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 판결' 후폭풍…망이용대가 개선 요구 커졌다

핵심은 상호접속료 개선…과기정통부 대응 주목

방송/통신입력 :2019/08/27 17:44    수정: 2019/08/28 15:00

방송통신위원회와 페이스북 간의 세기의 소송을 계기로 통신사 간 상호접속료 문제가 또 다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소송 승패와 별도로 이번 소송의 발단이 된 망 이용대가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2일 페이스북이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방통위는 지난해 5월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임의 변경 조치로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가입자들이 서비스 이용에 차질을 빚은 데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3억9천600만원을 부과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전기통신서비스의 이용을 제한하는 행위’로 판단한 것이다.

이 조치에 대해 페이스북은 곧바로 행정소송을 냈고 1년3개월여 만에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 법원은 왜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줬나

법원이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 준 이유는 간단하다. 방통위가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 조치를 ‘이용을 제한하는 행위’로 판단한 것이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행위로 인해 서비스 ‘이용에 지연이나 불편’을 초래했지만 이를 ‘이용의 제한’이나 ‘이용자들의 이익을 현저히 해치는 방식’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KT 목동 IDC를 통해 트랜짓 방식으로 접속했던 SK브로드밴드 가입자들은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 조치 이후 국제망을 통해 홍콩 IDC에 피어링 방식으로 접속하게 됐다. 법원은 이 조치로 지연이나 불편은 발생하긴 했지만, 이용을 막은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사진=행정법원 판결문)

특히 행정법원은 콘텐츠 사업자(CP)에게 서비스 품질과 관련해 법적 규제의 폭을 넓히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판결문에는 "CP의 법적 책임에 관해 명확한 규정이 없는 이상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즉, 통신서비스 품질에 대해서는 최저보장속도 등의 약관 규정을 둔 ISP(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CP에게는 책임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또 "ISP가 이용자들에 대해 최저속도 보장 약관을 두는 경우는 흔하지만 CP가 이용자들에 대해 최저속도 보장 약관을 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적시했다.

특히, 법원은 방통위가 제시한 응답속도와 응답속도 변동 평균값, 민원건수, 트래픽 양 등을 기준으로 삼아 과징금 처분을 했지만, 이 같은 기준은 이 사건 처분을 뒷받침할 객관적이고 실증적 근거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법원은 ▲시스코사의 비디오 서비스 품질에 대한 튜토리얼 ▲유럽전기통신표준협회(ETSI)의 표준문서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IP 기반 서비스를 위한 네트워크 성능 목표 등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이용자 이익을 해치는 방식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더불어 객관적, 실증적 근거에 의해 구체적,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하며 이에 대한 적법성의 증명책임도 방통위에 있다고 못 박았다.

복잡한 듯 보이지만 판결 내용을 요약하면 간단하다. "페이스북 서비스 속도가 조금 느려지긴 했지만 과징금을 부과할 정도는 아니다"고 정리할 수 있다.

■ 페이스북 사태 일으킨 접속료 정책은 무엇?

표면상으로 이번 소송은 방통위와 페이스북 간의 공방이다. 하지만 그 연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상호접속료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상호접속료란 서로 다른 통신사 가입자 간 통화가 발생했을 때 발신사업자가 착신사업자에게 지불하는 망 이용대가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KT 서비스를 이용하는 A가입자가 SK텔레콤 B가입자에게 전화를 건다고 가정해보자. 이 때 A가입자 역시 SK텔레콤 망을 사용하게 된다. 따라서 접속료를 내야 하지만 SK텔레콤이 A가입자에게 접속료를 받을 순 없다. 그래서 KT가 자사 가입자를 대신해 SK텔레콤에 대신 지불하는 게 접속료다. 이를 법제도화 한 게 전기통신사업법의 상호접속고시다.

정부가 이런 제도를 만든 것은 통신사들이 망 투자를 하도록 유인하고 사업자 간 경쟁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다. 또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도록 접속료를 산정하고 선후발사업자 간 경쟁력 격차를 접속료로 조정하는 비대칭규제를 해왔다.

