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제 SW정책연구소장 "국가지능화 지표 개발..AI 특화연구소로"

[방은주기자의 IT초대석] "국제 및 북한SW 연구도 강화"

컴퓨팅입력 :2019/07/04 13:46    수정: 2019/07/09 16:37

소프트웨어(SW) 정책연구소(SPRi, 스프리)가 국가지능화 지표를 만든다. 산업별 지능화 정도를 가늠하기 위해서다. 또 선택과 집중으로 인공지능(AI)에 특화한 정책연구기관으로 거듭난다.

4일 박현제 스프리 소장은 이 같이 밝히며 "명실상부한 국가 최고 SW정책 싱크탱크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밝혔다.

박 소장은 지난달 24일 3대 소장에 취임했다. 임기는 3년이다.

박 소장은 산학연을 두루 거친 SW 전문가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78학번) 졸업후 KAIST에서 전산학으로 석사, 박사를 받았다. KAIST 졸업후 근 20년을 기업에서 일했다. 특히 국내 멀티미디어 시장을 개척한 멀티미디어 1세대다.

정부 측에서도 일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DTV 및 방송 분야 프로그램 디렉터(PD)를 2년했고, 과기정통부 융합서비스 기획 및 총괄 프로그램 매니저(PM)을 5년간 지냈다. 연구원에 오기전에는 서강대에서 산학협력 중점교수로 1년 넘게 활동했다. 박 소장에게 향후 SW정책연구원의 발전 방향 등을 들어봤다.

-먼저. 소장 취임을 축하한다. 어떤 연구원을 만들고 싶은가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SW정책 분야 싱크탱크가 되고 싶다. 특히 AI 연구에 집중하겠다. AI 융합을 통한 국가경쟁력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AI 전담 조직도 만들겠다. 그동안 SW 생태계 조성에 힘을 기울여왔다. 이 경험을 살려 AI 생태계를 조성하는데 주력하겠다. 유럽이 유러피안 싱글 마켓을 만들었듯이 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디지털 싱글 마켓을 만드는 것도 관심이 있다. AI를 이용해 연구를 하는 등 첨단 SW를 국내서 가장 먼저 사용하는 것도 우리 연구원이였으면 좋겠다. 그러자면 규제가 없어야 한다. 규제샌드박스를 지역과 산업 뿐 아니라 기관에도 적용해줬으면 좋겠다 (웃음). "

-AI 전담 조직은 언제 결성하나

"우선은 태스크포스(TF) 형태로 운영할 생각이다. 곧 TF가 발족한다. 정식 조직화는 두달 후로 예정하고 있는 조직 재편때 할 계획이다. "

-AI 등 모든 연구가 국경이 없다. SPRi의 글로벌화는

"국내 정책은 물론 인류 공동 번영을 위한 어젠다도 연구하고 싶다. 이를 통해 스프리가 '세계 속의 스프리'가 됐으면 좋겠다. 정부가 추진하는 신남방 정책과 북한 SW에도 관심을 기울이겠다. 북한 SW의 경우 전담 인력도 1명 둘 생각이다. 세계적 SW 연구기관으로 독일 DFKI를 눈여겨 보고 있다. SW 관련 국제기관 및 학계와 교류 와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임기가 3년이다. 임기중 꼭 이뤄놓겠다는 것이 있다면

지난 24일 소장에 취임함 박현제 SW정책연구소장이 연구소 현판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산학연 경험이 풍부한 박 소장은

"국가 지능화 지표를 만들겠다. 산업별, 국가별 지표다. 이를 통해 AI가 국가와 산업, 그리고 국민 실생활과 어떻게 융합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내년 상반기에는 이 지표를 볼 수 있게 하겠다. AI 전문가 육성 정책과 AI 관련 규제 개선 방안도 제시하겠다."

-대학 전공이 컴퓨터다. 컴퓨터를 좋아했나.

"어릴때부터 과학과 기술에 관심이 많았다. 중학교때 로켓 설계를 직접 하기도 했다. 초등학교때는 화학 실험 중 황산이 얼굴에 튄 적도 있다. 내가 대학(서울대) 다닐때는 2학년 올라갈때 전공을 택했다. 당시 서울대에 막 전산과가 생겼다. 정식 명칭은 전자계산기공학과였다. 당연히 전산과를 택했다. 원래대로 하면 서울대 전산과 1회 졸업생인데, 사정이 있어 2학년 진급이 늦었다. 졸업은 코스모스로 했다. 서울대 전산과 1회와 2회 중간에 졸업했다."

-KAIST에서 석사를 한 이유가 컴퓨터 때문이라던데

"당시 서울대에는 컴퓨터가 없었다. KAIST에 간 이유 중 하나가 컴퓨터를 제대로 만져보기 위해서다. KAIST는 전산과에 컴퓨터가 있었고, 인근 연구원에도 좋은 컴퓨터가 있었다."

-KAIST에서 박사를 딴 후 바로 기업에 갔는데

"애국심에 불타서다(웃음). KAIST는 학비가 없다. 당시만해도 KAIST 학생들은 졸업을 하면 국가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다. 교수들도 "너희는 산업발전을 위해 일해라. 그것이 국가에 보답하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나도 자연스레 기업으로 갔다. "

-기업 생활은 어땠나.

"처음 들어간 회사가 멀티미디어 회사인 솔빛미디어다. 멀티미디어라는 용어가 막 생기던 시절이다. 삼보컴퓨터가 투자한 회사다. 솔빛미디어는 정말 괜찮은 회사였다. 나를 비롯해 KAIST 젊은 멤버 7명이 주축을 이뤘다. 비전과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던 회사였다. 이런 분위기라면 지금도 창업하고 싶다."

