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업 외면한 네이버가 왜 전용 통장을 만들었을까

[이슈진단+] 플랫폼 기반 테크핀 사업의 미래

인터넷입력 :2020/06/09 17:00    수정: 2020/06/10 09:35

안희정, 손예술 기자

금융업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기존엔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은 곳에서만 여수신 업무를 맡아왔지만 네이버와 카카오 등 ICT 기업도 금융사와 제휴를 통해 금융회사로 변신하고 있다. 이들은 포털과 메신저 등 이미 구축해 놓은 플랫폼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금융 생태계에 스며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터넷 기업들이 금융업을 넘보는 이유가 뭘까. 지디넷코리아가 테크핀의 현재를 짚어보고 금융업의 미래 지형도를 그려봤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상) 은행업 외면한 네이버가 왜 전용 통장을 만들었을까

(하) 진짜로 '뱅킹'만 남고 '뱅크'는 사라지게 될까

예금의 출납 상태를 적어주는 장부인 통장. 디지털 금융 시대가 도래하며 종이로서의 가치는 잃어가고 있지만, 은행만이 발급할 수 있다는 그 상징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네이버 금융 자회사인 네이버파이낸셜은 그런 의미에서 비슷한 뜻의 '계좌'라는 단어보다는 '통장'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은행은 아니지만 금융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해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도 풀이된다.

네이버는 네이버페이를 시작으로 통장까지 내놓으며 금융 사업의 영역을 점차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카카오나 KT와는 달리 여러번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본격적인 은행업 진출은 거부했다. 대신 '테크핀'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당장 전통적인 금융업계와 본격적으로 맞서기보다는 금융기관과 제휴해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창출하고 이를 네이버 생태계 속 가입자에게 제공함으로써 기존 고객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는 전략을 쓰고 있다는 뜻이다.

■ 소액이라도 네이버 안에서 써라

네이버파이낸셜이 지난 8일 출시한 네이버통장은 100만원 예치금에 대한 연 수익률 3%뿐만 아니라, 네이버페이로 충전결제 시 3% 포인트 적립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여기에 네이버가 최근 선보인 유료 멤버십 프로그램인 네이버플러스 가입자라면 4%(구매액 20만원까지)를 추가로 더 적립 받을 수 있다.

예치금 100만원 이하만 연 수익률 3%를 지급하기 때문에 큰 파급력이 없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추가로 받을 수 있는 네이버페이 포인트와, 쓰면 쓸 수록 늘어나는 적립금을 생각하면 저금리 시대에 나름 매력적인 조건일 수 있다.

네이버파이낸셜은 100만원 초과 1천만원 이해 금액에 대해서는 1% 수익률이 적용되고, 1천만원 초과 금액의 수익률은 0.35%로 정했다. 많은 돈 예치자보다 적은 돈 예치자에게 더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네이버가 타깃으로 생각하는 이용자는 은행들과 달리 큰 돈을 예치하는 VIP 고객이 아니라 네이버를 자주 이용하며 소액으로 결제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를 더 편하게 해주면서 금융혜택까지 제공하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네이버 생태계 안에서는 이미 결제해야 할 서비스가 많다. 네이버쇼핑뿐만 아니라 웹툰 음악 등 콘텐츠와 클라우드 서비스 등이 그렇다.

네이버 통장의 주요 고객은 바로 그런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네이버파이낸셜은 물론 추후 금융 서비스까지 이것만으로 제한하지는 않을 것이다. 회사 측은 초기 테크핀 사업을 통해 확보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추후에는 투자상품, 보험, 예적금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누구나 네이버 안에서는 쉽게 계좌를 만들고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금융 소외 계층을 아우를 수 있는 서비스로 시작해 나중에는 금융 시장에서 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네이버통장

■ 네이버파이낸셜 탄생 이유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는 네이버통장을 두고 저금리 시대 누구나 금융 혜택을 쉽고 편리하게 누리는 것에 방점을 둔 상품이라고 강조했다. 네이버파이낸셜이 지향하는 혁신 금융의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동안 네이버는 네이버페이 서비스를 분할해 네이버파이낸셜 법인을 신설하면서 '테크핀' 시장에서 본격적인 흐름을 만들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단순히 네이버쇼핑에서 간편하게 쓸 수 있는 결제 시스템이나 포인트 적립·사용에 그치지 않고, 테크핀 회사로 더 큰 그림을 만들겠다는 얘기다.

여전히 은행업 진출은 고려하고 있지 않지만, 미래에셋대우와 함께 결제나 대출, 보험 등 네이버만이 할 수 있는 맞춤형 금융상품을 출시해 새로운 이용자를 끌어드리겠다는 계획도 분명히 했다.

네이버파이낸셜이 테크핀을 하려는 이유는 플랫폼 힘을 더 견고히 하기 위해서다. 이미 모인 이용자에게 기존 금융업이 제공할 수 없는 기술 기반의 색다른 서비스를 제공해 더 많은 이용자를 모으고, 또 묶어 둘 수 있다. 아울러 기존 은행권이나 금융권에서 외면받고 있는 씬파일러들, 특히 사회초년생, 청년, 소상공인들을 IT 기술 기반 서비스로 품겠다는 야심찬 목표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저금보다는 소비가 익숙한 젊은 층을 사로잡기 위해 적은 금액을 대상으로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는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며 "IT 기업들이 테크핀을 통해 전통 금융업에서는 주목하지 않고 있는 사용자들도 끌어모아 플랫폼에 묶여 두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내다봤다.

■ 테크핀 뭐길래

테크핀은 IT를 기반으로한 금융 서비스를 말한다. 금융 서비스에 기술을 장착한 핀테크와 다른 점은 출발점이 기술에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테크핀 기업으로 네이버파이낸셜·카카오페이·NHN페이코 등이 꼽힌다. 이들은 모두 전자금융업자로 등록돼 있으며 자신들의 플랫폼을 활용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자금융거래법에 따르면 전자금융거래는 직접 대면하거나 의사소통하지 않고 자동화된 방식으로 제공하는 금융서비스다.

다만 카카오를 최대주주로 둔 카카오뱅크는 은행업 라이선스를 받았다는 점에서 테크핀과 구별된다.

은행 계좌는 자금이 들어있는 '창고' 역할만 하지만, 테크핀으로 변모하는 IT 기업의 계좌는 다르다. 플랫폼을 기반으로 계좌 이상의 부수적인 금융서비스를 창출하기 용이하기 때문에 은행 서비스 못잖게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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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IT기업은 수신업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기존 금융업과의 협력은 필수이다. 네이버파이낸셜과 카카오페이가 증권사와 손잡는 것이 그 이유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IT기업은 금융사의 라이선스를 활용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할 수 있고, 금융사는 플랫폼의 힘을 빌려 이용자 확대를 꾀할 수 있다"며 "플랫폼의 힘이 강하면 금융 서비스의 주도권이 IT기업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