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계속 갈까요, 곧 멈출까요?

중국 공급 수준 놓고 낙관론과 비관론 엇갈려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18/02/01 17:32    수정: 2018/02/01 17:47

지난해 반도체 업계에 사상 최대 실적을 안겨준 메모리 호황이 올해도 이어질 것이냐는 질문을 두고 전망이 엇갈린다. 이는 중국 등 메모리 후발주자들의 기술력이 어느 수준에 이르렀느냐는 질문에 시각차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관론과 낙관론이 함께 나온다. 전자는 중국발(發) 메모리 공급 과잉으로 하반기께 시작될 것이라는 분석이고, 후자는 지난해 수준은 아니겠지만 올해에도 공급 부족 현상이 계속해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 [낙관론] 4년은 지속…데이터 수요 증가도 '한몫'

삼성전자가 양산하는 세계 최고 속도 '16Gb GDDR6 그래픽 D램' 제품. (사진=삼성전자)

낙관론은 통상 다음 해 시장 전망을 내놓기 시작하는 지난해 10월께부터 슬며시 흘러나왔다.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하반기부터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는 현상이 지속돼 가격이 꾸준히 오르는 호황기를 맞이했다.

지난해 10월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는 "메모리 시장 규모는 D램과 낸드 호황에 힘입어 계속 증가하고 있다"며 "2018년에도 흐름이 지속돼 11%의 추가 상승이 예상된다"고 분석한 바 있다.(관련 기사☞반도체 슈퍼사이클, 언제까지 이어질까)

IHS마킷의 분석도 비슷했다. IHS는 과거 반도체 사이클을 근거로 들었다.

IHS 관계자는 "반도체 호황은 평균 4년 정도 지속된 경향이 있다"며 "이번 호황이 2019년 말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올해 초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2018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 매출이 총 4천510억달러(약 480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지난해 매출액 3천190억 대비 7.5% 증가한 수치다.

SK하이닉스 72단 3D 낸드플래시 칩과 이를 적용해 개발 중인 1TB(테라바이트) SSD 제품 (사진=SK하이닉스)

물론 낙관론만 있었던 건 아니다. 올해 중국발 반도체 공급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이런 이유로 반도체 호황에 대해선 그 누구도, 함부로 확언을 할 수 없었던 상황이 지난해 말부터 연초까지 지속됐다.

그런데 다시 상황이 반전됐다. 주요 반도체 업체들의 지난해 연간 실적 발표 시점이었다. 삼성과 SK가 올해 반도체 호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호황 낙관론'에 방점을 찍는 순간이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31일 4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올해 D램 시장은 연간 비트그로스(비트 단위 당 생산량 증가율) 기준으로 20% 성장하고, 낸드플래시의 경우 40% 성장할 것"이라면서 반도체 호황 지속설에 힘을 보탰다. 삼성전자는 호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판단한 이유에 대해 '수요 증가'에 무게를 실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글로벌 IT 업체들이 신규 데이터센터 건설에 꾸준히 나서고 있다"면서 "이를 통한 실시간 데이터 처리능력 수준은 시간이 지날수록 향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SK하이닉스도 컨퍼런스콜을 통해 올해 D램과 낸드의 성장률을 각각 20%, 40%로 예상했다. 이 회사는 '메모리 호황이 (올해도)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느냐'는 연구원의 질문에 "D램과 낸드플래시는 1분기에 출하량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올해도 공급 부족이 이어질 것"이라고 답했다.

■ [비관론] "일시적이고 비정상적인 현상…곧 불황 온다"

오브젝티브애널리시스는 올해 반도체 시장 전망에 대해

그러나 낙관론에 찬물을 끼얹는 분석이 새로 나와 주목된다. 이 분석의 주인공은 국내 최대 규모의 반도체 장비·설비 전시회 '세미콘코리아'에 참가한 한 시장조사업체의 대표였다. '메모리 호황은 지극히 일시적인 현상이고, 곧 기술 격차가 줄어들어 공급 과잉이 시작될 것'이란 게 발언의 골자였다.

