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인간 멸망 건 러시아 룰렛 같은 상황”

토비 오드 “코로나19 계기로 인류 멸망 위기 생각해봐야”

과학입력 :2020/04/28 13:02    수정: 2020/04/28 13:02

“21세기는 인간의 멸망을 건 사실상 러시아 룰렛 같은 상황이다...실존적 위험을 피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통일된 의사 결정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실존적 위험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인 옥스포드 미래 인류 연구소 소속의 토비 오드 철학자가 “코로나19 유행은 인류 멸망의 위기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해 주목을 받고 있다.

더 가이언 등에 따르면 코로나19 유행으로 사람들은 전염병 유행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또 감염증 확산을 막기 위해 어떤 국제적인 공조가 이뤄지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사람은 기억에 남아있는 최근의 경험에서 장래에 일어나는 이벤트의 가능성을 추정하는 데 능숙하지만, 전례 없는 잠재적인 대재앙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서툴다.

권총 자료사진(제공=픽사베이)

토비 데이빗 갓프레이 오드(이하 오드) 철학자는 자신의 저서 ‘The Precipice'(벼랑)에서 “비록 전문가가 전례 없는 이벤트가 일어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추정해도, 우리는 그 이벤트를 실제로 보기 전까지 전문가의 추정을 믿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세계적인 확대가 여기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관련 전문 지식을 갖춘 과학자들은 근미래에 강력한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유행할 것이라 확신하며, 여러 번 경종을 울려왔다. 감염증 전문가가 아닌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게이츠 역시 지난 2015년 테드(TED) 강연에서 “향후 수십 년 1천만 명 이상이 죽는 사태가 일어난다면 전쟁보다는 전염성 바이러스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오드는 항성 폭발, 악성 바이러스의 유행, 초화산 폭발, 인공지능의 폭주 등 다방면에 걸쳐 인간의 문명이 돌이킬 수 없는 차원으로 무너지고, 살아남은 인간의 생활이 선사시대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관점에서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시민과 정부, 일부 과학자들은 이런 실존적 위험에 대해 무시해 왔다는 입장이다.

이에 그는 이번 코로나19 유행이 “가까운 미래에 닥칠 인간의 위기를 피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간과돼온 실존적 위험을 직접 경험하고, 묵시록적인 미래를 회피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갈림길 자료사진(제공=픽사베이)

오드는 “인간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면 다음 세기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번영을 누리게 되겠지만, 잘못된 결정을 하면 공룡과 같은 멸망의 길을 갈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초신성 폭발, 초화산 폭발, 치명적인 인공 바이러스의 유출로 지구가 멸망하는 위험을 하나하나 생각하면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모든 위험을 합산하면 그 가능성이 결코 낮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를 의역해 외신은 “21세기는 인간의 멸망을 건 러시아 룰렛 같은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생명과학과 인공지능과 같은 분야에서 증가하는 위협 역시 간과하면 안 된다는 것이 오드의 입장이다.

영국의 우주 물리학자인 마틴 리스도 다가오는 인류 멸망의 위기에 대해 우려하고 이를 연구해온 연구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우리의 세계는 상호 연관돼 있어 최악의 잠재적 재앙이 초래하는 피해 규모는 전례 없이 클 것”이라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 위협에 대해 부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낯선 것은 있을 수 없는 것과 같지 않다”는 격언을 인용하기도 했다.

영국의 정치인 올리버 렛윈은 최근 자신의 저서 ‘종말론’에서 인터넷과 위성 시스템의 과의존을 경고하기도 했다. 사회 대부분이 통합된 네트워크에 의존함으로써 끔찍한 피해가 전 세계로 확대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오드는 “또 사이버 공격이나 자연 발생한 병원체가 중대한 실존적 위험을 일으킨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생물 연구소에서 연구되고 있는 병원균이나 생물 무기가 농업, 수송, 무역, 도시 지역의 인구 밀집 등 요소가 서로 포개지는 현대에 인간을 멸망으로 이끌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로봇 자료사진(제공=픽사베이)

아울러 그는 실존적 위험에 대한 대비책이 부실하다는 우려를 표했다. 예컨대 생물 무기의 규제를 목적으로 한 생물 무기 금지 조약에 배정된 예산이 연간 140만 유로인데, 이는 평균적인 맥도널드 1채의 연간 매출액보다 낮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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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는 “나는 결코 비관론자가 아니다. 인간이 건설적인 대책을 취한다면 실존적 위험을 충분히 경감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인간은 이른바 체력은 있지만 선견지명과 인내력이 부족한 사춘기 상태다. 성숙하기 까지 스스로의 힘이 자신을 망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기술 개발 속도를 늦추고 개발 중인 기술이 가진 진짜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앞으로 태어날 세대를 위해서라도 인간의 도덕적 이해를 심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오드 교수는 “인간의 멸망과 관련된 실존적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세계 규모의 이해와 합의가 필요한데, 경제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연결돼 있지만 정치 시스템은 여전히 국가 또는 연방마다 분단돼 있다”면서 “코로나19 유행이 세계를 연결하는 것인지, 혹은 분단을 가속화 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실존적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으로 통일된 의사 결정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