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현·최태원, SK 45년 성장사

직물공장에서 반도체까지...글로벌 SK 진행형

디지털경제입력 :2018/08/24 06:00    수정: 2018/08/24 08:34

SK그룹이 오는 26일로 고(故) 최종현 선대 회장의 20주기 기일을 맞는다. SK는 이에 앞서 오늘(24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각계 인사 450여 명을 초청해 고인의 경영철학을 되새기는 추모 행사를 연다. 지난 14일에는 장남인 최태원 SK 회장 등 SK 오너일가가 모두 참석해 종로구 서린동 본사 사옥에서 추모 사진전도 개최했다.

SK그룹이 이처럼 고 최종현 회장을 기리는 대규모 추모 열기에 휩싸인 배경은 올해가 그룹 성장의 기틀을 다진 고인의 타계 20년이자 최태원 현 SK 회장이 그룹을 이끈 지 2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6.25 전쟁이 끝난 1953년(올해 창립 65주년) 폐허 위에서 직물공장으로 시작해 오늘날 화학·에너지, ICT(통신·반도체), 바이오 등 16개 상장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으로 변모한 SK그룹의 성장사가 최종현 선대회장과 최태원 회장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셈이다.

1973년 11월 고(故) 최종현 회장이 선경직물 회장 및 선경화섬, 선경합섬 사장에 취임했다.(사진=SK그룹 홈페이지)

물론 선경직물을 창업한 최종건 회장(1973년 작고)이 그룹의 출발점이지만 방직기계로 직물을 짜던 섬유회사를 미래 첨단기업으로 성공적으로 변신시킨 업적은 동생인 고 최종현 회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게 일반의 평가다. 고 최종현 회장은 SK그룹의 전신인 선경직물을 재계 5위의 그룹으로 키워내고 인재 보국·사업 보국의 신념으로 국가 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인은 1973년 11월 회장(선경직물-화섬-합섬) 취임 당시 "선경(현 SK)을 세계 일류 에너지-화학 회사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누구도 가능하리라고 믿지 않았다. 그러나 1975년에 1차 석유파동이 일어나자 고인은 발 빠르게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 계열화'를 선언했다. 섬유회사가 원유정제, 필름, 원사, 섬유 등에 이르는 수직계열화에 나선 것이다. 이후 80년 대한석유공사(SK이노베이션)를 인수하고 해외석유 자원 개발에 도전한다. 결국 1984년 북예멘 유전 개발에 성공한다. 이후 1994년 두 번의 우여곡절 끝에 당시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민영화에 참여하면서 숙원의 이동통신 사업을 거머쥔다. '패기와 열정', '준비된 지성으로 싸워서 이긴다'라는 SK맨의 사내 문화도 선대 회장의 이같은 진취적인 도전 정신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고인은 인재가 절실했던 시절 사재를 털어 한국 고등교육재단을 설립해 가난한 대한민국 청년들을 조건없이 유학 보냈다. 본인이 60년대 미국 유학 시절 인재에 대한 필요성을 뼈 저리게 느낀 탓이다. 재단이 44년간 양성한 인재는 세계 곳곳에서 거목으로 자랐다.

선친이 석유·화학 산업의 수직계열화와 정보통신 사업 진출이라는 물꼬를 텄다면 최태원 회장은 이후 20년 간 글로벌 SK를 향한 제2의 도약을 일궜다.

최태원 회장은 부친이 갑작스레 타계한 직후 1998년 9월 SK주식회사 대표이사 회장직에 취임했다. 1960년생인 최 회장이 불과 서른여덟의 나이였다. 더구나 창업주이자 큰 아버지인 고 최종건 회장의 직계인 사촌형제(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최창원 SK 디스커버리 부회장)를 대신해 그룹을 승계한 최 회장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을 지분도 미미해 형제들이 모두 상속을 포기할 정도였다. 최 회장이 당시 재계 5위였던 SK그룹을 현재 매출 158조원, 순이익 17조3천500억원의 재계 서열 3위 기업으로 키워낸 것은 실로 감개무량한 일이다.

1998년 9월 최태원 회장이 SK주식회사 대표이사 회장에 선임됐다.(사진=SK그룹 홈페이지)

결정적인 한수는 2011년 11월 메모리반도체 치킨 게임에서 살아남은 (주)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 인수였다. 선대 회장 당시 대한석유공사와 한국이동통신 인수에 비견되는 승부사적 판단이었다. 최근 반도체 호황을 맞이한 SK하이닉스는 지난 한해동안 영업이익 13조7천213억원(매출 30조1천194억원)을 달성했다. 올해 상반기에만 벌써 9조9천413억원(매출 19조901억원)의 이익을 냈다. SK하이닉스가 그룹 전체 영업이익의 절반 가량을 담당하는 셈이다. 또한 그동안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내수 기업이라는 딱지를 떼고 한국 경제 성장에 이바지 하는 명실상부 수출 기업이라는 명성까지 얻게 됐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SK머티리얼즈, SK실트론 등을 인수 합병해 반도체 사업을 수직계열화 시키고 올해 5월엔 한·미·일 연합 컨소시엄에 참여해 '낸드플래시의 원조' 도시바 메모리까지 인수했다. 지난 7월엔 미국 제약바이오 CDMO인 앰팩의 지분 100% 인수, 글로벌 바이오 시장 진출까지 넘보게 됐다. 최 회장의 반도체·바이오 사업에 대한 투자와 성장 전략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SK그룹은 향후 3년간 80조원의 투자를 약속한 바 있다. 무엇보다 인공지능(AI)·5G· 전기자율차 등으로 대표되는 4차 혁명시대에서 SK그룹은 통신(SK텔레콤)·반도체(SK하이닉스)·에너지(SK이노베이션) 등 주요 미래 사업을 모두 갖추고 있다. 미래 시장을 주도할 SK그룹의 성장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뜻이다.

최 회장은 그룹의 전통적인 수펙스(Supex Spirit : Super Excellent Spirit) 정신에 이어 새로운 경영철학으로 2016년부터 사고와 사업 방식의 근원적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는 '딥체인지(Deep Change)'를 강조해 오고 있다. 또 기업이 경제적 가치 창출은 물론 사회적 가치도 동시에 추구해야만 한다고 설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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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 회장이 그동안 탄탄대로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소버린 사태와 개인적인 수형 생활 등 숱한 어려움도 있었다. 특히 영국 기관투자회사인 소버린 자산운용이 2003년 3월 SK주식회사의 주식 14.99%를 매입해 경영 간섭과 경영권에 대한 위협을 가한 일은 최 회장 재임 기간 중 가장 잊혀지지 않은 사건 중 하나다. 이 사건은 당시 외국 투기자본의 공격에 취약한 우리나라 대기업 경영과 지배구조에 경종을 울린 일대 사건이었다. 실제 소버린은 주주제안을 통해 이사 후보 추천과 정관 개정, 최태원 회장 퇴진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경영권 방어에 성공한 SK그룹은 2007년 7월 지주회사 체제로 출범, 오늘날의 지배구조 체제를 갖추게 됐다.

고 최종현 선대 회장의 20주기를 맞은 최태원 회장은 숱한 고난과 기회 속에서 선대 회장들이 일군 SK그룹을 초일류 글로벌 SK로 키워내기 위한 또 한번의 도약대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