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결산] 페이스북·삼성 '등판'...스타트업 '부진'

암호화폐 법제화·중앙은행디지털화폐 준비도 이슈

컴퓨팅입력 :2019/12/24 15:07    수정: 2019/12/24 15:33

올해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 길고 지난한 한 해를 보냈다. 상반기에는 삼성, 페이스북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블록체인 사업을 발표하면서 기대감에 부풀었다.

삼성전자는 올 초 2월 갤럭시S10을 공개하며, 암호화폐 지갑인 '삼성 블록체인 월렛'과 월렛을 열기 위한 개인 키(프라이빗키)를 보관하는 '삼성 블록체인 키스토어'를 탑재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블록체인 월렛에는 여러 디앱(DApp·탈중앙화애플리케이션)을 탑재하며 블록체인 생태계 확장에 나섰다.

페이스북은 리브라의 처음 타깃층은 현재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전 세계 17억 명의 금융소외 계층이라고 밝혔다. (사진=리브라 홈페이지)

페이스북은 전 세계 17억 명의 금융 소외 계층을 주 대상으로 한 암호화폐 '리브라' 발행 계획을 발표하며 업계에 큰 기대감을 불러왔다. 전 세계 20억 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한 페이스북이 '리브라'라는 글로벌 화폐를 발행하겠다고 나서자, 전 세계 금융 당국은 견제에 나섰다. 그동안 투기로만 많이 비춰졌던 암호화폐의 이점과 가능성을 돌아보게 한 소식이었다.

하지만 하반기에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의 부진과 암호화폐 시장 침체가 겹치면서 업계는 다소 침울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이와 더불어 국내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인 빗썸과 업비트에서 모두 해킹으로 의심되는 암호화폐 거래 비정상 출금 사고가 발생하면서 업계 신뢰도는 더욱 떨어졌다.

업계의 이 같은 움직임에 각국의 규제 당국은 암호화폐 관련 법제도 정비에 나섰다. 우리나라도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지난 6월 발표한 암호화폐 취급업체(VASP) 관련 권고안을 따르기 위해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 특금법 개정안은 국회 정무위원회에 통과된 후 계류 중이다.

삼성 블록체인 월렛에서 여러 디앱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사진=지디넷코리아)

■ 대기업 주도 성장 뚜렷…페이스북 '리브라' 발행 공식화

상반기 업계에 기대감을 부풀게 했던 큰 소식은 대기업 주도의 블록체인 프로젝트다. 첫 스타트를 끊은 건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MWC2019에서 갤럭시S10을 공개하며, 암호화폐 지갑인 '삼성 블록체인 월렛'을 탑재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이 같은 움직임이 블록체인 대중화를 이끌 수 있다며 희망적으로 바라봤다.

희망적인 소식은 연이어 나왔다. 페이스북이 암호화폐 '리브라' 발행 계획을 공개한 것. 페이스북은 우버, 비자, 이베이, 페이팔 등 27개의 회원사와 함께 리브라 협회를 구성해 지난 6월 은행 계좌가 없는 17억 명의 금융 소외 계층을 주 대상으로 한 암호화폐 '리브라' 출시 계획을 밝혔다.

세계 최대 SNS이자 초국가 기업인 페이스북의 암호화폐 발행 소식은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리브라는 각국의 규제기관의 압박 속에 당초 예정됐던 내년 출시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최근에는 비자, 이베이, 페이팔, 마스터카드 등 7개의 창립회원사가 리브라 협회를 탈퇴하기도 했다.

그라운드X가 자체 개발하는 암호화폐 지갑 '클립'이 내년 상반기 카카오톡에 탑재돼 출시된다. (사진=지디넷코리아)

라인과 카카오도 암호화폐 관련 사업에 적극 뛰어들었다. 라인은 지난 9월 일본 금융청에서 암호화폐 거래소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일본 이용자를 위한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맥스를 설립했다. 이로써 라인은 비트박스와 비트맥스, 두 개의 암호화폐 거래소를 운영하게 됐다. 라인은 내년 상반기 라인 블록체인 플랫폼을 출시해, 라인의 자체 암호화폐 '링크'의 활용처도 확대할 계획이다.

카카오는 자사의 블록체인 기술 계열사 그라운드X를 통해 국내 블록체인 생태계 선점에 나섰다. 그라운드X는 지난 6월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 메인넷을 정식 출시했다. 클레이튼은 페이스북의 리브라와 비슷한 구조로, LG전자, 넷마블, 셀트리온 등 30여 개의 아시아 거점 기업으로 구성된 거버넌스 카운슬을 구성했다. 그라운드X는 내년 상반기 자체 개발한 암호화폐 지갑 '클립'을 카카오톡에 탑재해 출시할 예정이다. 그라운드X는 카카오톡을 통해 출시되는 클립이 블록체인 대중화를 이끈다는 방침이다.

지난달 업비트는 약 586억원 규모의 이더리움이 알 수 없는 지갑으로 전송되는 이상 거래가 발생했다.

