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가 던진 충격은 엄청났다. ‘천하제일’ 뉴욕타임스의 치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콘텐츠는 최고’란 자부심은 여전했지만 ’시대에 뒤지고 있다’는 두려움까지 가릴 순 없었다.
그 중에서도 신생매체 버즈피드에 대한 두려운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버즈피드 편집장은 벤 스미스였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를 거쳐 2011년 버즈피드 편집장으로 영입됐다. 스미스는 리스티클을 비롯한 가벼운 콘텐츠로 승부했던 버즈피드에 진지한 저널리즘을 접목했다. 스미스가 이끈 버즈피드는 퓰리처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릴 정도로 탁월한 실력을 과시했다.
버즈피드에 진지한 저널리즘의 혼을 심었던 벤 스미스가 연초부터 미국 언론계에 깜짝 소식을 전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자리를 옮긴다는 소식이다. 벤 스미스는 뉴욕타임스의 ‘미디어 방정식(Media Equation)’ 칼럼을 책임지게 된다. 이 칼럼은 2015년 작고한 전설적인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카가 처음 시작한 코너로, 한 때 미디어 업계 종사자들의 ‘필독 칼럼’으로 꼽힐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벤 스미스는 3월2일부터 뉴욕타임스로 출근할 예정이다.
■ "버즈피드의 한 시대가 저물었다" 평가도
이 사실을 최초 보도한 NBC뉴스는 “버즈피드에 한 시대가 저물었다”고 평가했다. 영입 주체인 뉴욕타임스의 평가는 더 현란하다. 28일 벤 스미스 영입을 공식화하는 기사를 통해 “현대 저널리즘의 외형을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 가차없는 혁신가”라고 묘사했다. IT 전문 매체 리코드는 “벤 스미스 이탈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버즈피드 뉴스의 미래가 불확실하게 됐다”고 논평했다. NBC뉴스 역시 비슷한 전망을 했다.
물론 벤 스미스의 ‘버즈피드 시대’가 마냥 화려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다국적 기업들이 환경 파괴의 주범이란 탐사보도로 퓰리처 상 최종 후보에 오르는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트럼프를 둘러싼 의혹을 성급하게 보도했다는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2017년 보도한 ‘스틸 문건(Steele dossier)’ 관련 보도가 대표적이다.
경영 측면에서도 순탄치 만은 않았다. 지난 해 버즈피드는 전체 직원의 15%를 감원했다. 수익을 내기 위한 조치였다. ‘거침 없는 하이킥’을 거듭하면서 무섭게 성장해 온 버즈피드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하지만 버즈피드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한 때 ‘뉴미디어 기대주’로 꼽혔던 많은 매체들도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버즈피드와 함께 ’혁신보고서’에 등장했던 복스의 기세도 예전만 못하다.
‘디지털 네이티브’ 언론사로 명성을 떨쳤던 매셔블, 마이크 같은 곳들은 헐값에 매각됐다. 차세대 주자로 기대를 모았던 쿼츠, 비즈니스인사이더 같은 언론사들도 거대 미디어 그룹에 팔렸다.
반면 전통 매체 대표주자 중 한 곳인 워싱턴포스트는 제프 베조스란 구원자를 만난 덕분에 디지털 변신에 멋지게 성공했다. 더 극적인 변화는 뉴욕타임스가 만들어냈다. ‘혁신보고서’의 반성을 실천으로 옮기면서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냈다.
뉴욕타임스가 1월초 공개한 2019년 실적엔 그런 노력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해 디지털 구독자 100만명을 유치했다. 덕분에 전체 구독자 수는 500만 명을 넘어섰다.
뉴스 구독자만 340만 명이다. 여기에 NYT 요리 구독자 30만 명, 십자말풀이 구독자 60만 명에 이른다. 종이신문 구독자는 90만명 수준이다.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비해 ‘구독 경제’의 새로운 성공 사례로 자리매김했다. 4년 전 4억 달러였던 디지털 매출은 8억 달러로 2배 수준이 됐다.
■ 뉴욕 가는 벤 스미스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벤 스미스의 ‘뉴욕 행’은 이런 상황과 맞물리면서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대표적인 ‘미디어 혁신가’로 꼽히던 인물이 전통 매체로 자리를 옮긴 때문이다. 버즈피드의 쇠퇴와 ‘뉴욕타임스의 귀환’이란 그럴 듯한 평가까지 덧붙여지는 모양새다.
물론 스미스는 이런 평가를 경계한다. 그는 직장 동료들에게 이직 사실을 알리면서 “버즈피드는 영속기업(built to last)이다”고 강조했다. 배너티페어와 인터뷰에선 “지난 해에 많이 힘들긴 했지만, 여전히 강력한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스미스는 왜 버즈피드를 떠나는 걸까? 복스가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복스에 따르면 벤 스미스의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관리 업무 때문에 번아웃된 상태다”고 설명했다. 이젠 오랜 꿈이었던 글 쓰는 일만 하려는 욕구가 강했다는 것이다.
버즈피드를 이끌고 있는 조나 페레티 최고경영자(CEO)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는 복스와 인터뷰에서 “벤 스미스는 글 쓰고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갖길 원했다” 고 말했다. “벤 스미스는 천생 기자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벤 스미스의 ‘뉴욕행’은 예사롭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 이후 달라진 미디어 지형도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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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혁신가’ 벤 스미스는 뉴욕타임스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데이비드 카가 만들었던 미디어 칼럼의 명성을 그대로 이어주는 역할을 할까? 아니면 뉴욕타임스에 ‘디지털 정신’을 접목하는 더 큰 역할까지 수행할까?
지금까지 나온 얘기를 종합하면 전자 쪽에 더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그 동안 벤 스미스가 보여준 행보를 감안하면 단정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그의 뉴욕행이 더 흥미를 끄는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