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 손정의 회장이 한국 기업인들을 초청해 만찬을 진행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기업인들이 자리한 이날 만찬에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도 참석해 눈길을 모았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2006년에 일본 지사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손정의 회장과 제휴를 맺은 적이 있다. 그럼에도 이날 만찬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게임산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AI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해 손정의 회장이 김택진 대표를 초청했다는 점이다.
30년 안에 AI가 인류의 지능과 능력을 뛰어넘고 모든 산업을 바꿀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을 정도로 AI 산업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는 손정의 회장이 엔씨소프트를 주목한 이유는 명확하다. 엔씨소프트가 게임개발에 국한되지 않고 AI 연구 및 개발 역량까지 보유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아이온, 블레이드앤소울 등 다양한 MMORPG를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중에 AI 분야 연구와 개발에 집중했다.
지난 2011년 2월에 AI TF를 구성해 AI 개발에 나선 엔씨소프트는 현재 AI 연구개발 조직으로 AI 센터와 NLP(자연어처리) 센터 산하 5개 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규모 역시 국내 AI 연구 센터 중에 손꼽히는 수준이다. 엔씨소프트 AI 센터와 NLP 센터의 전문 연구인력은 150여명이며 국내 AI 연구 분야 대학원 연구실 13곳과 연구협력도 맺고 있다.
AI가 실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분야를 두루 아우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엔씨소프트가 AI 분야에서 연구 중인 분야는 게임AI, 스피치, 비전, 언어, 지식 등 총 다섯 부문이다. 게임 내 NPC의 AI를 개발하는 것은 물론 사람의 대화를 인식하거나 실제 사람처럼 문장을 읽어주는 기능, 이미지를 인식하고 분류하는 기능과 데이터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추론하거나 긴 문장을 요약하는 기능을 개발 중이다.
자체 연구에 그치지 않고 자사의 연구 내용을 AI 관련 연구진과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해 국내 AI산업 전반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부터 엔씨 AI데이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1월 열린 엔씨 AI데이에는 서울대, 카이스트, 연세대, 고려대 등 13개 대학, 30개 AI 연구실의 연구진 등 총 360여명이 참석해 토론을 진행했을 정도로 엔씨소프트는 AI 분야에서 입지를 다졌다.
자체 서비스 중인 게임과 AI 기술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도 엔씨소프트의 AI 연구개발의 특징이다. 엔씨소프트가 서비스 중인 MMORPG를 즐기는 이용자들의 행동 패턴은 AI 연구에 필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AI 연구에 빅데이터가 활용되는데 엔씨소프트는 게임을 서비스하며 매일 새로운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개발한 기술을 직접 자사 게임 개발 및 운영에 적용하며 검증할 수 있다는 점도 엔씨소프트가 지닌 강점이다.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적용할 사례를 찾은 후 결과를 취합해 개선점을 찾는 일련의 과정을 자사 게임을 통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기에 연구개발에 속도를 더할 수 있다.
실제로 엔씨소프트는 자사에서 서비스 중인 게임에 자사의 AI 기술을 접목하고 있다. 블레이드앤소울에 지난해 공개된 비무AI가 대표적인 사례다. 비무AI는 이용자의 플레이 유형과 수준에 맞춰 최적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수준의 PvP를 제공하는 AI다.
리니지M에 연내 적용 예정인 보이스커맨드 기능 역시 AI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엔씨소프트 AI 센터가 개발한 기능으로 이 기능을 이용하면 이용자는 목소리만으로 캐릭터를 이동하고 자동으로 사냥을 진행하거나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다.
엔씨소프트 심승보 전무는 리니지M 보이스커맨드 기능을 소개하며 “게임 내 모든 기능을 음성으로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발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AI를 활용해 게임 내 채팅을 음성으로 읽어주거나 반대로 이용자의 목소리를 텍스트로 전달하는 기능도 게임 내에 구현될 수 있다. 또한 글로벌 원빌드로 서비스되는 모바일게임에서 별도의 번역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실시간 번역 기능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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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AI 기술을 가장 먼저 접목할 수 있는 최적의 테스트 베드로 꼽힌다.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알파고는 고전적인 게임이라 할 수 있는 바둑을 위한 AI였고 이후 공개된 다수의 AI 역시 스타크래프트와 도타2 등 PC 전략게임을 토대로 개발됐다. 게임이 AI의 역량을 키우고 그 결과를 반영하는데 적합하다는 점을 알 수 있는 사례다.
AI 기술 역량을 키워온 엔씨소프트는 오는 18일 기술 수준을 공개하는 AI 미디어토크를 열고 연구개발 현황과 AI 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