짐 핸디 오브젝티브애널리시스 연구원 겸 대표는 3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세미콘코리아 2018' 기자간담회에서 "올 하반기부터 반도체 업황이 하락해 내년부터 침체기에 접어들 것"이라며 이 같은 취지로 언급했다.

그는 "상반기 호황이 이어질 것은 분명하지만, 하반기부터 시작된 불황으로 향후 3년간 메모리 시장은 침체기에 접어든다"며 "상반기는 좋지만 하반기에 무너지는 한 해가 될 것(Great first half but mid-year collapse)"이라고 강조했다.

핸디 대표는 "과거에도 기술 격차가 벌어진 상황에서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이 이뤄진 사례가 많이 있었다"면서 "중국이 오는 2020년까지 메모리 공급을 대거 늘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가격도 추락하고 업계가 구조조정을 감내해야 할 우려도 상존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중국이 올해 메모리 물량공세에 본격 나서면서 과잉 공급이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과 일치한다. 올해 푸젠진화, 허페이창신을 비롯해 칭화유니 등이 공장을 본격적으로 가동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달 31일부터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미콘코리아 2018'. (사진=지디넷코리아)

업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 호황은 일시적인 공급부족에 기인한 그야말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며 "이는 몇몇 업체들의 독과점이 고착화된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반도체 시장의 호황과 불황을 결정하는 것은 수요가 아닌 공급"이라며 "올해 완공되는 중국 기업의 메모리 공장 3개의 월 생산능력이 26만 장에 달하는데, 이는 삼성전자의 20% 초반 대 수준과 맞먹는다"고 설명했다. 이는 곧 후발업체의 공급 확대로 메모리 수급 균형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로도 해석된다.

이어 그는 "메모리 가격이 조만간 급격하게 떨어질 가능성도 높다"면서 "늦어도 4분기부터 중국발 공급과잉이 심화될 가능성도 크다. 다만 그 시점에 대해선 올해 말인지 내년 초인지 확언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일단은 中 '진입장벽' 높이겠다는 삼성과 SK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 외경(자료=삼성전자)

물론 업계도 이같은 상황을 모르는 눈치는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대규모 D램 생산 설비를 증설해 후발 주자들이 당장 넘어야 할 '진입장벽'을 높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을 통해 "화성 공장의 낸드 생산 설비 일부를 D램 설비로 전환할 것"이라며 "평택 공장 2층도 D램 증설에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업계는 이에 대해 삼성이 D램 생산량을 확대해 가격을 낮추고 신규 업체들이 투자를 꺼리게 하기 위함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메모리 호황의 최대 수혜를 입은 삼성전자가 메모리 호황을 끝내려 한다'는 우스갯 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했다.(관련 기사☞삼성, 왜 반도체 슈퍼사이클 끝내려하나)

SK하이닉스의 경우 반도체 사업에 지난해 설비투자액인 10조3천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등의 견제가 점점 심해지는 반도체 시장에서 선도 업체로서 살아남겠다는 목표다.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최근 한국공학한림원이 주최한 'CEO 조찬집담회'에서 "기술차를 더욱 벌릴 것"이라며 "고객들에게 고성능·고품질의 제품을 제공해 좋은 위치에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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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서울 코엑스에서 개막한 한국전자전 행사를 둘러보는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사진=지디넷코리아)

다만,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유율 3위였던 SK하이닉스도 중국 업체의 메모리 공급 과잉을 의식하는 눈치였다.

이날 박 부회장은 "중국의 경우 국가가 나서서 반도체 산업에 투자를 하는데, 투자액만 지난 5년간 무려 120조원에 달한다"면서 "이에 반해 SK하이닉스는 지난 2013년까지 30년간 투자한 금액이 60조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을 예로 들며 "1990년대 반도체 강국이었던 일본 업체들은 시장 변화에 민감하지 못했다"면서 "빠른 대응과 함께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