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 안 주는 보험 계약, 매해 1만건 이상 발생

관리보단 신규 가입자 늘리는데 집중하는 탓

금융입력 :2018/04/12 17:07

보험사에 대한 금융소비자의 민원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전 금융권역 중 보험사 민원 비중이 가장 높은 상태다. 그 중 건수가 가장 많은 것은 보험금 산정이다. 보험 가입자가 가장 분통을 터뜨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보험금이 필요한 순간 보험사에서는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보험금 지급을 거절해서다.

12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인구 고령화가 시작되면서, 보험금 지급과 관련한 민원은 더욱 늘 것으로 예측한다. 보험 만기 시점이 다가오는 연령대가 많아져서다. 고령층은 지인 설계사를 통해 가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모바일과 인터넷 채널(CM·Cyber marketing)에 비해 불완전판매 여지가 높아 보험금 지급 민원은 해마나 증가세다.

■보유 계약 10만건 당 평균 민원 9.64건

금융소비자연맹이 2017년 보험 민원 발생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보유계약 10만건당 생명보험사는 평균 9.70건, 손해보험사는 9.58건이 발생했다.

유형별 민원 발생현황을 보면 생명보험사는 판매 민원(45.2%)·지급 민원(39.8%)이며 손해보험사는 지급 민원(57.5%)·유지 관리 민원(17.3%)로 집계됐다.

2016년에도 보험 민원은 늘어났다. 금융감독원이 낸 금융민원 자료에 따르면 2014년 4만4천54건이었던 민원 건수는 2015년(4만6천816건)·2016년(4만8천573건) 들어 계속 증가했으며 재작년 전 금융권 민원 중에서도 보험사 민원은 63.7%를 차지했다. 이중 보험금 산정 지급 민원은 2014년 1만5천174건, 2015년(1만6천221건), 2016년(1만1천21건)을 차지했다.

■실족사를 증명해야 하는 유가족?

보험사들은 자정 노력을 하고 있다곤 하지만 보험금 지급 민원은 지속되고 있다. 최근 생명보험사 설계사였던 김예나(36·여)씨도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에 굉장히 애를 먹었다고 기자에게 제보했다. 김씨가 아버지를 수혜자로 설계한 보험 상품이 있는데, 가입 당시만 하더라도 뇌혈관 수술 후 장해를 입는다면 이 장해 정도에 따라 보험금을 받기로 했다. 작년 말 김씨의 아버지는 뇌혈관 수술을 받았으며, 수술 후 실어증이 왔다.

이에 대해 김씨는 해당 보험사에 장해 정도에 따른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요청했으나 돌아온 답변은 "실어증인지, 일부러 말을 안 하는 것인지 모르니 보험금을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보험설계사인 김 씨는 세 달여 실랑이를 한 끝에 보험금을 받았다며 "보험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설계사도 보험금을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라며 "만약 암 진단비와 암 수술로 인한 생활비 보장 상품을 가입한 뒤 보험금이 제 때 안나온다면 가입자들은 생활이 곤란해지지 않겠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밖에 산에서 실족사를 해 아버지의 보험금 지급을 회사에 신청하자 '자살이 아니냐'며 실족사를 유가족에게 증명하도록 한 사례도 있다. 2년 전에는 보험사의 약관 작성 실수로 주기로 한 보험금을 주지 않은 '자살보험금 미지급'도 대표적인 예다.

■보험 영업·보험사 고질적 문제, 뿌리 못뽑나

업계 안팎에선 보험사의 보험금 미지급 민원은 보험사 영업 행태와 상품 특성 등에 따른 구조적이며 고질적인 문제라고 설명한다. 보험사의 상품 특성이 80세 만기·사망 시 지급 등으로 비교적 긴 데다, 보험사의 실적 압박으로 인한 불완전판매,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상품에 대한 소비자 이해 부족 등 3박자가 맞물린 결과라는 부연이다.

금융소비자연맹의 이기욱 사무처장은 "30년 전 보험사를 근무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달라진 게 없다"며 "신규 상품을 계속 팔아야 수익을 보전할 수 있는 보험사의 영업 압박과 근속 근무기간을 13개월 채우지 못하는 설계사들이 소비자의 이해 수준과 상관없이 상품을 판다"고 설명했다. 이기욱 처장은 "고령층은 지인 설계사를 통해 가입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이는 상품 이해 여부를 계속 물어보는 모바일이나 인터넷 채널에 비해 불완전판매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며 "고령층이 많아지면서 만기가 다가오는 보험 상품이 늘어날 수록 민원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보험사에 근무했던 고위 관계자도 "매해 고객 만족을 위해 정진하자는 의미로 워크숍을 하지만, 새로운 상품을 어떻게 팔까에 대한 얘기만 한다"며 "기존 보험 가입자들을 어떻게 더 잘 관리할까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는게 실상"이라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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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금감원의 민원 창구도 소비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진 못하고 있다. 금감원에 민원이 접수되면 적극적인 중재나 조정없이 그대로 종결 처리돼 대부분 '해결책이 없음'으로 결론이 난다는 것이 금융소비자연맹 측의 주장이다.

이기욱 사무처장은 "일시불로 3천만원짜리 자동차를 사는 것 만큼이나 만기가 10~20년인 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비용이 굉장히 수반된다"며 "보험사와 설계사들이 바뀌는 것 외에도 소비자가 현명하게 보험을 가입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