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바둑 인공지능(AI) 연구에 불이 붙었다. 일본 딥젠고(DeepZenGO), 중국 절예(絶藝, 영어이름:Fineart)에 더해 한국형 알파고를 표방한 '돌바람'까지 가세했다.
그런 와중에 카카오브레인이 한국기원과 손잡고 바둑AI 연구에 새로운 불씨를 당겼다. 아예 공개연구(오픈리서치) 형태로 바둑AI에 관심이 있는 국내외 전문가들을 끌어 모으자는 시도다.
한국기원이 160만건이 넘는 기보 데이터를 제공하고, 카카오브레인은 이러한 데이터를 연구자들이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한다.
깃허브처럼 바둑AI 알고리즘을 개선한 결과물을 올리고 이를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을 반복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기술 수준을 높이자는 시도다.
지난 5월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3개월여가 지났다. 그동안 어떤 성과가 있었던 것일까?
■ 中절예-日딥젠고, 프로기사와 엎치락 뒤치락
지난해 알파고 등장 이후 바둑 종주국으로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바둑AI를 개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후 여러 기업들 간 경쟁 끝에 텐센트 AI랩이 지난해 3월부터 개발하기 시작한 바둑AI 알고리즘이 가장 좋은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이 알고리즘은 중국 정부로부터 150억원 현금지원을 받으면서 연구에 탄력이 붙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것이 절예다.
지난해 8월 절예는 'foxwq.com'이란 중국 온라인 바둑 게임 사이트에서 프로선수들을 상대로 처음 테스트를 진행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커제 9단과 대국에서 이기고, 지는 과정을 거쳤다. 그 뒤 업그레이드를 거친 절예는 올해 2월 경기에서 커제를 상대로 내리 10연승을 거뒀다.
절예는 일본에서 2007년부터 시작돼 올해 10회를 맞은 AI 간 바둑대회 UEC컵에서 제대로 실력발휘했다. 딥젠고와 대결에서 11회 대국을 모두 이긴 것이다. 이 대회에 알파고는 출전하지 않았다.
IT매체 쿼츠에 따르면 이 대회에는 페이스북이 개발한 다크포레스트, 프랑스 크레이지스톤 등 30여개 바둑 AI 팀이 출전했으나 절예를 당해내지 못했다.
일본 딥젠고는 소프트웨어개발업체인 드왕고와 도쿄대 연구팀이 공동개발했다. 원래는 온라인 바둑 게임용을 목표로 개발된 이 바둑AI는 올해 3월21일~3월23일까지 일본 기원이 주최한 월드바둑챔피언십에서는 한국 박정환 9단, 중국 미위팅 9단, 일본 이야마 유타 9단 등과 함께 출전했다. 최정상급 선수들과 경기에서 딥젠고는 이야마 유타 9단을 꺾고 3위에 올랐다.
이 같은 바둑AI 기술 분야가 딥러닝 기술 경쟁으로 번져가는 사이 올해 5월 알파고는 커제 9단과 대결에서도 3:0 압승을 거두며 인간이 AI와 겨뤄서 바둑을 이기기는 힘들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시켜줬다.
■ 오픈리서치, 바둑AI 개선 돌파구 될까
국내는 어떨까? 정부는 대대적으로 한국형 알파고를 만들겠다고 나섰지만 기대만큼 좋은 성적을 올리진 못했다. 국내 바둑AI인 돌바람은 바둑AI 간 대결을 내세운 일본 UEC컵에서 9위를 거뒀다.
그 사이 지난 5월 카카오의 인공지능(AI) 기술 연구 자회사인 카카오브레인과 한국기원이 바둑을 활용한 딥러닝 공개연구(오픈리서치)에 나선 지 3개월여가 지났다.
그동안 한국 바둑AI 개발에는 어떤 진전이 있었을까? 뭐가 필요한 것일까?
