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현대중공업에 시정명령·과징금 208억원 철퇴

‘선시공 후계약’ ‘부당 대금결정’ 등 불공정 하도급 관행에 엄중조치

디지털경제입력 :2019/12/18 12:52    수정: 2019/12/18 13:10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전경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전경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중공업이 하도급업체들에 선박·해양플랜트·엔진 제조를 위탁하면서 사전에 계약서면을 발급하지 않고 하도급대금을 부당하게 결정한 행위에 대해 과징금 208억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18일 밝혔다. 공정위는 같은 위반행위에 대해 한국조선해양에게 시정명령을 부과하고 법인을 고발조치했다.

공정위는 또 현장조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한 행위와 관련해서 한국조선해양에 과태료 1억원, 소속직원 2명에게 2천500만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한국조선해양의 불공정하도급거래 사건은 공정위가 제조원가와 하도급대금을 비교해서 부당한 하도급대금이 있었다고 판단한 최초 사례다.

한국조선해양은 지난 6월 기존 현대중공업이 사명을 변경하면서 지주회사가 됐고 분할신설회사로 동일한 이름의 현대중공업을 설립해 기존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이 사건 과징금 부과 대상은 분할신설회사 현대중공업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회사분할이 이루어져 과징금은 분할신설회사에 부과할 수 있는 근거규정(공정거래법 제55조의3 제3항)에 따라 현대중공업에 부과하고 나머지 제재조치는 존속회사인 한국조선해양에 부과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조선해양(옛 현대중공업)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207개 사내하도급업체에 4만8천529건의 선박 및 해양플랜트 제조 작업을 위탁하면서 작업 내용 및 하도급대금 등 주요 사항을 기재한 계약서를 작업이 시작된 후에 발급했다.

한국조선해양은 작업이 시작된 후 짧게는 1일, 최대 416일이 지난 후에 계약서를 발급했다. 4만8천529건의 평균 지연일은 9.43일이었다.

이로 인해 하도급업체는 구체적인 작업 및 대금에 대해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우선 작업을 진행한 후에 한국조선해양이 사후에 일방적으로 정한 대금을 받아들여야 하는 불리한 지위에 놓였다.

한국조선해양은 일방적으로 제조원가보다 낮은 단가로 하도급대금을 결정하기도 했다. 한국조선해양은 2015년 12월 선박엔진 관련 부품을 납품하는 사외하도급업체들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어 2016년 상반기에 일률적으로 10% 단가 인하를 해줄 것을 요청했고 단가 인하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강제적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압박했다.

한국조선해양은 간담회 이후 이뤄진 단가계약 갱신 과정에서 하도급업체들의 단가를 일률적으로 10% 인하했고 2016년 상반기 9만여 건의 발주 내역에서 48개 하도급업체를 대상으로 51억원의 하도급대금을 인하한 사실이 확인됐다.

48개 하도급업체는 밸브, 파이프, 엔진블록, 패널 등 납품하는 품목이 상이하고 원자재, 거래 규모, 경영상황 등도 각각 다르며 일률적인 비율로 단가를 인하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조선해양의 이 같은 행위는 정당한 사유 없이 일률적인 비율로 단가를 인하해 하도급대금을 결정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하도급법의 규정을 위반했다.

일방적으로 제조원가보다 낮은 단가로 하도급대금을 결정한 혐의도 포함됐다. 한국조선해양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사내하도급업체에 하도급대금을 결정하지 않은 채 1천785건의 추가공사 작업을 위탁하고 작업이 진행된 이후에 사내하도급업체의 제조원가보다 낮은 수준으로 하도급대금을 결정했다.

작업 현장에서 추가공사가 발생하면 사내하도급업체에 직접 작업을 지시하고 확인하는 한국조선해양의 생산부서가 실제 작업에 소요되는 ‘공수’를 바탕으로 추가공수를 산정해 예산부서에 예산을 요청했다.

그러나 한국조선해양 예산부서는 합리적·객관적 삭감 근거 없이 생산부서가 요청한 공수를 삭감했고 이 과정에서 작업을 직접 수행하고 하도급대금을 받을 사내하도급업체와의 협의절차는 없었다.

이 사건 공수계약의 하도급대금은 ‘공수’와 ‘계약단가’를 곱해서 결정되는데 작업에 소요되는 ‘공수’는 한국조선해양이 임의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반면, ‘계약단가’는 계약 기간 동안 고정된 값이다.

한국조선해양은 공수를 임의로 적게 인정해주는 방법을 통해 사내하도급업체들에 지급할 하도급대금을 삭감했다.

공정위는 사내하도급업체의 거래 특성상 제조원가의 대부분이 인건비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감안, 사내협력사들의 인건비 구조·고용노동부 실태조사 자료·실제 채용 공고 사례 등을 바탕으로 작업에 소요되는 최소한의 ‘1공수 당 원가’ 기준을 판단했다.

한국조선해양의 공수 삭감 과정에서 1천785건의 추가공사 하도급대금이 하도급업체의 최소한의 제조원가 수준보다 낮게 결정됐다.

한국조선해양 및 소속 직원들은 2018년 10월에 진행된 공정위 현장조사와 관련, 조직적으로 조사대상 부서의 273개 저장장치(HDD) 및 101대 컴퓨터(PC)를 교체했으며 관련 중요 자료들을 사내망 공유 폴더 및 외장 저장장치에 은닉했다.

공정위는 현장조사 과정에서 조사대상자의 저장장치가 교체된 사실과 중요 자료를 별도로 보관한 외부저장장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 같은 행위에 조사를 방해할 목적이 있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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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는 교체된 저장장치 및 자료 은닉용으로 사용한 외부저장장치 제출을 요구하였으나 한국조선해양은 제출을 거부하고 이를 은닉 또는 폐기했다.

윤수현 공정위 기업거래정책국장은 “이번 조치는 장기간 문제로 지적돼 온 조선업계의 관행적인 불공정 행위에 제동을 걸었다는데 의의가 있다”며 “특히 조선업계에서는 ‘선시공 후계약’ 방식으로 사전에 하도급업체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작업을 시작한 후에 계약서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엄중히 조치한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