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대화로 풀어본 ‘제로레이팅’ 공방

[백기자의 e知톡] 구글이 제로레이팅을 한다면?

인터넷입력 :2017/09/12 09:06

“SK텔레콤 이용자들은 오픈마켓 11번가 데이터 사용료가 무료.”

“KT 회원들은 특정 요금제 가입 시 음원 서비스 지니가 공짜.”

위 사례처럼 데이터 이용료를 무료로 제공해주거나 할인해주는 서비스를 ‘제로레이팅’(스폰서 요금)이라고 부릅니다.

데이터 사용 증가로 통신비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통신사들이 데이터 비용 부담을 줄여준다고 하니 사용자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입니다.

얼마 전 SK텔레콤은 휴대폰 매장 근처에서 ‘포켓몬고’ 게임을 이용할 경우 데이터 사용료를 면제해주는 마케팅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사업자들이 제로레이팅을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통신사들은 소비자들의 데이터 부담을 줄여 가계통신비 인하 효과를 볼 수 있다는데, 또 사용자들의 불만도 없는데 인터넷 업계 전문가들은 왜 제로레이팅을 문제 삼고 있을까요.

■ ‘아직은 괜찮아 보이는’ 제로레이팅의 현재

먼저 가상대화를 통해 제로레이팅의 현 수준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A: 한 달에 쓸 수 있는 데이터가 너무 모자라. 그렇다고 빠듯한 용돈으로 더 비싼 요금제로 올리기도 부담스럽고, 와이파이 지역에서만 인터넷을 쓸 수도 없고 고민이야.

B: 매일 온라인 쇼핑이랑 음악, 게임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요즘 광고 보니까 아무개 통신사는 제로레이팅 서비스라고 해서 온라인 쇼핑 사용할 때 데이터 차감 안한다고 하던데. 맞다, 음악 듣거나 게임할 때도 데이터 혜택주는 통신사도 있더라. 통신사를 옮겨보면 어때?

A: 오, 그런 혜택이 있었어? 그런데 그 정도로 통신사를 옮기기엔 좀 약하지. 만약 쇼핑, 음악, SNS, 게임, 검색 서비스 전부 다 데이터 무료로 해주면 모를까. 아니면 가장 데이터 소모량이 많은 동영상 서비스를 무료로 해준다면 혹할 수도 있겠고.

제로레이팅 사례.

여기까지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로레이팅 서비스 수준입니다. 특정 통신사가 고객에게 자사와 관련된 온라인 쇼핑몰이나 음원 서비스를 무료, 또는 저렴한 비용에 제공하는 정도입니다. 사용자들도 "이런 게 있었어" 라며 관심을 보이는 수준이죠.

이에 정부 당국도 이용자에게 심각한 피해나 차별 등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만큼 제로레이팅을 허용하되, 만약 문제가 발생한다면 사후규제 하자는 입장입니다.

그런데도 인터넷 사업자들은 지금이라도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경쟁 행위가 아닌지 따져보고 금지하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소비자자들이 데이터 비용을 아끼는 게 배 아파서일까요. 이들이 우려하는 미래를 조금은 과하게 상상해 보겠습니다.

■ 살짝 따져본 제로레이팅의 미래

제로레이팅 문제가 논의된 망중립성 토론회.

뉴스: 통신 당국이 통신비 인하 정책 중 하나로 제로레이팅 서비스를 적극 권장하기로 했습니다. 소비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게임, 음악, 쇼핑, 검색 등 모든 영역에서 사용자들은 데이터 비용을 아낌으로써 연간 많게는 OO만원의 통신비를 절약할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A: S 통신사로 갈아타면 내가 주로 쓰는 서비스들의 대부분이 공짜잖아? 요금제를 하나 낮춰도 충분하겠는데.

B: 난 K사로 이미 옮겼어. S사도 좋긴 한데, K사랑 데이터 무료 제휴된 곳이 더 많더라고. 대신 검색을 앞으로 N사 대신 외산 서비스인 G사를 주로 사용해야 되긴 하는데, 이 회사가 하는 동영상 서비스도 무료라고 하니 이 정도는 별 문제 될 것 없지.

