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버시가 주제였지만, 프라이버시와 블록체인·암호화폐의 관계를 깊이 있게 논하기엔 암호화폐 창시자와 전통 암호학 대가의 시각차는 컸다.
전통 암호학 대가는 암호화폐 개발자 중에는 암호 전문가가 없다고 비판하며, 암호화폐 용어 자체를 사이버코인으로 바꿔 부르자고 제안했다. 이에 부테린은 사이버코인이라고 바꿔 부르면서도, 암호학 기술을 실험하는 데 있어 암호화폐가 좋은 실험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더리움의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과 이메일 보안 기술 PGP를 개발한 전통 암호학 대가 필 짐머만, 그리고 프라이버시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암호화폐 지캐시의 창시자 주코 윌콕스가 지난 5일 서울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2회 분산경제포럼(디코노미2019)’에서 프라이버시를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과연 이들이 암호화폐와 프라이버시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지가 관전 포인트였지만 너무 큰 기대였을까.
전통 암호학의 대가와 새로운 산업의 선두주자들의 시각차는 토론 초반부터 드러나며, 토론은 암호화폐와 프라이버시 간의 깊이 있는 논의로 이어지지 못하고 겉만 맴돌다 끝나버렸다.
암호 전문가인 필 짐머만은 토론 초반 암호화폐 용어 자체부터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암호화폐를 만드는 사람 중에 암호 전문가는 없다고 본다”며 “크립토가 너무 암호화폐 쪽으로만 사용되고 있다”며 암호화폐에 ‘암호’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에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암호화폐를 사이버코인으로 이름을 바꿔 부르자고 제안했다.
그는 이어 암호화폐 자체에도 회의감을 드러냈다. “암호화폐는 너무나 말도 안 되게 변동성이 심해 누가 사용하겠냐”며 “투자 가치를 보고 암호화폐를 사용을 할 수는 있지만, 확장성을 넓히려면 변동성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주코 윌콕스는 “그래서 실험적인 노력이 사이버코인에서 일어나지 않냐”고 반문했다.
비탈릭 부테린도 “사이버코인이 암호학에 주는 장점 중 하나는 암호학이 더 잘 활용되게끔 하는 프로젝트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암호학 기술을 실험함에 있어 암호화폐는 좋은 테스트 그라운드가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예를 들어, 이더리움 네트워크 같은 경우에도 범용적인 영지식증명기술(ZKP)이 사용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블록체인이 프라이버시 보호에 답이 될 수 있냐는 질문에 부테린은 “암호화폐는 블록체인과 암호학을 합친 것”이라며 “블록체인이 정보 보안 기술로서 정확성과 인증성, 검열저항성을 제공하지만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반면, 암호학은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두 가지가 결합하면 시너지가 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최근 페이스북이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할 거라는 뉴스에 대해서 “그런 소식을 들으면 가슴이 뛰고, 셀프 소버린 기술의 자정기능을 갖춘 페이스북이라면 기대가 된다”며 “아직까지 실질적으로 나오는 것은 없지만, 기다려봐야 하지 않을까”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 필 짐머만 “정부의 감시기술 우려” VS 주코 윌콕스 “모든 주체로부터 프라이버시 보호해야”
프라이버시는 누구로부터 지켜야 하고, 어떻게 보호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필 짐머만은 “첩보 기관이 자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첩보활동을 우려한다”며 “미국 국가안전보장국(NSA)같은 첩보기관이 자국 국민을 스파이 하는 부작용이 드러나기도 하고, 미 대선에도 이런 첩보활동은 개입됐다”며 정부로부터의 보호를 강조했다. 특히, “독재정권에 산다면 프라이버시 보호는 더욱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주코 윌콕스는 “정부로부터 보호하는 것보다 참견이 많은 이웃 등 모든 주체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1990년대부터 정부의 암호 기술 감시에 저항해오며 프라이버시 보호를 꾸준히 강조해온 필 짐머만에게 암호화폐는 어떤 점을 배울 수 있을까.
그는 암호화폐에 암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전반적으로 봤을 땐 프라이버시가 보호되지 않을 것”이라며 “비디오 카메라가 3D 안면인식이 가능해지는 등 너무나 감시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어 “공포감을 조장하려거나 포기를 하라는 얘기는 아니다”라며 “기술을 가지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암호화폐는 아직 감시기술을 제어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서 암호화폐가 됐든 어떤 방법으로서든,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주코 윌콕스는 “상품에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내재화시켜야 한다”고 답했다.
비탈릭 부테린은 “이더리움의 경우 프로그래밍 언어로 코드를 짤 때 암호 프로토콜인 SNARKs 기술을 작성할 수 있도록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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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짐머만은 “누군가는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게 범죄자한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냐고 말할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게 필요하다”며 “문화적으로 프라이버시를 희생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걸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이버 보안은 공격자에게 너무 유리하게 돼 있다”며 “현재로서 이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암호학이기 때문에 암호학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