최근 아주대 전자공학/반도체패키징/인공지능 담당 감동근 교수를 만났다. 감 교수는 지난해 알파고와 이세돌 9단 바둑 대결 해설을 맡고, 관련 분야에서 연구활동을 진행 중인 바둑AI 분야 전문가로 카카오브레인과 한국기원을 연결시켜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감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AI 전문가들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AI 4대 천왕이라 불리는 제프리 힌튼, 얀 레쿤, 요슈아 벤지오, 앤드류 응 교수의 제자들이 전 세계에 100여명 정도 포진해 있으나 그 중 약 70%가 미국, 중국 등에 집중돼 있다. 인공신경망 기계번역(NMT) 분야 전문가인 뉴욕대 조경현 교수 등을 제외하면 한국서 오랫동안 실력을 키워온 AI 전문가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국내 관련 대학원생들이 하루게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AI 분야에서 활발하게 연구활동을 벌이며 실력을 쌓아가고 있다는 것이 감 교수의 설명했다.
알파고는 물론 절예, 딥젠고와 같은 딥러닝을 활용한 바둑AI가 성공을 거두려면 세 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우선 이러한 연구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연구자 혹은 개발자가 필수다. 이에 더해 기보 데이터와 함께 보다 손쉽게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딥러닝을 위해 여전히 어마어마한 컴퓨팅 파워가 필요하다는 점도 고려해야하는 사항이다.
카카오브레인과 한국기원의 협업은 이 중 3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카카오브레인이 깃허브와 같이 협업할 수 있는 연구플랫폼을 구상하고, 한국기원은 그동안 쌓아온 160만건에 달하는 기보데이터를 제공한다. 바둑AI에 관심있는 국내외 연구자들이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면 3가지 조건을 만족시키게 되는 셈이다.
현재 카카오브레인과 한국기원은 오픈리서치를 위한 플랫폼과 기보데이터를 공개할 시점을 조율 중이다. 일부 카카오브레인 내부 연구자들이 이미 바둑AI 알고리즘을 개발해 학습시키는 과정을 반복하는 중이다.
이와 함께 오픈리서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국내 뿐 아니라 글로벌 연구자들을 끌어오기 위한 영문 사이트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왜 바둑AI가 중요한가
이제 태동하기 시작한 국내 젊은 AI 연구자 생태계는 연구자들마다 뿔뿔이 흩어져서 자신들만의 연구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중이다.
이들 중 바둑AI에 관심을 둔 연구자들이 오픈리서치를 위해 모이게 되면 보다 빠르게 기술을 진전시켜나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연구자들 중 바둑AI에 관심을 가진 이들 중 알고리즘 개선을 위한 아이디어가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참여해서 아이디어를 구현해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카카오브레인과 한국기원이 생각하는 역할이다.
물론 해외 연구자들도 여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둔다는 생각이다.
감 교수는 "바둑은 AI가 가진 여러가지 맹점들을 연구하기에 좋은 분야"라고 강조했다. 자율주행차 등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값싸고, 위험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내 바둑AI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오는 연말이 되면 한국 바둑AI가 딥젠고를 넘어서는 수준까지 올라올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최근 중요한 바둑AI 연구 주제로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시각화다. 인공신경망을 여러 계층으로 쌓아 두고 학습을 거친 바둑AI가 어떤 상황에서 왜 특정한 수를 뒀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이를 고안한 연구자들 조차도 파악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따라 인공신경망 중 일부 영역을 없앤 것과 그렇지 않은 온전한 인공신경망을 비교해 어떤 상황에서 왜 그런 수를 두는데 해당 영역이 어떤 역할을 했었는지를 분석하는 작업에 대한 연구가 바둑AI를 통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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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바둑AI의 경우 다른 AI 연구 영역에 비해 이러한 시각화를 통한 분석이 쉽다는 점에서 연구성과가 주목된다"고 감 교수는 밝혔다.
감 교수 설명에 따르면 바둑 AI가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결국에는 자금과 컴퓨팅 자원 싸움이 된다. 오픈리서치가 의도한대로 성과를 거두게 되면 이후에는 이 같은 대대적인 지원이 연구에 가속도를 붙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부분에서 정부와 국내 대기업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