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 사태, 서비스 품질·요금 이슈가 핵심

[이슈진단+]페북이 불 당긴 글로벌 대형CP 규제①

방송/통신입력 :2019/09/27 11:26    수정: 2019/09/30 08:54

방송통신위원회와 페이스북의 소송 결과를 계기로 글로벌 대형 콘텐츠 사업자(CP)의 이용자 이익침해 행위에 대한 규제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특히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여야 의원을 막론하고 법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며 입법을 서두를 태세다. 따라서 오는 10월2일부터 열리는 국정감사 이후에는 계류된 관련 5개 법안의 병합심사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축에서는 이 사태의 빌미가 된 상호접속제도에 대한 개선 방안이 올 연말까지 마련된다. ISP(인터넷서비스사업자)와 CP간 첨예하게 맞서는 사안이어서 정부는 제도반 운영과 점검을 통해 제도 개선 작업을 마무리 짓는다는 계획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용자보호’와 ‘상호접속제도’란 말이 낯설고 어렵지만, 향후 인터넷 서비스 품질과 요금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칠 내용이어서 상세히 짚어본다.[편집자주]

페이스북 (사진=픽사베이)

지난 8월 과징금 처분을 놓고 방송통신위원회와 페이스북이 공방을 벌인 1심 소송에서 법원은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줬다. 세계적으로 대형 글로벌 CP의 네트워크 무임승차 논란이 벌어지는 와중이어서 세기의 판결이라며 관련 업계의 관심이 높았다.

특히 통신인터넷 업계에서는 판결 결과가 ISP와 CP간 망 이용대가를 결정짓는 상호접속제도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제각각 주판알을 튕기며 결과를 지켜봤다.

이 판결이 네트워크 무임승차나 상호접속제도와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초점은 페이스북의 이용자 이익침해 행위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페이스북이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가입자의 접속 지연이 있을 줄 뻔히 알면서 접속 경로를 바꿨느냐는 게 판결의 핵심 쟁점 사항이다.

방통위는 이용자 이익침해 행위가 있었다고 보고 3억9천만원의 과징금 처분을 했지만, 행정법원은 페이스북의 접속 경로 변경행위로 인해 ‘접속 지연’은 있었지만 이것이 ‘이용 제한’이나 ‘이용자 이익침해 행위’는 아니라고 판결했다. 이렇게 1라운드는 페이스북의 승리로 끝났다.

인터넷 업계에서는 판결이 끝나자마자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상호접속제도로 불거진 일이라며 법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외 사업자 간 역차별에 대한 논란도 다시 불거졌다.

하지만 이는 ISP·CP, 국내CP·해외CP 간 이슈일 뿐 페북 사태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소비자 입장에서 이 판결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 피해는 있는데 책임질 곳은 없다

우선 대형 글로벌 CP가 서비스 지연이나 접속 불능 사태를 일으켰을 때 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의 문제다. 분명히 접속 불능과 지연으로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가입자의 불편이 발생했는데 페북의 승소로 이에 대한 책임을 물을 곳이 없게 됐다.

나아가 인터넷 서비스 환경 변화가 발생한 만큼 과거 기간통신사 위주의 규제를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이슈도 함께 제기된다. 이용자 보호를 위해서는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여기에는 페이스북을 비롯해 유튜브, 넷플릭스 등 글로벌 대형 CP에 대해 세금도, 망 이용대가도 강제할 수 없는 현행 법체계 미비점에 대한 자성의 의미도 포함됐다.

특히, 국회 과방위에는 해외 대형 CP 규제를 위해 지난해와 올해 5건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여전히 계류 중이다.

김성태 의원은 해외 사업자가 부가통신역무를 제공할 경우 국내 지정대리인을 지정해 등록하고 법률에 규정한 각종 규정들을 대리해 지정받도록 했으며, 변재일 의원은 일일 평균 이용자 수가 일정 규모 이상인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 대해 국내에 서버를 설치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법안을 냈다.

김경진 의원은 트래픽 양 등이 일정기준 이상인 부가통신사업자가 안정적이고 일정한 서비스 품질을 유지토록 하는 안을, 유민봉 의원은 트래픽 양이 일정기준 이상인 부가통신사업자에게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관리적, 경제적, 기술적 조치 의무를 부과하는 안을, 박선숙 의원은 이용자 수와 매출액 등이 일정 기준에 해당하는 해외 사업자가 이용자 보호, 통계보고 등을 할 수 있도록 대리인을 지정하는 안을 내놨다.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관련 토론회에서 과방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법체계 미비점을 지적하면서 제도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반성의 목소리를 낸 것도 이 때문이다.

