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인터넷을 획기적으로 바꿀 새로운 인터넷 프로토콜(IP) 시스템을 제안했다. 자율주행차, 홀로그램 같은 첨단 기술을 잘 구동하기 위한 것이란 설명도 함께 덧붙였다.
하지만 일부에선 중국이 인터넷의 기반이 되는 웹에 독재주의를 녹여넣으려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중국 통신사인 화웨이와 국영 기업인 차이나 유니콤, 차이나 텔레콤 등은 중국 정보기술산업부와 공동으로 UN 산하 국제통신연합(ITU)에 ‘뉴IP’란 새로운 인터넷 표준을 제안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화웨이 등은 오는 11월 인도에서 열리는 ITU 회의에서 뉴IT를 새 표준으로 밀어붙일 계획이라고 이 신문이 전했다.
■ 화웨이 등도 참여…"자율주행차·홀로그램 등 신기술 수용 초점"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화웨이는 파워포인트로 된 이번 제안서에서 현재 글로벌 인터넷망을 구성하고 있는 TCP/IP는 2030년으로 예상되는 자율주행차나 사물인터넷, 홀로그램 같은 첨단 디지털 기술의 요구 조건을 수용하기엔 턱 없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ITU가 장기적인 관점을 갖고 미래 인터넷망을 위해 톱다운 방식의 디자인을 주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뉴IP는 급속하게 발전하는 디지털 세계의 기술적인 요구사항을 충족하기 위한 목적 하에 개발되고 있다고 화웨이 측이 주장했다. 이와 함께 뉴IP에는 어떤 형태의 통제 수단도 심어 놓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화웨이는 새로운 시스템은 이미 여러 나라와 기업들이 함께 개발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2021년 까지는 일부 요소에 대한 테스트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넷 통제 우려에 대해 화웨이 측은 “전 세계 모든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뉴IP 개발과 혁신에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해명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화웨이 등이 ITU에 제안한 뉴IP 관련 문건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현재 ITU는 중국인인 자오 허우린이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자오 허우린은 지난 2014년 부산에서 열린 ITU 전권회의에서 사무총장에 선임됐다.
중국의 이 같은 시도에 대해 미국, 영국, 스웨덴 등 서방 국가들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중국이 제안한 뉴IP 시스템이 적용될 경우 세계 인터넷망이 분열될 뿐 아니라 국영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이 일반 시민들의 인터넷 이용을 감시, 통제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서방 국가들은 중국의 제안에 대해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도 지지 의사를 밝힐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영국의 한 ITU 대의원은 “현재 물밑에선 인터넷 운영방식을 놓고 거대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한쪽은 매우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터넷을, 다른 쪽은 정부가 참견하고 통제하는 인터넷이란 비전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 뉴IP 개발자들 "현재 인터넷은 사설망 연결에 허점" 주장
뉴IP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화웨이 등은 현재 인터넷이 여러 망들로 쪼개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설통신망을 비롯한 다양한 망들이 등장한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망들의 표준이 주소 구조가 제각기 달라 호환성 문제가 커지고 있다는 것. 따라서 홀로그램, 자율주행차 같은 새로운 기술을 제대로 수용하기 위해선 좀 더 효율적인 인터넷 주소 시스템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 뉴IP는 이런 고민을 해결해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게 화웨이 등의 주장이다.
같은 망 내에선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전송하기 않고도 기기들끼지 직접 소통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뉴IP가 적용될 경우 정부나 통신사업자들이 IP 주소에 대해 강력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뉴IP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는 쪽에선 새로운 주소를 추가하려면 망들이 추적 기능을 가져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인터넷을 통한 소통을 검열하고 통제하는 기능을 갖게 될 수도 있다는 비판이다.실제로 화웨이도 ITU에서 새로운 제안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뉴IP가 특정 인터넷 주소로의 통신을 끊는 ‘셧업 명령(shut up command)’ 기능이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
■ 서방국가 vs 중국·러시아, 인터넷 거버넌스 놓고 치열한 힘겨루기
전 세계 인터넷 통제권을 둘러싼 공방이 수년 째 계속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가들은 현재 시스템을 고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 중국과 러시아가 주축이 된 제3세계 그룹은 미국 중심의 인터넷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인터넷은 사실상 미국에서 시작됐다. 그러다보니 미국은 알파넷(ARPANET) 시절이던 1968년부터 인터넷 주소 관리 권한을 행사해왔다.
상무부 산하 국가정보통신국(NTIA)를 통해 민간 다자기구인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를 통제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구조에 대해 중국, 러시아 등이 주도하는 제3세계 그룹이 강하게 반발해 왔다. 특히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미국 국토안보국(NSA)이 전 세계 인터넷을 전방위 사찰해온 사실이 알려진 이후부터는 반발 강도가 훨씬 심해졌다.
이에 따라 중국, 러시아 등은 ICANN 대신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인터넷 정책을 총괄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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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능 대표별로 표결권을 할당하는 ICANN과 달리 ITU는 국가별로 한 표씩 행사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ICANN 체제를 선호하는 반면 중국, 러시아를 필두로 제3세계 국가들이 ITU 이양에 관심을 갖는 건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ITU가 인터넷 정책을 총괄할 경우 중국, 러시아 등이 숫적 우세를 앞세워 인터넷 거버넌스를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