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올 연말을 시작으로 맥 제품에 Arm 기반 자체 설계 프로세서로 전환하기로 했다.
일부에서는 이런 결정에 대해 최근 2-3년간 10nm(나노미터) 공정에서 고전하고 있는 인텔의 난맥상을 그 이유로 꼽는다. 그러나 애플의 자체 칩 이주 시도는 7년 전 출시된 아이폰5S부터 엿보이기 시작한다.
■ 애플 "A7 프로세서, '데스크톱급 성능'
애플은 2013년 아이폰5S에 탑재한 A7 프로세서에 대해 '64비트 데스크톱급 성능'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아난드테크 역시 "A7 프로세서는 퀄컴 스냅드래곤이나 인텔 아톰 프로세서가 아닌 그 위의 프로세서를 겨냥한 칩"이라고 설명했다.
2017년에는 아이맥 프로에 인텔 제온 프로세서의 작업을 일부 분담하면서 SSD 컨트롤러 역할을 하는 T2 칩을 탑재하기도 했다.
애플이 설계한 A시리즈 프로세서 역시 철저히 64비트로만 작동하도록 최적화됐다. 이미 32비트 응용프로그램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또 지난 해 출시한 맥OS 카탈리나(10.15)는 32비트 앱 지원 기능을 완전히 삭제하는 등 오래 전부터 사전 정지 작업이 진행된 것이다.
■ 하위호환성이 '고효율 저전력' 발목 잡았나
애플이 인텔 프로세서를 벗어나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오히려 하위 호환성일 수 있다. 내부 프로세서 구조가 과거 개발된 소프트웨어까지 구동하게 하다 보니 점점 비대해지면서 애플이 추구하는 '고효율 저전력'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텔 프로세서 안에는 64비트는 물론 32비트·16비트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한 명령어와 구조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는 보기에 따라 비효율적이지만 마이크로소프트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제조사의 프로그램을 실행해야 하는 특성상 어쩔 수 없다.
인텔이 하위호환성을 완전히 무시한 새로운 시도를 했던 적도 있다. 2000년대 초반 HP와 공동개발한 64비트 프로세서인 아이태니엄이 그것이다. 이 프로세서는 기존 32비트 명령어를 모두 제거한 순수한 64비트로 설계되었지만 하위호환성이 발목을 잡았다.
이 때문에 아이태니엄은 실패했다. 반면 AMD는 서버용 프로세서인 옵테론을 개발하면서 기존 32비트 명령어를 확장한 AMD64 명령어를 탑재했다. 인텔 역시 결국은 AMD64 명령어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런 트라우마를 안은 인텔이 하위호환성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 인텔 커스텀 칩 공급도 쉽지 않은 상황
애플은 인텔에 하위호환성을 완전히 제거한 새로운 프로세서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고려했을 법하다. 그러나 1년에 1천700만 대(IDC 2019년 집계 기준) 정도를 판매하는 PC 제조사를 위해 새 프로세서를 만들어 주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관계자는 "애플의 요구대로 어떤 칩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원과 개발 비용이 투입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는 인텔 주요 제품인 데스크톱·서버용 프로세서와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또 인텔 프로세서 출시 스케줄에 맥 신제품 출시가 크게 영향을 받기도 했다. 일례로 9세대 코어 프로세서는 지난 해 말 출시된 맥북프로 16형에 가까스로 탑재되었고 10nm(나노미터) 공정에서 생산된 10세대 코어 프로세서(아이스레이크)는 올해 출시된 맥북에어 신형과 맥북프로 13형에 가까스로 탑재됐다.
일부에서는 AMD 라이젠 프로세서를 대안으로 꼽기도 한다. 그러나 하위호환성의 딜레마는 라이젠 프로세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또 코어 프로세서와 라이젠 프로세서에 내장된 명령어 사이에도 아주 미묘한 차이가 있다.
■ 맥에서는 벗어나도 서버에서는 의존 불가피
애플은 앞으로 2년 안에 모든 맥 제품에 자체 프로세서를 투입할 예정이다. 하지만 고성능을 요구하는 아이맥 프로와 맥프로 등 워크스테이션급 제품에서는 여전히 인텔 제온 프로세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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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역시 기존 PC 중심 회사에서 데이터 중심 회사로 전환을 선언하고 클라우드를 지탱하는 서버용 고성능 프로세서로 상당 부분 무게중심을 옮겼다. 빅데이터와 5G 등이 일반화되며 이를 처리하기 위한 서버 수요는 날로 폭증하는 상황이다.
애플 역시 자체 클라우드를 운영하기 위한 서버용 칩은 인텔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반면 PC 시장은 매년 축소를 거듭하고 있다. 매년 1천700만 대 가량의 PC용 프로세서를 소화하는 애플의 이탈은 인텔에게는 손실이지만 치명타로 보기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