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만에 '공인' 뗀 전자서명법, 업계 속내 엇갈려

[이슈진단+] 전자서명법 개정안 통과 (하)

컴퓨팅입력 :2020/05/22 10:08    수정: 2020/05/26 11:21

지난 1999년 생겨난 전자서명법과 역사를 같이 한 '공인인증서' 개념이 사라진다.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해당 개념을 삭제하는 내용 등을 담은 전자서명법 개정안이 처리된 것. 불필요한 규제가 사라짐에 따라 사업자 간 경쟁이 활성화되고, 소비자 편의도 향상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법안 논의 과정이 미비했던 만큼, 차후 21대 국회에서 추가 개정을 바라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개정안이 미칠 영향과, 전자서명 업계의 의견을 모아봤다. [편집자주]

전자서명법 개정안이 시행을 앞두게 되면서 인증업계 경쟁 구도에는 변화가 따를 예정이다. 이에 따라 각 업계의 속내가 엇갈리고 있다.

공인인증기관으로선 입맛이 쓴 결과다. 공인인증서의 법적 우월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업계는 지난 2018년 9월 개정안이 발의된 이후 해외 진출, 사업 다각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여왔다.

본인확인기관이자, '패스 인증서'를 서비스하는 이동통신 3사는 전자서명법 개정에 환영하는 입장을 보였다. 법 개정을 계기로,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준비한 모바일 운전면허증을 비롯해 편리한 인증 서비스를 확대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패스 인증서를 제외한 다른 사설인증 서비스들도 기본적으로는 법안 개정을 반기고 있다. 다만 법안 통과 과정에서 주민번호나 사업자등록번호 등의 '실지명의' 기반 인증을 요구하는 일부 법안이 개정 없이 그대로 남게 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사진=픽스타)

■공인인증업계 "사업 다각화에 집중"

전자서명법 개정안이 업계 경쟁 활성화와 소비자 편의 향상이라는 대의 하에 도입되는 만큼 공인인증기관들은 표면적으론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시행령 등 하위 법령 마련 과정을 주시하면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한국전자인증 관계자는 향후 사업 계획에 대해 "글로벌 기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들을 모색 중이고, 인공지능(AI) 기술 자회사 AI브레인과 협업하는 등 AI 보안 분야 사업에 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정보인증 관계자는 "개정안에서 시행령에 위임하는 내용들이 있다보니 추후 시행령 개정 과정을 지켜보며 동향을 파악할 예정"이라며 "전자계약 서비스 '사인오케이'의 사업 영역 확대 및 서비스 고도화를 추진하고, 몇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준비해온 V2X 보안 기술도 주력할 사업 영역으로 보고 있다"고 답했다.

금융결제원은 법안 시행 이후 제공할 신규 인증 서비스를 은행과 함께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규 인증 서비스의 경우 인증서 발급 절차를 간소화, 단일화하고 유효기간을 3년으로 늘리는 등 편의성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이통사 "모바일 신분증 서비스 확대 추진"

이통 3사 본인확인 앱 '패스'의 경우 지난해 4월 인증서 서비스를 출시했다. 동양생명보험과 미래에셋대우, KT 등 세 곳을 인증서 제휴처로 뒀다. 인증서 발급자 수는 1천만을 넘겼다.

전자서명법 개정안에 통과에 대해서는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할 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이통사 관계자는 "일례로, 다음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ICT 규제 샌드박스 제도로 허가받은 모바일 운전면허 확인 서비스를 처음 선보일 예정"이라며 "이처럼 정부가 추진하는 신분증의 모바일화와 궤를 같이 하는 사업 기회들을 잡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패스 관련 부가서비스 확대도 계획 중이다. 이 관계자는 "패스 이용자들이 관심을 많이 갖는 금융생활 등 편리하고 유용한 부가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설인증 "주민번호 인증 요구 법안 고쳐야 진짜 평등"

공인인증기관·본인확인기관이 아닌 사설인증업계는 실지명의 기반의 인증을 요구하는 18개 법안들에 대해서도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실지명의 인증을 요구하는 영역은 주로 공공 분야다. 공인인증기관·본인확인기관이 아닌, 주민번호를 수집하지 않는 IT 사업자가 발급하는 인증서는 사용할 수 없다.

사설인증업계 관계자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공공 인증 영역에서 활용 가능한 인증서는 실지명의 기반 인증서로 제한된다"며 "공인인증기관이나 본인확인기관이 아니더라도 적정한 보안 수준을 갖춘 인증서라면 공공, 민간 영역에서 차별 없이 활용될 수 있도록 시행령 상 규제 완화가 명시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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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이같은 업계 요구를 반영한 전자서명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서명자의 실지명의 확인을 주민번호 외 대체수단으로 가능하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전자서명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논의 과정에서 해당 내용이 반영되지 못했다. 실지명의 인증을 요구하는 18개 법안에 대해, 각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법안 개정을 논의하게 하자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