비스' 매출 비중 확대를 꼽았다. 하드웨어 제품을 납품하고, 이를 5~6년 뒤에 새 제품으로 교체하게 하는 비즈니스 방식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게 이유다. 앞으로는 "정수기 렌탈"과 비슷한 서비스 사업이 확장돼야 안정적인 회사 성장이 이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보보호 산업이 활성화되기 위한 숙제에 대해서는 업계에서 공감하는 '제 값 받기'를 강조했다. 보안 분야에서 스타트업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이 중 경쟁력 있는 업체를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인수하고, 업계 전체 경쟁력이 향상되는 선순환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제조업 출신이라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 모르겠지만, 정보보호 분야는 정부 지원이 많았던 분야로 생각한다. 윈스가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지원을 많이 받았다. 그 부분은 감사함이 있다. 아쉬운 건 소프트웨어에 대한 가치 평가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큰 돈을 벌지 못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서비스는 공짜로 보는 문화가 아직 남아 있다.

구글이 스타트업을 많이 인수했는데, 그 중 유튜브가 있었고 대성했다. 우리가 아는 건 유튜브지만, 망한 곳도 많을 것이다. 시장이 이런 식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한국 시장은 그게 잘 안 된다. 아쉬운 점이다. B2C는 플랫폼 비즈니스하면서 돈을 번다. 이를 기반으로 M&A를 많이 한다. 카카오도 100개 정도 했는데, 그 중 돈 버는 곳이 나타날 거다. 선순환이 된다. B2B 기업은 고객이 항상 갑이다. 이익을 늘리기 힘들다.

제도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문화는 바뀌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입찰, 조달, 다수공급자계약(MAS)... 제도적으로 보완하기 위해 사업의 기술능력 평가 비중을 90%로 뒀어도, 기술을 똑같이 평가하니 10% 비중인 가격 경쟁력으로 결판이 나버린다. 저가 입찰이 되고, 시장은 최소화된다. 이렇다 보니 보안업계는 1위 업체는 이익을 내지만, 2등은 돈을 못 벌고, 3등은 죽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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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20여년간 한 회사 대표로서 경영을 계속해온 김 대표에게, 은퇴에 대한 생각을 조심스레 물어봤다.

"박동훈 전 닉스테크 대표는 아주 젊었을 때부터 했었고, 할 만큼 했다 해서 2년 전에 회사를 나오고 지금은 즐겁게 산다. 동기들 중에 대기업에서 은퇴하면서 당혹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은데 옆에서 보면 사실 아쉽지만 자연스러운 시기다. 은퇴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과 시간적 자유를 갖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회사 경영을 하면서도 시간을 내어 자전거 타면서 시간도 보내고 가고 싶은 곳도 간다. 은퇴에 대해 유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결국 은퇴 준비는 마인드와 방법의 문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