가입자를 많이 보유할수록 접속료 정산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망 투자를 해 서비스 품질을 높이도록 유도하면서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도록 것이다. 다만, 가입자가 적은 후발사업자가 정산에서 불리하기 때문에 더 많은 접속료를 받도록 했다.

10년 전인 2008년에 후발사업자인 LG유플러스는 SK텔레콤에 분당 33.41원의 접속료를 지불했지만 SK텔레콤은 39.09원을 지불했다.

하지만 유무선 합병으로 SK군(SK텔레콤-SK브로드밴드-SK텔링크), KT, LG군(LG텔레콤-LG데이콤-LG파워콤) 등으로 재편되면서 경쟁력의 차이가 좁혀졌고, 음성시장이 점차 데이터시장으로 전이되면서 2017년부터 접속료 차등정책을 폐지했다.

정부는 또 매년 통신서비스의 원가로 작용하는 접속료를 인하했다. 2011년 통신 3사간 주고받는 접속료 시장이 2조4천647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2016년에는 1조5천679억원으로 약 1조원 가량 줄었다.

또 음성에서 데이터로 변화하는 시장 흐름에 맞춰 음성 접속료 대신 데이터 접속료 정책으로 2016년 말 데이터 접속료 정산체계를 도입했다.

■ 페이스북 판결 이후 ‘망 이용대가’ 개선 요구 봇물

판결 직후 CP들과 페이스북이 연이어 성명과 설명회를 열어 ‘망 비용 구조’를 문제 삼고 나선 것도 이런 배경과 관련이 있다.

물론 직접적인 원인은 2016년 말 도입된 데이터 접속료 정산체계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2000년대 초 초고속인터넷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KT와 LG데이콤(현 LG유플러스)이 후발사업자인 하나로텔레콤의 접속을 거부할 수 없도록 데이터 시장에도 2005년 상호접속의무라는 것이 만들어졌다”라며 “하지만 당시에는 CP들의 트래픽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접속료를 통신사 간 정산하지 않았는데 매년 트래픽이 폭증하면서 2016년 말 데이터에도 접속료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그동안 페이스북은 KT의 목동 IDC에 캐시서버를 구축했다. 이후 SK텔레콤,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가입자들은 페이스북에 접속할 때 KT를 통해 서비스를 이용해 왔다.

하지만 2016년 말 데이터 접속료 체계가 바뀌면서 KT가 SK텔레콤,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에 지불해야 할 접속료가 발생했다. 그러자 KT는 재계약 시점에 이 접속료 만큼의 금액을 페이스북에 요구했다. 페이스북은 이를 회피하기 위해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 가입자의 접속경로를 홍콩으로 변경했고 이 때 트래픽 병목현상이 발생하면서 서비스 지연이 일어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페이스북의 국내 일일 접속자 수가 1천200만명에 달하고 캐시서버를 설치하는 것 자체가 해외망을 통해 접속하는 것보다 빠르게 접속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라면서 “KT가 밝힌 것처럼 페이스북이 접속경로를 변경했고 이로 인한 접속 지연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걸 예측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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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페이스북이 1심에서 이용자 서비스 제한이나 현저한 이익침해 행위가 발생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받아 승소했지만 이는 접속료 정책과는 별건이고 이미 통신사들은 이 제도 아래서 접속료 정산을 하고 있다”면서 “또 이용자 이익침해 행위에 대한 규제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접속료 정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담당하고 있는데 이를 싸잡아 망 비용 과다로 얘기하는 것은 통신사, 방통위, 과기정통부가 한 몸이라고 비판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그동안 국내 CP에 비해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은 망 이용대가를 거의 지불하지 않았고 망 이용대가가 과다하다는 것에 대해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며 “인터넷을 기반으로 사업을 하는 CP들이 매출과 이익에서 망 이용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정확히 어느 정도나 되는지 밝히지 않고 있고 구글이나 페이스북은 조세 회피란 말이 나올 정도로 모든 것이 베일에 쌓여있는데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