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한 우물 판 '디지털 소리장인' 코원 박남규 대표

스마트폰과 차별화된 음향기기·블랙박스·PMP가 강점

중기/벤처입력 :2018/03/14 15:39

30대 후반에 접어든 중장년층이라면 윈플레이, 윈앰프 등 외국산 MP3 플레이어 프로그램이 유행하던 1990년대 말 등장한 '거원 제트오디오'를 기억할 법하다. 20대 후반의 청년이라면 MP3 플레이어와 PMP 제품으로 '코원'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LG전자 연구소 출신 박남규 대표는 1995년 거원시스템 창업 이래 23년째 대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가 주축이 되어 개발한 멀티미디어 재생 프로그램, 제트오디오는 지디넷닷컴이 선정한 2000년 최고 인기소프트웨어 20선에 올랐다.

거원시스템은 2005년 이름을 코원으로 바꾸고 MP3 플레이어 등 음향기기로 아이리버와 호각을 이뤘다. 2010년 즈음에는 당시 각광받던 태양광 발전에도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 시점에 몰아닥친 스마트폰 폭풍이 모든 것을 뒤흔들었다.

■ "스마트폰, 우리 못 이긴다"

13일 서울 강남구 코원시스템 본사에서 만난 박 대표는 스마트폰을 블랙홀에 비유했다. MP3 플레이어는 물론이고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까지 모든 것을 집어 삼키고 있다는 것이다. LG전자와 소니는 FLAC 등 무손실압축 고해상도 음원 재생 기능을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로 꼽기도 한다.

박남규 대표는 음향 면에서 오디오 플레이어에 더 큰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한다. (사진=지디넷코리아)

그러나 박 대표는 소리 면에서 스마트폰이 오디오 플레이어를 따라올 수 없다고 자신했다. "스마트폰으로 고음질을 구현하려면 소모전류가 커지고 재생 시간도 줄어들죠. 하지만 오디오 플레이어는 캐패시터나 DAC 칩 등 고음질 위주 부품을 쓸 수 있고 내부 잡음에서도 자유롭습니다"

박 대표가 바라보는 국내 고음질 오디오 플레이어 시장의 규모는 연간 3-4만대 가량으로 해외 시장보다 더 작다. 이 시장에서 코원시스템 뿐만 아니라 아이리버, 소니는 물론 피오(FiiO) 등 일부 중국 업체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그러나 박 대표는 "좋은 소리를 찾는 마니아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며 낙관했다.

■ 좋은 소리에 대한 남다른 욕심

박 대표는 좋은 소리와 음향 기술에 관한 한 국내에 손 꼽히는 전문가다. 요즘은 마니아의 수집품이 된 LP 레코드로 음악을 접했고 멸종 위기에 놓인 카세트 테이프와 CD, MP3와 스트리밍까지 두루 섭렵했다. "디지털 오디오에 대한 모든 것을 접했다"는 게 박 대표의 자평이다.

좋은 소리에 대한 욕심도 있다. 실무자와 함께 제품 개발 초기 단계부터 직접 소리를 듣고 수시로 확인한다. 출시 전에는 최소 3주 이상 직접 소리를 듣는다. 최종 출시 여부까지 직접 결정한다는 것은 소비자가 잘 모르는 사실 중 하나다.

코원시스템의 핵심 자산인 음장기술, 제트이펙트에 대한 의지도 확고하다. 박 대표는 고음역대와 저음역대는 물론 미세한 소리의 왜곡까지 일부 조절하는 이 기술에 대해 "과거 몇몇 업체와 기술제휴 등에 대해 논의한 적은 있지만 핵심 노하우인 만큼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코원시스템 오디오 플레이어 라인업. 고가부터 저가까지 골고루 포진해있다. (사진=지디넷코리아)

그러나 오디오 플레이어를 찾는 마니아들은 최대한 원래 소리에 맞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 그들의 표현을 빌자면 '착색되지 않은', 소금도 후추도 뿌리지 않은 소리다. 과연 이들이 제트이펙트를 쓰려고 할까. 이런 의문을 던지자 박 대표의 열띤 반론이 돌아왔다.

"가장 좋은 소리는 마치 연주를 현장에서 듣는 듯한 현장감을 주는 소리죠. 그런데 사실 우리가 듣는 소리는 이어폰이나 헤드폰은 물론 귀 안에서도 왜곡이 일어나죠. 아무런 음장 효과 없이 듣는 소리가 반드시 원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트이펙트에 위상을 보정해 주는 기능을 넣었습니다"

■ 의외의 히트상품 PMP "학생·현역병이 큰손"

지난 해 코원시스템의 매출은 약 100억원이다. 주력 상품인 오디오 플레이어는 국내 판매량보다 해외 수출 물량이 더 많다. 박 대표는 "MP3 플레이어 시절부터 꾸준히 인연을 쌓은 전 세계 40여개 국가 거래처를 통해 여전히 큰 도움을 받고 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박 대표가 꼽는 의외의 히트상품은 바로 PMP다. 동영상 콘텐츠만 재생 가능한 한계점이 오히려 학부모의 관심을 끌었다. 교육업체와 콘텐츠를 제휴한 결합상품을 통해 국내 시장 1위를 고수중이다. 박 대표는 "군사보안상 통신 기능을 쓸 수 없는 육해공군 현역 병사들의 수요도 꾸준하다"고 말했다.

■ 올해 가장 큰 목표는 "성장 속의 생존"

코원시스템은 올해로 창업 23주년을 맞았다. 사람으로 치자면 20대 초반, 청년이다. 박 대표 스스로도 중견기업의 영역에 발을 들여 놓았다고 자평한다. 그런 그에게 소감을 묻자 "한 기업을 20년 이상 지속 성장시키는 것은 특히 어렵다"고 답했다.

또 "예전에는 MP3 플레이어 제조사 대표들이 자주 모임을 가지고 산업협회도 있었지만 어느새 국내 업체는 많이 사라졌더군요. 그나마 블랙박스는 팅크웨어나 파인디지털 정도가 남았지만 음향기기에서는 아이리버 정도만 남았습니다"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스스로 '특별히 취미가 없다'는 박 대표의 요즘 가장 큰 관심사는 바로 '성장과 생존'이다.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적응하면서 지난 해 이상의 매출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죠. 진부한 이야기지만 방향을 잘 잡아 최선을 다하는 것 이외에 왕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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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원시스템 플레뉴2 마크2. AI 오디오 기능을 내장했다. (사진=지디넷코리아)

4차산업혁명의 한 축으로 꼽히는 AI(인공지능)도 이미 일부 제품에 녹아 있다. 플레뉴2 마크2에 내장된 AI 오디오는 재생되는 음악을 자동으로 분석해 적절한 음장 효과를 설정해 준다. 곡마다 다른 음량도 자동으로 조절해주고 재생된 곡을 분석해 알맞은 곡을 알아서 골라주기도 한다.

박 대표는 4차산업혁명 뒤에 숨은 제조업의 딜레마에 대해 아쉬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기존 인터넷 사업은 2세대, 3세대 업체가 나타나고 있고 젊은 인력이 꾸준히 유입되죠. 그런데 제조업 쪽에서는 스마트폰 탓에 사업 아이템이 많이 줄어든 탓인지 다음 세대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