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량 데이터를 사용하는 서비스가 5G 상용화가 1년여 앞으로 다가왔다. 이에 무선 통신망 속도와 직결되는 유선 망 투자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KT 외 이통사들은 효율적인 망 투자를 위해 유선 통신망을 타사 대비 촘촘히 설치한 KT의 설비를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과기정통부도 이런 입장을 같이 했다. 지난 5일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이동통신사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5G 세계 최초 상용화를 위해 KT에 설비를 타사와 공동 활용을 적극 추진하자고 제안했다.(☞유영민 “KT, 필수설비 공용화 많이 도와 달라”)
유선망 설비 공유 논의가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KT를 제외한 이통사는 망 임차 대가 산정 기준에 문제가 많다고 주장한다.
이 업체들은 국영기업으로 출발해 전국구로 망 설비를 투자하던 KT와 경쟁이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 설비 임차 대가 재산정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KT 설비만 설치된 건물이 많아 타 이통사 서비스 비용이 더 저렴해도 이용하기 어려운 현실 또한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촘촘한 유선망이 서비스 경쟁력인 KT로서는 특출한 보상 없이 자사 망을 경쟁사에게 빌려주는 게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간 회사는 의무 제공 제도에 따라 경쟁사에 산정된 비용을 받고 유선망 설비를 빌려줬다.
KT도 향후 국가 차원에서 효율적으로 망에 투자해야 할 필요성이 인정됨에 따라 망 설비 공유에 대한 전체적인 재논의는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임차 대가 재산정에 앞서 임차 목적이나 구간 등을 먼저 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非KT "대가 산정 재논의 없는 설비 공유는 무의미"
업계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설비 공유를 위한 고시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비KT 진영에서는 고시 개정에 대가 산정 관련 항목 조정은 바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데 불만을 표시한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KT는 국영기업 시절부터 유선망 설비를 정부 예산을 사용해 전국적으로 설치해놓은 상황"이라며 "KT 외 통신사는 공공시설인 도로에 깔려 있는 망 설비를 개별 건물에 연결하려 해도 지자체에서 도로와 건물 사이에 있는 도보 이용 불편을 이유로 공사 허가를 좀처럼 내주지 않을 뿐 아니라, 건물주도 이미 KT 인터넷이 깔려 있는데 추가로 공사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관로 예비율 기준의 문제도 지적했다. 관로 예비율은 케이블 설치 여유 공간을 표현하는 지표다. 현재 135%를 적정 기준으로 삼는 관로 예비율에 대해서도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땅 밑에 KT 관로가 꽉 차 있으면 설비 투자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며 "관로 예비율과 임차 대가 재산정 논의가 필요한 시점인데, 과기정통부 측에서 밝힌 대로 가장 주요한 이 사안들에 대해 바로 논의하지 않고 '신중하게 접근한다'고 하는 것은 결국 지금과 달라지는 게 없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재산정을 통해 예비율 기준을 낮추고, 임차 대가를 낮춰야 5G 시대에 제대로 된 업계 경쟁이 이뤄진다는 논리다.
다른 통신업계 관계자도 유선망 사업에서 KT가 유리한 입지에 있다는 의견을 냈다.
이 관계자는 "실제 현장에서는 KT를 과거처럼 전화국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아 KT에 일단 전화해서 인터넷 유선망을 설치해달라고 요구하는 편"이라며 "일단 유선망이 설치되고 나면, 건물주가 타사 인터넷 망 설치 공사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게 현장 근무자들의 의견"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5G 무선 기지국은 LTE 무선 기지국보다 전파 도달 거리가 짧은 만큼 더 많은 기지국을 구축해야 하고, 각 무선 기지국을 연결해주는 유선망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KT와 달리 유선망·무선 기지국 양쪽에 대폭 투자해야 하는 타 이통사는 투자 부담이 훨씬 크니 무선은 제외하더라도 유선망은 공동 활용하자는 논리"라고 덧붙였다.
유선망 공유 논의가 제기된 이유에는 소비자 후생 저하 문제도 껴 있다. KT 유선망만 설치돼 있는 건물이 많아 타사 인터넷 서비스가 더 저렴하더라도 세입자는 건물주의 망 설치 허락이 없으면 이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KT "5G 시대 설비 공유, 목적·구간 설정이 우선"
KT는 3G, 4G 때처럼 5G 시대에서도 각 이통사들이 경쟁적으로 설비 투자를 못할 이유는 없다고 반박한다. 현재 가장 선진화된 통신 서비스라는 명예도 과거 치열한 경쟁을 통해 얻어진 결과라는 주장이다.
KT 관계자는 "5G 상용화를 앞두고 유선망 설비를 촘촘히 설치할 필요성이 커졌는데, 이에 타사는 중복 투자를 방지하자는 이유로 KT의 장비를 비용을 내고 빌리면 된다는 것"이라며 "이 경우 설비 투자 유인이 줄어들면서 결과적으로 통신업계의 경쟁력도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5G 시대에 설비 과포화 문제가 초래된다는 것은 일부 통신사의 주장일 뿐"이라며 "조기 상용화와 효율적인 망 투자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유선망 임차에 대한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이 먼저 생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KT는 공유할 설비와 구간, 공유 목적이나 공유 논의가 아직 활발하지 않은 무선 설비 공유 여부 등 5G 상용화 전에 전면적인 재논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 이후에 대가 산정 등 구체적인 기준도 재논의할 수 있다는 것. 135%로 정해져 있는 관로 예비율 기준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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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통사들이 각각의 논리를 내세우고 있긴 하지만, 설비 공유 자체는 추진하자는 데 입장을 같이 하고 있다. 대가 산정이나 설비 공유 비중 등에 대해 의견이 갈리고 있을 뿐, 5G 시대를 앞두고 효율적인 유선망 투자는 필요하다는 업계 공통된 인식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과기정통부도 공론화 의지를 갖고 있는 만큼 유선망 설비 공유는 5G 상용화와 연계돼 앞으로 공론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설비 공유가 필요하다는 측 논리의 타당성도 없지 않고, 5G 상용화 목표 시점인 내년 3월에 앞서 오는 6월 주파수 경매도 예정돼 있으니 설비 공유 이슈는 시의적절하게 공론화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