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안드로이드의 아버지라 알려진 앤디 루빈은 2013년 초까지 안드로이드 사업 총괄 부사장을 맡고 있었다. 2013년말께 루빈 부사장의 역할이 로봇 개발 사업 총괄로 바뀌었고, 그해 하반기중 여러 로봇기술 업체를 줄줄이 사들이고 있었다는 게 드러났다. 2012년 도쿄대학 정보시스템 공학연구실(JSK)에서 창업한 일본 인간형 로봇개발업체 '샤프트(Shaft)'도 2013년 11월 구글에 인수된 회사였다.
구글의 샤프트 인수 소식이 나오기 3개월 전인 2013년 8월께다. 루빈 부사장은 4년전 한국의 인간형 로봇 개발회사 '레인보우(Rainbow)'에도 다녀갔다. 레인보우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에서 설립된 교내창업 기업이고, 센터장 오준호 기계공학과 교수가 주도해 2002년부터 개발해 온 인간형 로봇 '휴보(HUBO)'를 판매 중이었다.
한국을 다녀간 루빈 부사장이 샤프트와 레인보우 가운데 인수 대상을 저울질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직접 휴보 2대를 사가기 위해 본사 엔지니어 2명과 함께 한국에 다녀갔단 점을 놓고 볼 때, 당시 한국의 최신 로봇기술이 집약된 인간형 로봇 휴보에 관심이 상당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휴보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준호 교수가 훗날 회고한 내용이다.
휴보를 만드는 오 교수 연구팀은 2015년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로봇경진대회 'DARPA 로보틱스챌린지(DRC)' 결선대회에서 6개국 24개 참가팀 가운데 최종 우승을 거뒀다. 2013년 같은 대회에선 9등이었는데, 이후 기술을 개선한 노력을 인정받은 셈이다. [☞관련기사]
이후 휴보는 2016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에서 기술시연 초청 대상이 됐다. [☞관련기사] 같은해 4월 오 교수는 호암재단으로부터 공학상을 수상했다. [☞관련기사] 휴보는 12월 사람을 태운 전기자동차를 실제 도로에서 운전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관련기사] KAIST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는 올해(2017년) 1월 문을 열었다. [☞관련기사]
최근 오 교수는 4년전 휴보 2대를 사 갈 당시 구글의 앤디 루빈 부사장과 있었던 일화를 소개하며, 15년동안 개발되고 있는 휴보가 전세계 인간형 로봇 중 유일한 오픈플랫폼 성격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5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R&D캠퍼스서 열린 '삼성오픈소스컨퍼런스(SOSCON)' 행사 중 첫날(25일) 기조연설을 통해서다.
행사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SW)에 관심을 갖는 국내 개발자와 업계 관계자 및 학생을 대상으로 마련됐다. 오 교수는 자신의 학문적 배경이 기계공학이고 로봇만을 연구해 왔기 때문에 오픈소스SW와는 무관한 사람이지만, 자신이 몸담은 연구의 결과물인 휴보는 오픈플랫폼 로봇이라 부를 수 있다고 표현했다. 해당 발언을 일부 옮겨 봤다.
■휴보 아버지가 말하는 '오픈플랫폼 로봇'의 의미
"휴보는 오픈플랫폼 로봇이다. 휴보 시리즈 가운데 상업화된 모델은 '휴보2'라는 모델이다. 이름이 알려진 로봇으로 아시모, HR2, 아틀라스 등이 있지만, 상용화된 로봇 가운데 제 3자가 쓸 수 있는 건 휴보 뿐이다. 다른 로봇은 다소 폐쇄적으로 운영된다. (예를 들어) 아시모는 일본의 혼다라는 회사가 기술을 갖고 있는데, 로봇을 외부 운용시 자사 엔지니어를 함께 보낸다. 그 환경에 맞게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 현실적으로 외부 기업이 쓸 수 없다. 우리는 휴보 구입의사를 보낸 곳의 엔지니어 보유여부, 운용목적, 능력을 보고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판다."