국회 과방위원장인 노웅래 의원은 “법원이 페이스북의 서비스 이용지연, 불편 초래 사실을 인정했으나 이를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며 방통위의 과징금 및 시정이행 처분 취소를 결정했다”며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할 바람직한 제도가 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 지하철 와이파이보다 느렸는데 이용자 저해 아니다

특히 법원이 국제기준을 예로 들며 페이스북의 품질 저하 정도를 이용자 이익침해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지만 국내 네트워크 상황을 감안하면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이다.

법원은 ▲시스코사의 비디오 서비스 품질에 대한 튜토리얼 ▲유럽전기통신표준협회(ETSI)의 표준문서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IP 기반 서비스를 위한 네트워크 성능 목표 등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이를 이용자 이익침해 행위로 단정할 수 없다고 결론 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시각은 달랐다.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전문위원은 “페북 사건에 제출된 일평균 응답속도가 75ms였다”며 “2017년 과기정통부의 품질평가 보고서에는 LTE는 35.35ms, 와이파이 19.19ms, 3G의 경우 77.88의 지연시간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이어, “75ms의 응답속도가 국제기준에는 충족할 수 있으나 국내 이용자 입장에서는 약 2배 이상의 지연이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향후 글로벌 서비스 사업자의 국내 이용자 이익침해와 관련해서는 국내 기준이 명확하게 정립될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은 “법원이 국제기준을 현저성의 주요 판단근거로 내세웠는데 각국의 인프라 환경, 국내 상황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해석원칙 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독단적 판단으로 매우 부적절하다”면서 “해외의 낮은 기준으로 국내 이용자가 겪은 접속지연이 현저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은 국내 인터넷 환경에 대한 이해부족”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과기정통부의 통신서비스 품질평가 자료에 따르면, 지하철 와이파이의 평균 지연시간은 52.43ms로 페북 사태 때의 75ms는 통상 이용자들이 느린 속도를 이유로 사용하지 않는 지하철 와이파이보다도 못한 품질이었다.

■ 페북 사건, 요금과 관련 있다

판결문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행정법원에서 방통위와 맞붙은 페이스북은 페이스북코리아가 아니라 ‘페이스북아일랜드리미티드’다. 합법적으로 세금을 줄이기 위해 해외 대형 CP들이 아일랜드와 같은 국가로 소득을 집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국회에 발의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국내 서버 설치를 의무화한 이유도 과세 근거를 만들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해외 대형 CP가 이용자 보호책임과 망 이용대가를 회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성격이 짙다.

국내에 서버 설치가 의무화되면 망 이용대가의 지불 근거가 명확해 진다. 이 경우 해외 CP가 게시하고 있는 불법, 유해정보에 대한 정부의 규제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승소를 계기로 되레 2016년 개정된 국내 상호접속제도가 과다한 망 이용대가를 야기해 벌어진 일이라며 상호접속고시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2016년 개정된 전기통신사업법의 상호접속고시는 ISP간 주고받는 데이터 트래픽에 대해 무정산에서 발생되는 트래픽만큼 상호정산 하는 것으로 바꿨다.

상호접속고시의 내용은 복잡하지만 취지는 간단하다. ISP의 네트워크 사용료를 CP와 이용자에게 균등 배분토록 해 이용자 부담을 낮춰주자는 것이다.

ISP의 네트워크 사용료는 크게 이용자가 부담하는 요금과 CP의 망 이용대가로 나뉜다. 고시 개정 이전에는 이용자의 요금부담 비중이 높았다. ISP간 트래픽에 대한 정산을 하지 않다보니 서로 CP를 유치하기 위해 덤핑 경쟁을 했고 여기서 모자라는 만큼을 이용자가 부담하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많은 트래픽을 크게 유발시키는 해외 대형 CP들의 경우에는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즉, 개정된 고시는 이러한 해외 대형 CP의 망 이용대가 근거를 만들어 부담토록 함으로써 국내 CP의 망 이용대가 부담과 이용자의 요금부담을 동시에 낮추겠다는 정책 목표가 담겼다.

하지만 법원이 페이스북에 이용자 저해가 없었다는 면죄부를 주면서 판결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상호접속고시의 정책 목표마저 공격받는 상황이 됐다.

김남철 과기정통부 경쟁정책과장은 “페이스북 판결은 이용자보호가 주된 이슈로 망 이용대가에 대한 것은 부차적 이슈”라면서 “과다한 망 이용대가로 인해 발생된 문제라는 페이스북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상호접속제도는 해외 CP에게도 동등한 대가를 지불하도록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겠다는 의미가 있다”며 “연말까지 국내 CP들의 부담이 증가했는지, ISP의 불공정행위가 있었는지를 점검해 상호접속제도가 유의미하도록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연재 순서>

①페북 사태, 서비스 품질요금 이슈가 핵심

②상호접속료 중소CP 부담 늘렸나

관련기사

③이용자보호 회피하고 접속료 꼼수 핀 페이스북

④페북 판결 2심서 뒤집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