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반도체 호황의 중심에 서 있는 D램에 미세화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극자외선(EUV) 공정을 도입키로 했다.
몇 년 간 지속 상승한 D램 가격이 최근 소폭 하락해 '반도체 고점' 논란이 이는 가운데, 그 누구보다 빠르게 제조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포부다.
삼성과 SK의 전략은 후발 주자와 기술격차를 높이려는 글로벌 D램 1·2위 제조사의 새 도전이 될 전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초(超)격차' 전략,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주창한 '딥 체인지(Deep Change·근본적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SK하이닉스는 27일 메모리 수요에 대응키 위해 경기도 이천 본사에 신규 반도체 공장(M16)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신규 공장은 올 연말 착공돼 2020년 말께 완공될 예정이다. 초기 투자 금액은 3조5천억원, 완공 시점까지 예상되는 총금액은 약 15조원이다.
이천 M16은 향후 SK하이닉스의 D램 생산 거점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날 SK하이닉스는 "생산제품의 종류와 규모는 시장 상황과 기술역량 등을 고려해 결정할 계획"이라며 M16에서 어떤 제품을 만들지 밝히진 않았다. 다만, SK가 중국 우시에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 설립을 계획하고 있고, 충북 청주 M15에서 3차원(3D) 낸드플래시를 양산할 것으로 관측됨에 따라 M16의 주력 제품은 D램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의 발표 내용 가운데 주목할 만한 점은 M16에 EUV 노광장비 전용 공간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EUV 설비를 조성키 위해 기존 SK하이닉스 공장보다 여유 있는 공간을 확보한다는 계획. 이 때문에 투자 금액이 기존 초기 투자비보다 다소 늘었다는 게 SK하이닉스의 설명이다.
앞서 SK하이닉스는 지난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2019년 이후 1z(10나노대 초반) D램 공정부터 EUV를 일부 활용할 계획"이라며 "새로운 기술로 나아가는 관점에서 EUV 도입을 바라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재계는 이번 투자가 최태원 회장이 제시한 46조원 규모 반도체 투자 계획의 일부라고 보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2015년 "앞으로 총 46조원을 더 투입해 이천과 청주에 추가로 반도체 공장을 더 짓겠다"며 중장기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도 2020년을 전후로 D램 개발에 EUV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이 회사도 SK하이닉스와 마찬가지로 10나노대 초·중반 제품 개발에 EUV를 쓸 예정이다. 삼성전자가 본격적으로 EUV를 도입해 수율을 끌어올린다면, 경쟁업체들과의 격차를 더 벌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반도체 업계가 EUV에 집중하는 건 미세공정화 실현을 위해서다. 10나노대 반도체 시대로 접어들면서 기존 노광장비(ArF·불화아르곤 광원)로는 넘어설 수 없는 한계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 미세화 경쟁이 치열한 삼성전자(시스템LSI)와 대만 TSMC는 벌써 7나노 공정에 EUV를 활용하고 있다.
D램에 EUV를 적용하는 것이 상당히 까다로워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지만, 수요가 폭발하는 상황에서 업체들이 EUV를 대체할 마땅한 방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게 현실이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미세공정 한계에 부딪힌 D램 업체들이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선 EUV 도입이 꼭 필요한 상황"이라며 "그렇다면 누가 먼저 수율을 잡고, 대량생산 체제로 접어드느냐가 승부를 가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요 반도체 기업이 설비투자(CAPEX)를 늘린다는 소식에 늘 뒤따르는 건 공급과잉 우려다. 이날도 SK하이닉스의 신규 투자 소식에 증권가는 "D램 공급과잉을 끌어내 평균가격을 내릴 것으로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를 포함한 D램 업체의 설비투자 증가로 공급이 늘어 평균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설비투자 증가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 업황 악화에 무게가 실린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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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최근 반도체 시장에서 불거진 고점 논란과도 연관된 분석이라서 주목된다. 유 연구원은 "낸드에 이어 D램도 공급이 수요를 웃도는 상황"이라며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업황 악화로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SK하이닉스는 전날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D램 수요는 오를 것"이라며 "인터넷 데이터센터(IDC)와 모바일을 중심으로 메모리 수급 환경이 이어지고 있다. 메모리 수요는 향후 지속해서 확대될 것"이라고 고점 논란을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