요컨대 오픈플랫폼 로봇은 그걸 만든 곳의 주요 인력이 직접 나서지 않고도 운용될 수 있는 로봇을 가리킨다. 그렇다고 휴보를 아무나 손쉽게 다룰 수 있다는 얘긴 아니다. 휴보를 팔려면 그걸 도입하는 쪽에 휴보를 다룰만한 최소한의 지식을 전수하는 과정은 필요하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휴보를 사겠다는 곳에서 우리에게) 엔지니어 3명이 온다. 1주일간 우리와 함께 휴보를 뜯고, 조립하는 과정을 2번 정도 반복한다. 그리고 동작시킬 SW 프로그램 짜는 연습을 1주일간 한다. 여기까지 배웠으면 '이제 고장나면 당신들 책임이다, 직접 고쳐라' 한다. (청중 웃음) 우리가 전세계 다니면서 (기술지원을) 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사용처의 목적에 맞게 (하드웨어도) 고치라고 한다. 손도 바꾸고, 머리도 바꿔서 만들라고. 그래서 오픈플랫폼이다."
그에 따르면 실제로 이런 엔지니어 3명 2주 코스 교육을 받고 휴보를 가져간 곳들이 몇 곳 있다. 물론 휴보 운용능력이 있다고 판단한 곳 중에도 실제로 잘 쓰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은 갈린다고 한다. 실제로 휴보는 이를 만든 레인보우나 KAIST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의 지원 없이 여기저기 공급돼 왔다. 구글도 휴보를 사 간 고객사 중 한 곳인데, 잘 쓰고 있는진 불명이다.
"이렇게 휴보를 사간 뒤에 질문이 없는 곳이 있다. 둘 중 하나다. 아주 잘 쓰고 있거나, 아예 안 쓰고 있거나. 질문이 많으면 활발히 운용하는 곳이다. (구입처 가운데) 절반 정도는 그렇다. 질문은 커녕 아예 소식조차 없는 곳도 있다. 어디는 2대를 사 간 뒤에 1년간 아무 소식이 없다가, 또 1대 사갔는데 역시 그 뒤 소식이 없다. 구글이었다."
■구글 '로봇 도사'들, 휴보 사러 한국 다녀가
오 교수는 앤디 루빈 부사장이 직접 연락해 휴보를 사 간 일화를 간단히 소개했다.
"앤디 루빈이 '휴보 2대를 사고 싶다'고 2줄짜리 메일을 보냈었다. 답을 않자 1주일 뒤 또 '왜 회신 없냐, 만났으면 좋겠다'고 메일을 보냈다. 미국 가서 만났더니 구글 캠퍼스 구경 시켜주더라. 그리고 엔지니어 3명 보내면 (휴보 기술을) 1주일동안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앤디 루빈 본인, 커프너(편집자 주: 제임스 커프너, 2014년 10월 퇴사한 앤디 루빈의 후임으로 구글 로봇사업 책임을 이어받은 당시 기술담당 이사), 다른 엔지니어, 이렇게 3명이 왔다. 자기네들은 '도사'라(서 1주일이나 배울 필요 없다고) KAIST에서 1박2일간 먹고, 자고, 배우고, (휴보를 사서) 들고 갔다. 그 뒤 소식이 없다.
구글 외에도 미국 DARPA나 해군 등 국방부문에 휴보가 도입돼 활용된 사례가 있다고 한다.