-멀티미디어 PC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만들었다던데

"그렇다. 멀티미디어PC를 제일 처음 만들어 1991년 미국에서 열린 컴덱스에 출품했다. 당시 컴덱스는 세계 최고 컴퓨터 전시회였다. 우리가 개발한 멀티미디어PC는 국내에서 처음, 세계적으로는 다섯번째 쯤 된다. 저작도구도 만들었는데, 우리가 만든 저작도구로 웅진대백과사전 CD가 나왔다. 당시 화제였다."

-인터넷 회사인 두루넷에서도 있었는데

"두루넷은 한국 회사 중 처음으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회사다. 당시 나는 두루넷에서 연구개발을 총괄했다. 전 회사인 솔빛에 있으면서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인터넷으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 인터넷 회사로 옮긴 거다. 당시 두루넷은 케이블 모뎀으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했다. 두루넷 이후 하나로가 ADSL로 인터넷 서비스를 했다."

-벤처회사에서도 대표를 10년간 했다. 이 시절은 어땠나

"벤처가 힘들다는 걸 절감한 시기였다. 진짜 어려웠다. 상처밖에 안남았다(웃음)."

-산학협력 교수로도 활동했는데

"그동안 SW기술 선순환을 많이 고민했다. 학교에서 우수 기술을 만들면 이걸 기업이 받아 상용화하고 이익을 낸 기업이 다시 학교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이런 선순환 사이클이 필요한데 우리는 이게 취약하다. 기술 선순환은 결국 산학연 협력에 달려있다. SW 기술 선순환 생태계를 만드는데도 기여하고 싶다."

-연구원은 올 5월 설립 5주년을 맞았다. 연구원의 성과를 꼽으면

"무엇보다 과기정통부를 지원해 SW진흥법 마련에 역할을 한 건 평가해주고 싶다. 또 SW중심대학 만들때도 지원을 잘했다. 시류에 빨리 대응 하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소프트한 질문 몇가지 하겠다. 취미나 특기는

"싸이클과 등산, 농사 세가지다. 건강관리도 이 세가지로 하고 있다. 싸이클은 탄지 7년 정도 됐다. 제주도 1박 2일과 섬진강, 동해안 등을 다녀봤다. 많이 탈때는 하루에 140~150킬로미터를 달렸다. 밭 가는 것도 오래전부터 해왔다. 밭은 20년 전에 구매했다. 등산은 싸이클 타기 전에 자주 했다. 음악 듣는 것도 좋아한다. 집에 홈시어터가 있다. 최근 스피커를 7.2 채널에서 5.2채널로 바꿨다. 최근 홈바도 만들었다. 원래 카페를 만들려했는데 홈바로 바꿨다.

-감명깊게 본 책이나 영화는

"아이작 아시모프가 쓴 SF소설을 학교 다닐때부터 좋아했다. 특히 아이작 유작인 파운데이션이라는 책이 지금도 인상에 남는다. 지금도 미래상을 그릴때면 그 책을 떠올리곤한다. 경영책은 스티븐 코비가 쓴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가지 습관'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는 시네마천국이 인상적이였다. 시네마천국에

키스신을 붙여 나오는 장면이 나온다. 그걸 보고 "우리는 왜 저렇게 콘텐츠를 클리핑을 못할까" 했던 기억이 있다."

-좋아하는 노래는

"노래방 안간지가 꽤 됐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많이 불렀다. 최근 휘성이 '레이니 데이'를 부르는 걸 봤다. 불러보고 싶더라. 못하는 편은 아니다."

-뭘 할때 제일 행복하나

"싸이클 탈때다. 지금은 다쳐서 못타고 있다. 최근 재활에 돌입했다."

-좌우명이나 좋아하는 말은

"내 평생의 좌우명은 열정, 배려, 전문성, 체력 4가지다. 직원들한테도 강조한다. 10년전에 만든 거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도 좋아한다. 나중에 알았는데, 성경에 있는 구절이더라. 벤처기업할때 정말 힘들었다. 직원들 사고도 많았고. 물론 잘 나가던 시기도 있었다. 잘 나갈때 교만하지 않고, 힘들때 포기하지 않게 해줬다."

-존경하는 사람이나 인생 멘토는

"국내서 인터넷 아버지라 불리는 전길남 교수다. KAIST 다닐때 7년을 모셨다.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라고 늘 강조했다. 교육받은 사람으로 국가와 사회에 보답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또 너 혼자가 사회를 망가뜨릴 수 있으니 책임을 다하고 늘 조심하라곤 하셨다. 미국에서 자라고 공부해 합리적이고 원칙적이였셨다."

-버킷리스트는

"자전거 타고 유럽 여행을 하고 싶다. 최소 2주에서 한달은 하고 싶다. 알프스에서 하루 종일 스키타고 내려 오는 것도 해보고 싶다."

박현제 소장 프로필

△59년생 △우신고 △서울대 컴퓨터공학 학사 △한국과학기술원(KAIST)석사 △한국과학기술원 박사

<경력>

△솔빛조선미디어 대표 △두루넷 전무 △세계 ICANN ASO 카운실 멤버 △주인네트 대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산업분과 전문위원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산업통상자원부 DTV·방송 PD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 과기정통부 융합서비스 기획 및 총괄PM △국가과학기술심의회 다부처공동기술협력특별위원회 위원 △서강대학교 산학협력 중점교수(지능형블록체인연구센터)

<논문>

Kilnam Chon, Hyun Je Park, Jin Ho Hur, Kyungran Kang 'A history of computer networking and the internet in Korea (History of Communications)', IEEE Commnicastions magazine(2013년 2월)외 논문 7편, 보고서 14편.

관련기사

<상훈>

대통령 표창장(2015), 정보통신부장관상(1997), 장영실상(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