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외국산 PC와 소프트웨어 추방이란 회심의 카드를 꺼냈다. 내년부터 3년 내 정부 및 공공기관의 모든 PC와 소프트웨어를 중국산으로 대체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 소식을 최초 보도한 것은 파이낸셜타임스였다. 파이낸셜타임스는 9일(현지시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올초 은밀하게 정부 기관에서 사용하고 있는 모든 PC와 소프트웨어를 3년 내에 중국산으로 교체하라는 명령을 내려 보냈다고 보도했다.
운영체제 뿐 아니라 프로세서 칩, 하드드라이브 등 모든 부품들까지 교체 대상이다.
■ 서방의존 탈피 장기 전략 일환…미국 제재 때문에 시기 앞당겼을 수도
구체적인 실행 방안도 나와 있다. 첫 해인 2020년에는 전체 제품의 30%를 중국산으로 교체한다. 이듬해인 2021년 50%를 대체한 뒤 마지막 연도인 2022년에 남은 20%를 마저 정리한다는 계획이다.
전 세계 주요 외신들도 일제히 파이낸셜타임스를 인용 보도하면서 중국 정부의 강경 대응에 관심을 보였다.
그렇다면 중국 정부는 왜 ‘외국산 PC 전면 교체’란 카드를 꺼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미국 정부의 압박이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지역 통신사들이 정부 기금로 중국 통신장비를 구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을 발령했다. 화웨이, ZTE 등 중국 통신장비 도입을 사실상 금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에 앞서 중국 상무부 역시 화웨이 같은 중국 업체들과 거래를 할 때는 사전 허가를 받도록 했다. 이 조치로 중국업체들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의 운영체제 사용이 힘들게 됐다.
그렇다면 중국 정부의 외국산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사용금지 조치도 미국의 공세에 대한 보복으로 나온 것일까?
물론 화웨이 제재가 중국 정부의 이번 행보에 기폭제가 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중국 정부가 이전부터 그려 온 큰 그림이 구체화된 것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해 보인다.
중국은 2017년 사이버보안법을 제정하면서 외국산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이 법은 중국에서 영업하는 모든 IT 기업들은 데이터를 반드시 중국 내에 보관하도록 했다. 또 국 정부가 요구하면 데이터 암호 해독 정보를 언제든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중국은 최근 반도체, 인공지능 등 첨단 영역에서 미국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오히려 중국 정부가 오래 전부터 추진해온 '서방 기술 의존 탈피' 전략이 구체화된 것으로 봐야 한다.
■ 이번 조치는 공공물량만 해당…소비자 시장 영향은 없어
중국의 이번 조치는 파장이 얼마나 클까? 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까?
일단 이번 조치는 정부 및 공공기관에만 적용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물량이 2천만~3천만대 가량일 것으로 추산했다.
이번 조치로 HP를 비롯해 델, 인텔, AMD 같은 미국 업체들이 직접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MS도 영향권 내에 있다. MS는 지난 2017년 중국 정부용 윈도 버전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적용될 경우 MS 윈도도 제거 대상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중국 PC업체인 레노버 역시 이번 조치에서 자유롭지 않다. 레노버 PC를 구동하는 핵심 부품들도 대부분 외국 기업들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레노버 PC에는 인텔 프로세서와 삼성의 메모리가 탑재돼 있다. 이 부품들도 모두 자국산으로 교체해야 한다.
물론 중국 내에 대체제는 많이 있다. 워드, 엑셀 같은 오피스 프로그램은 킹소프트가 이미 생산하고 있다. 이 회사의 'WPS 오피스'는 중국 내에서 조금씩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MS 오피스와도 호환되는 이 제품은 '라이터' '프레젠테이터' '스프레드시트' 3종류로 구성돼 있다. 각각 워드, 파워포인트, 엑셀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
프로세서는 SMIC란 업체가 생산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조치가 적용될 경우 이 회사 제품이 적극 채용될 가능성이 많다. 다만 아직은 인텔 같은 다른 경쟁사들에 비해 기술 수준이 많이 뒤져 있다고 비즈니스인사이더가 전했다.
더 큰 문제는 운영체제다. MS 윈도의 시장 장악력이 워낙 막강하기 때문이다. 외산 소프트웨어 금지 조치가 적용될 경우 중국산 OS인 기린 등이 중용될 전망이다. 리눅스 우분투 기반인 기린은 정부가 적극 밀고 있는 자체 OS다.
이 정도 진용으론 당장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긴 쉽지 않다. 하지만 특수 영역인 정부 및 공공 PC라면 얘기가 다르다. 업무 영역에 따라 단계적으로 대체해 나갈 경우 큰 무리없이 중국산으로 바꿔나갈 수도 있다.
다만 중국 정부의 이번 조치가 당장 미칠 파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자 시장에는 곧바로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 소비자 시장 확대 적용에도 성공할까
결국 관건은 ‘확대 적용 가능성’이다. 3년 동안 공공기관에서 외국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다 걷어내겠다는 이번 정책은 ‘테스트베드’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3년 동안 성공적으로 적용될 경우 전체 시장으로 확대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따라서 '3-5-2 전략'이 끝나는 3년 뒤가 진짜 승부처라고 봐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중국은 '방대한 수요'와 강력한 정부란 두 가지 장점을 갖고 있다. 운영체제 같은 플랫폼은 기술력 못지 않게 수요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내수 시장만 제대로 공략해도 그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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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중국은 서방 국가들과 달리 정부의 힘이 막강한 편이다. 개발 독재 형식으로 밀어부칠 힘이 있다. 따라서 3년의 테스트베드가 끝난 뒤 실제 적용 단계에 이르게 되면 의외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지금은 조금 어설퍼 보이는 중국 정부의 'PC 및 소프트웨어 국산화' 전략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