■ 국내 암호화폐 업체 '침울'…대형 거래소 잇따른 보안 사고

올해 국내 대기업의 블록체인 관련 사업이 활발해지면서 블록체인.암호화폐 스타트업들도 이들과 함께 사업을 추진하면서 상반기에 많은 관심과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상반기의 뜨거웠던 기대와 달리 디앱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상용화된 서비스가 아직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공개(ICO)로 많은 투자 금액을 모금했던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은 이제 '쓸만한' 서비스를 보여줘야 했지만, 아직 그 단계까지 미치지 못하고 코인 가격이 하락하면서 암호화폐 시장은 다소 침체됐다.

특히, 올해 국내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 두 곳에서 보안 사고가 잇달아 터지면서 업계 신뢰도는 또 한 번 타격을 받았다. 지난 3월 빗썸에서는 약 215억 원에 달하는 암호화폐가 비정상적으로 출금되는 사고가 벌어졌으며, 지난달에는 업비트가 약 586억 원 규모의 이더리움이 알 수 없는 지갑으로 전송되는 이상 거래 사고가 발생했다.

두 거래소 모두 손실한 암호화폐를 거래소 자산으로 충당해 이용자의 자산에는 피해가 없었지만, 아직 두 거래소 모두 보안 사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또 다른 보안 사고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또 다른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빈은 내부 직원이 암호화폐 보관 계정에 접근할 수 있는 개인 키(프라이빗키)를 분실하면서 60억 원 규모의 암호화폐를 찾을 수 없게 됐고, 결국 지난 11월 파산 선고를 받았다.

이 같은 거래소의 허술한 보안에 업계에서는 암호화폐 관련 사업자에 더욱 강력한 보안 및 자금세탁방지 시스템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금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사진=PIXABAY)

■ 암호화폐 거래소 법제화 추진…특금법 개정안 정무위 통과

암호화폐 거래소 법제화와 관련해 각국 규제당국의 움직임은 한 층 활발해졌다. FATF는 지난 6월 가상자산 취급업소(VASP)에 기존 금융권에 준하는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하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권고안에 따르면 ▲암호화폐 거래소를 포함한 가상자산 취급업소는 법적 소재지에 신고·등록을 해야 하며 ▲가상자산 송금의 경우, 송금·수취기관 모두 관련 정보를 수집·보유하고 권한 당국에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FATF 회원국들은 내년 6월까지는 해당 권고안을 따라야 하며, FATF 회원국인 우리나라도 내년 6월 전까진 해당 권고안을 반영한 국내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FATF 권고안 내용을 반영한 특금법 개정안이 국회에 올라가 있다. 특금법 개정안에 따르면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해야 하며, 실명확인 계좌를 받지 못했거나 정보보호관리체계(ISMS)인증을 획득하지 못한 사업자는 신고가 거부될 수 있다. 미신고 영업 시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현재 특금법 개정안은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한 상태며,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남겨놓고 있다. 하지만 제20대 정기국회가 지난 10일 마무리되면서, 특금법 개정안이 제20대 국회 내에서 통과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내년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는 4월 전까지 국회 통과가 되지 않으면, 특금법 개정안은 입법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한다.

중국 인민은행은 디지털화폐전자결제(DCEP)로 불리는 디지털화폐를 곧 발행할 전망이다. (이미지=픽사베이)

■ 각국 디지털화폐 발행에 관심…중국, 디지털화폐 시범 운영 임박

한편, 페이스북과 같은 민간기업이 자체 화폐를 발행한다고 나서자 각국 중앙은행은 디지털 화폐(CBDC) 개발을 서두르는 모양새다. 아직 디지털화폐 발행 일시를 확실히 발표한 국가는 없지만, 많은 나라가 연구 개발에 착수하며 시범 운영을 준비 중이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2014년부터 디지털화폐를 연구해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중국 인민은행은 디지털화폐전자결제(DCEP)로 불리는 디지털화폐를 곧 발행할 전망이다. 중국 경제지에 따르면 중국 디지털화폐는 중국 선전과 쑤저우에 시범 운영될 예정이다. 또 알리바바, 텐센트, 유니온페이 등이 중국 디지털화폐를 취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상하이증권에 따르면 전 인민은행 지불결제 총괄은 중국이 국가 디지털화폐를 발행하는 이유는 화폐 주권과 중국 법정화폐 위원화를 보호하기 위한 사전대비라고 밝힌 바 있다.

최근 프랑스 중앙은행인 프랑스은행도 디지털화폐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프랑스는 2020년 1분기 이전에 디지털화폐 프로젝트를 시작할 예정이다. 프랑수아 빌루아 드 갈로 프랑스은행 총재는 페이스북 등이 발행하는 새로운 화폐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디지털화폐 프로젝트를 빠르게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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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중앙은행도 디지털화폐 발행을 고려하고 있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는 디지털화폐 발행이 즉시 실현될 수는 없지만 그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으며, 디지털화폐의 이점을 연구할 것을 권고했다.

한국은행도 최근 디지털화폐에 대한 기조가 변했다. 올 초까지만 해도 한국은행은 디지털화폐 발행 필요성이 적다며, 디지털화폐 발행에 다소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최근 한국은행은 디지털화폐 기술 개발에 착수했으며, 디지털화폐 테스트를 준비 중이다. 최근 홍경식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장은 현재 한국은행의 입장은 프랑스 은행과 비슷하며, 디지털화폐는 중국처럼 특정 지역에서 먼저 시범 운영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