A: G 검색이랑 동영상 서비스 데이터가 다 무료라고? 대박이다. 그렇다면 나도 고민인데… 그런데 내가 내던 데이터 비용은 누가 대신 내주지? 정말 공짜 맞아?

제로레이팅이 확산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결국 자본력을 앞세운 콘텐츠 제공 사업자들의 서비스만 시장에서 살아남지 않을까요.

만약 시가총액 24조인 네이버가 한 통신사와 손잡고 “네이버 검색 전국민 데이터 무료”를 선언하면, 또 다른 네이버와 같은 인터넷 기업이 우리나라에서 탄생할 수 있을까요. 다음 포털을 써볼까 하던 사용자들이 “역시 네이버가 갑”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더 끔찍한 상상을 해보면 어떨까요. 시가총액 730조가 넘는 구글이 국내 한 통신사와 손잡고 구글 검색 및 유튜브 데이터를 무료로 한다면 네이버와 카카오는 어떻게 대응해야할까요. 대응이 가능은 한 걸까요.

이미 구글이나 페이스북은 사회공헌 명목으로 저개발 국가에 무료 인터넷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의 '인터넷닷오알지', 구글의 '프로젝트 룬'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또 다른 속내는 사용자 확대를 통한 정보 획득입니다. 영리 목적도 있다는 뜻입니다.

결국 자본력을 앞세운 글로벌 콘텐츠 사업자들이 시장을 완전히 잠식하는 세상이 올 수 있습니다. 차별화된 아이디어와 서비스로 도전해보고 싶지만 돈 없는 스타트업, 벤처들은 이미 시작도 못해보고 문을 닫을지도 모릅니다. 네이버도 구글 앞에서는 작은 기업일 뿐이죠.

■ 제로레이팅, 통신비 절약엔 어떤 영향?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가계 통신비 절약 혜택을 볼 수 있을까요.

일단 “세상엔 공짜란 없다”는 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통신사도, 콘텐츠 사업자도 자선 단체가 아닙니다. 부족분은 어디선가 채워지기 마련입니다.

결국 통신비를 분담한 통신사와 콘텐츠 사업자는 사용자들의 데이터 비용을 무료로 제공하되 다른 곳에서 그 비용을 충당하고 싶을 겁니다. 콘텐츠 사업자가 사용자들의 데이터 비용을 통신사에 대신 내줬으니, 결국 그 비용은 다른 명목으로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은 15초 정도 보는 동영상 광고가 20초로 늘거나, 콘텐츠 기본 가격이 슬금슬금 오르지 않을까요. 당장에야 “고객님” 하겠지만, 언젠가 “호갱님”으로 바뀔 수 있다는 뜻입니다.

특정 서비스에 익숙해진 사용자들의 마음과 습관을 되돌리기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통신사들은 손해볼 게 전혀 없습니다. 사용자들에게 받던 데이터 비용을 콘텐츠 사업자들이 대신 내주기 때문입니다. 이는 통신비 인하에 대한 정부의 압박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자회사나 특수관계사들 위주로 혜택을 줘 경쟁 서비스가 도태될 수 있다, 시장지배력이 전이될 수 있다”는 인터넷 업계 지적에 대해 통신사들은 아래와 같이 반박합니다.

“통신사들은 모든 콘텐츠 제공 사업자들에게 동등한 조건으로 제로레이팅을 제공해줄 거기 때문에 차별 및 독점적 지위를 남용할 여지가 없다”고 말입니다.

또 “통신비 인하에 기여할 뿐 아니라, 소비자 후생을 증대 시키며 현재 특별한 문제가 없기 때문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통신 업계 논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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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제로레이팅에 대한 우려는 단순한 차별이나 지배력 전이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본을 앞세운 국내 사업자, 나아가 글로벌 사업자들이 국내 콘텐츠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미래의 위기감 때문입니다.

사용자들이 ‘데이터 무료’에 슬금슬금 취하는 사이 국내 인터넷 생태계가 글로벌 자본에 길들여질 수 있다는 걱정을 지금부터 해야 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