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털 케이큐브벤처스는 2013년 한 IT 스타트업에 2억원을 투자한다.
당시 이 스타트업은 특별히 내세울만한 건 없었다. 개인이 관심 가질 만한 뉴스를 엄선해 제공하는 ‘뉴스메이트’란 서비스가 메인인 작은 회사였다. 인력도 고작 세 명 밖에 없었다.
회사가 성장해 투자금 회수를 보장해줄 비즈니스 모델도 뚜렷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당시 케이큐브벤처스를 이끌던 임지훈 대표(현 카카오 대표)는 이 회사에 과감하게 베팅했다. 어떻게 이런 투자가 가능했을까?
천재 개발자로 알려진 창업주만을 보고 이뤄진 투자였다.
케이큐브가 떡잎만 보고 될성부른 나무라 예견한 이 회사는 바로 기업가치를 수조원으로 평가받는 두나무다. 최근 비트코인 열풍과 이석우 전 카카오 대표의 영입으로 화제를 일으킨 스타트업이다.
■ 5년 만에 '수억원' 회사에서 '수조원' 회사로
두나무는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기술이 급부상 하면서 암호화폐(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로 120만 회원, 일평균 이용자 100만, 동시 접속자 30만이란 성과를 이뤘다. 일 최대 거래액은 10조원, 지난 달 기준 일 평균 거래액 5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얼마 전 유진투자증권은 두나무의 현 기업가치는 8조6천250억원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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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큐브벤처스 기술 전문 투자 심사역인 김기준 상무에 따르면 두나무 투자 당시 케이큐브벤처스도 뉴스메이트로 이 회사가 잘 될 거란 확신은 없었다. 오히려 실패할 가능성에 더 큰 무게를 뒀다. 후속 서비스인 결혼준비 플랫폼도 변변치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투자를 단행한 결정적 이유는 그 회사에 속한 ‘사람’ 때문이었다.
“뉴스메이트란 서비스를 봤을 때 사실 잘 안될 거라 생각했어요. 결혼준비 플랫폼도 있었지만 마찬가지였고요. 업비트는 그 때 존재하지도 않던 서비스입니다. 3명밖에 없었던 두나무를 투자하게 된 건 송치형 대표(현 의장)가 천재 엔지니어였기 때문에 믿고 가보자 했던 겁니다. 서비스에 녹아있는 송 대표의 치밀한 전략과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돋보였기 때문에 이번 서비스는 실패해도 언젠가는 성공할 회사란 확신을 갖고 이뤄진 투자였던 거죠.”
김 상무는 최근 암호화폐 투기 과열에 따른 정부 규제 움직임 불안 요소일 수 있지만, 되레 경쟁사들의 진입로를 좁혀줘 업계 선두인 두나무에게는 득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 760억 규모 펀드 조성…AI 스타트업에 투자
김기준 상무에 따르면 케이큐브벤처스는 급변하는 시대에 혁신을 주도할 제2, 제3의 두나무를 찾는 데 더욱 주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4차산업혁명 기술을 선도할 스타트업 투자를 목적으로 760억원 규모의 'KIF-카카오 우리은행 기술금융투자펀드'를 결성했다. 벌써 6번째 펀드다. 케이큐브는 앞서 결성한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전문 5호 펀드와 함께 새 투자금으로 인공지능(AI) 분야 관련 스타트업을 적극 발굴한다는 전략이다.
[☞관련기사: 케이큐브VC, 760억 펀드 결성…AI 社 투자]
KIF-카카오 우리은행 기술금융투자펀드는 신규 스타트업 발굴에도 쓰이지만, 그 동안 케이큐브벤처스가 투자한 곳의 후속투자에도 사용된다. 투자 규모도 기존보다 커져 기업당 최대 50억원까지 확대된다.
“꼭 기술 회사만 보는 건 아니에요. AI 등이 만들어 가는 변화가 점차 일반화 되고 있기 때문에 기존 분야인 일반 서비스부터, 게임, 기술기반 스타트업 전반에 투자를 할 생각입니다. 다만 기존에는 디지털, 소프트웨어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하드웨어를 통해 현실 세계에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강화 학습할 수 있는 스타트업에 관심을 더 가지려 합니다.”
■ “실생활서 문제 푸는 스타트업에 관심”
케이큐브벤처스가 기술 전문 스타트업에 투자해 성공을 거둔 사례는 두나무 외에도 여러 사례가 있다.
딥러닝 이미지 인식 기반으로 AI가 CT와 엑스레이를 보고 질병을 찾아주는 루닛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 회사는 미국 영상 의학회나 글로벌 대회에서 유수의 기업들을 제치고 단연 주목을 받고 있다. AI 기술을 신약 개발에 응용하는 스탠다임이라는 회사도 케이큐브가 초기 투자에 성과를 본 기술 전문 스타트업이다.
[☞관련기사: 루닛, 실시간 의료영상 진단 SW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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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준 상무는 이처럼 산업 영역에서 실질적으로 활용되면서 어떤 문제를 풀 수 있는 스타트업을 관심 있게 지켜보겠다는 계획이다.
또 결국 AI 시대, 가정용 로봇이 보급화 되는 시대가 분명 오는 만큼 투자금 회수까지 시간이 상대적으로 더 걸리더라도 가장 앞단의 기술을 가진 회사에 투자를 함으로써 추후 큰 결실을 맺는다는 전략이다.
아울러 김 상무는 이전과 같이 법인 설립 전 단계에 있는 회사나 인재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닐 예정이다. 서울대, 카이스트, 포스텍과 같은 대학에 찾아가 역량이 뛰어난 인재들을 만나고, 이들이 가진 기술이나 재능을 살려 창업을 하도록 돕고 투자금 지원을 통해 성공을 이끌어 내겠다는 생각이다.
“그 동안 110곳 넘게 투자하면서 웬만한 학교나 회사에는 저희 정보원들이 있어요. 또 저희 패밀리 사들의 대표들도 모두 뛰어난 분들이라 이 분들이 자존심을 걸고 똑똑한 인재들을 추천해 주기도 합니다. 올해는 지난해 특히 더 주목을 받은 VR, AR뿐 아니라 AI나 블록체인, 엣지 컴퓨팅과 같은 분야에서 실력을 갖춘 회사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 “다양한 SF 영화 보고 미래 점쳐보길”
끝으로 김기준 상무는 투자를 준비하는 스타트업들에게 공상과학 영화 시청을 권했다. 많은 상상을 통해 그 안에 내가 가진 기술이나 서비스가 존재하게 될지 점쳐보라는 뜻이었다.
“기술 전문 스타트업이라면 어떤 숫자를 만들어 주목을 받겠다는 생각보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이 기술 자체가 유의미하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고 이를 투자사에게 설득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봐요. 물론 수익화도 무시할 수 없지만 큰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어요. 공상과학 영화를 많이 보고, 5년 후 10년 후 미래에 내 기술과 서비스가 자리할지 많이 고민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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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그는 성공한 벤처 투자자로 알려진 마크 서스터의 말을 인용, 스타트업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남겼다.
“마크 서스터는 점에 투자하지 않고 선에 투자한다는 말을 했어요. 우상향으로 올라가는 사람한테 투자한다는 뜻인데, 어느 순간 봤을 때 훌륭한 회사보다는 계속 발전해 나가는 회사에 결국 투자를 하게 된다는 거예요. 저희도 이런 스타트업과 사람에 가치를 더 두고, 투자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