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모든 정치 행위도 그렇지만, 근래 경제 정책의 실패는 늘 네 탓의 단짝이었다. 이명박정부의 녹색성장이 그랬고,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가 그랬다. 주체는 쑥 빠졌다. 진보든, 보수든 안 좋은 결과는 모두 전임 정부의 탓이라는 게 단골 수사였다.
지우책인명(至愚責人明)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남을 나무라는 데는 총명하다는 말처럼 자신의 허물은 덮어두고 남 탓만 하는 사람은 우리 주변에도 널렸다.
단임 정부의 제도적 한계일까, 정권의 역량 때문일까. ‘정책 실패’라는 용어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목표지향적인 차원의 성과를 빗대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지금으로선 문재인정부의 혁신성장도 그럴 개연성이 높다.
주목할 만한 것은 지디넷코리아가 현정부 출범 3주년을 맞아 혁신성장 정책을 평가한 결과 기대치를 한참 밑돈 성적표를 받았다는 점이다. <혁신성장 정책 2년 성적 이렇게 매겼습니다>
내용을 한번 보자. 우선, 혁신성장의 브랜드랄 수 있는 4차 산업혁명위원회에 대해 평가위원들은 대체로 경고 수준의 낮은 평점인 D학점을 줬다.
신산업 부문의 게임콘텐츠산업, 블록체인산업도 낙제점에 근접한 D학점을 받았다. 전기차산업, 인터넷산업은 C학점을 받았다. 5세대(G) 이동통신, SW산업, 핀테크 등은 겨우 B학점을 받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A학점을 받은 항목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기대 이하’였다.
혹시라도 ‘야박한 평가’라는 반발이 있을 수는 있지만 혁신성장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럴 처지도 아니다.
정권 출범 이후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신설하고 부처 내 혁신성장본부까지 구성하면서 혁신성장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고취시킨 것에 비하면 한마디로 초라한 성적표다.
■ 정부 혁신성장 성적표 낙제점 수준.... 기대만큼 실망감 ‘역시나’
어찌된 일일까. 4차위를 한번 보자. 위원장을 비롯해 위원회의 활동 차원도 그렇고 비전과 플랜, 실행력, 조정과 협력이라는 성과 차원에서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위원회 조직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
부처 내 조직도 마찬가지다. 혁신성장본부 얘기다. 기재부와 민간 사령탑 간 시각차가 워낙 크다보니 상호 비방만 한 채 두 쪽 나는 상황이 전개됐다. 답답한 것은 아예 혁신성장추진기획단이란 명목상의 조직으로 격하시켜버렸다는 점이다.
머피의 법칙이 작용하는 듯하다. 정권 초기부터 규제 개혁을 외쳤지만 번번이 기득권의 저항에 무위로 끝났다. 신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의지마저 부족했다. 이해당사자의 눈치만 살피다보니 추진력이 붙을 수 없다. 선거용 표 계산만 횡횡했다.
지난해를 돌아보자. 혁신성장 법안을 놓고도 규제샌드박스니, 규제프리존이니 하며 시간만 허비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해 당사자 간 조정과 협력을 놓고도 네 탓 공방을 벌였다.
혁신성장을 표방하면서 기득권의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스스로 무지를 자인하는 꼴이나 다름없다. 공유경제의 대표격인 우버택시를 보라. 결국 이해 당사자 간 합의의 중요성을 내세워 저만치 도망갔다. 기저엔 득표 극대화(Vote Maximization) 아니면 거대한 공생 카르텔이 깔렸음직하다.
블록체인 정책도 마찬가지다. 블록체인을 육성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적절한 규제 디자인이 필요한 암호화폐는 ‘사기’라는 이중적 잣대를 들이민다. 아예 ‘무정책도 정책’이라는 정부다. 자신도 없다. ‘공부 안하는 정부’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배경이다.
제대로 된 인재풀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교환기·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단말기 시절의 소신과 추진력을 겸비한 정책 담당자는 간 데 없고 무사안일만 신봉하는 판이다. 청와대 참모진 역시 공부가 부족하다보니 건전한 비판마저 의미 없는 방어와 반격, 혹은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정권 핵심에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명기적 변화나 패러다임, 혹은 인재를 알아보는 전략가가 없다는 얘기는 이제 구문이 됐다. ‘규제샌드박스 100일’ 운운해도 시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단언컨대, 다가오는 초(超)시대의 패러다임을 읽지 못하고 과거회귀적인 인사를 고집하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얼마 전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자를 보자.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해야 할 사령탑에 네트워크 전문가를 지명한 청와대다. 시계추를 20년, 30년 전으로 돌려놓은 느낌이다. 인재를 보는 선구안에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코드인사, 진영인사에 매몰된 결과다.
오죽하면 규제 전문가나 콘텐츠 전문가, 혹은 미래학자를 앉히지 그랬느냐는 힐난이 나오겠는가.
■ 신산업은 기득권 넘어야 가능성 있어.... 청와대 내 超시대 꿰뚫는 전략가 필요
다시 현실 경제를 보자. 이미 한국은행은 우리 경제가 생산과 소비투자가 동반 감소하는 트리플 약세의 위기 상황이란 점을 시인했다. 생산(-1.9%)도 줄고 소비(-0.5%) 줄었다. 결국 올해 경제 성장률을 2.5%로 낮춰 잡았다.
수출은 반도체 충격으로 지난달 전년보다 8.2%나 줄었다. 유일한 버팀목인 ICT 부문 무역수지는 흑자규모가 무려 32.6%나 빠졌다. 반도체 하나만 바라보는 우리 경제의 쏠림현상은 위기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경제 전반이 금리 인하를 통한 부채확대, 세수 중심의 재정확대로 버텨온 정책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경제 역시 보호무역주의가 득세하면서 양적완화로 버텨온 성장엔진이 식어가고 있다.
예견된 결과일 것이다. 1년 전 문재인정부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거듭할 무렵, 지디넷코리아가 산업계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정부 정책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률이 80%를 넘었다. <바보야, 이제는 경제야>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노무현정부 말기의 상황이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코드정치일까. 오기정치일까. 정치과잉의 덫에 빠진 작금의 정치 제세력은 현실경제의 위기에 대한 인식조차 없는 듯하다. 그러는 사이 골든타임은 속수무책 흘러가고 있다. 신산업은 특히 그렇다.
시간이 많지 않다. 이제는 득표 극대화의 논리에만 빠져 남 탓할 때가 아니다. 반구저기(反求諸己)라고 했다. 어떤 일이 잘못 되었을 때 남 탓하지 않고 문제의 원인을 자신한테 찾아 고쳐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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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은 타이밍이다. 전환기적 복합위기, 총체적 위기라는 경제계 일각의 진단을 되새겨볼 때다. 우리 경제의 절박한 현실이 드러난 만큼 향후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지 냉정하게 인식하고 대응책에 만전을 기하기 바란다.
[편집인/과학기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