"앤디 루빈은 이제 구글 퇴사하고 자기 회사를 차렸고, 지금도 휴보를 쓰는지 안 쓰는지는 물어보지 않아서 알 수 없다. (미국) 해군리서치랩에서는 4대를 사 갔는데, 활발하게 잘 사용하는 사례에 해당한다. …(중략)… DARPA에서는 휴보가 사람의 명령을 통해서 전체 미션을 완수한 적도 있다. 이건 자율적이라 할 수 없는데, 랩에서 전체 미션을 자율적으로 수행한다는 목표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오 교수는 휴보를 상업적으로 좀 더 널리 활용될 수 있게 만들기에는 여력이 부족하다며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우리 기술을 갖고 비즈니스를 잘 하진 않는다. 안 한다기보다, 낯부끄러워서 못 하는 것에 가깝다. (작성된 프로그램의) 코드도 지저분하고. 공개하려면 (운용 및 제어를 위한 기술 등 정보를 문서로) 깔끔하게 정리해서 예쁘게 제공해야 하는데, 시간도 없고 … 그냥 우리끼리 쓰고 있다."
■ "AI로봇, 아직 멀었다"
이어 그는 최근 인공지능(AI) 이슈와 함께 일상에 녹아들 것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로봇 기술의 기술적 현주소를 냉정히 제시하기도 했다.
"로봇이 잘 하는 게 있고, 잘 못 하는 게 있다. 힘 쓰고 반복하는 건 잘 하는데, 힘을 빼고 주변과 상호작용하는 걸 잘 못한다. 빗자루질을 한다든지, 종이를 접는다든지, 이런 사람이 할만한 일을 시키면 어떨까 하는 관점에서 현대적인 로봇이 등장하고 있다. 아직 많은 걸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필드(실제 현장)에는 없다. 왜냐면 상호작용을 잘 못하기 때문이다. …(중략)… 산업용 로봇은 자율성이 거의 없고 기술적으로도 전통적인 수준인데, 페퍼도 (구현 기술 수준면에선) 산업용 로봇 언저리를 못 벗어난다. 대부분의 로봇이 마찬가지다. 우리 기술이 굉장히 발전돼 있고 진보했다 여기지만, 아직 (한계를) 돌파하지 못했다. 일단 겸손하게 그걸 인정할 필요가 있다."
오 교수는 산업용 로봇으로부터 구별될만한 수준의 로봇을 'AI로봇'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정의하는 AI로봇은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로봇'이다. 기존 산업용 로봇보다 더 다양한 환경에서 인간이 의도대로 동작하는 유형의 로봇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이 정의에 들어맞는 로봇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로봇을 자신이 '전문가 로봇'이라 정의한 범주로 묶었다.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로봇은 (가정용) 청소로봇이 유일하다. 오퍼레이터와 메인터넌서가 있어야 한다. 스마트스피커라면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긴 한데, 이걸 일반적인 로봇 범주에 넣기는 좀 우습다. 현재 널리 쓰이는 산업용 로봇에서 어느날 갑자기 AI로봇으로 도약하긴 어렵다. 그 사이를 '전문가 로봇'이라 정의해 보자. 훈련을 받은 운용자가 있고, 학습되지 않은 (군중과의) 상호작용을 할 수는 없지만 물리적 환경과는 완전히 스스로 상호작용하는 수준으로. 드론과 페퍼가 이런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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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AI 기술이 발전을 거듭하는만큼, 로봇 공학과 접목되면 오 교수가 까다롭게 정의한 AI로봇도 곧 등장하지 않을까.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오 교수는 그 이유로 인간 사회에서 필요로하는 로봇의 성격에 2가지 본질적 딜레마가 존재한다는 점을 꼽았다. 이는 그가 가정용 청소로봇을 현존 유일한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로봇'으로 분류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로봇을 이루는 2가지 축은 움직임과 (지능에 기반한) 자율성이다. 둘에 본질적인 딜레마가 있다. 자율성은 로봇을 똑똑하고 빠르게 만들지만, (자율성을 가진 로봇은) 힘이 세고 그만큼 위험하다. (위험하지 않으려면) 뛰어난 움직임을 줄 때 지능을 바보로 만들어야 하고, 지능이 높다면 움직임을 떨어뜨려야 한다. 청소로봇은 똑똑하지도 힘이 세지도 않게 만들어졌다. 로봇이 인간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똑똑하지도 힘이 세지도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